[인터뷰] 김한나 친박신당 비례후보 "명예·긍지 중시 보훈시스템 세울 터"

2020-04-07 14:36:48

- 17년간 민간차원활동…故한상국 상사 부인, 사병(士兵) 대변자 자처 '출마의 변'

[프라임경제] 2002월드컵이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2002년 6월29일, 김한나 씨는 남편 故 한상국 상사를 떠나보냈다. 이후 평범한 주부는 보훈과 국방에 눈떴고 17년의 세월을 매진하게 됐다. 해당분야에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인물이 드물고, 그나마도 장성출신들이 대부분인 현실 속에서 사병(士兵)(부사관과 장병)들의 처우개선은 무엇보다 큰 현실의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김한나 씨. 친박신당 비례대표 5번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 김한나 후보를 프라임경제에서 만나봤다.

제2연평해전, 당시 조타기에 팔을 묶고 끝까지 항전한 남편이 전사한 전투의 명칭이다. 이 전투 후 평범한 군인의 아내였던 김한나 씨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부터 '개인 김한나'가 아닌 '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로 살게 됐다.

김한나 씨는 앞서 서해교전으로 일컬어지던 전투 명칭을 승전 의미를 지닌 '제2연평해전'으로 승격시키고, 당시 희생자들의 위상을 '순직'에서 '전사'로 격상시키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참전용사들 등 국가유공자들을 찾아뵙고 사진을 찍어주는 유튜버활동을 시작한 김한나 후보(친박신당 비례 5번)는 "국가의 보훈시스템은 예우에 대한 섬세함이 부족하고, 국방정책의 가장 일선이라고 할 수 있는 병사들의 인권보호 등에 관심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가 대변할 사람이 정치권에 드물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이번 총선출마를 결심했다는 것이 김한나 후보의 설명이다. = 김청민 기자



김 씨는 "(제2연평해전은) 무력도발이라는 군사적 행동에 맞선 것이고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지만, 우리가 적대적 행위를 해온 상대방을 물리친 전투"라며 "적대적 군사행동에 맞서 희생정신을 펼친 군인들이 단순히 마찰을 뜻하는 교전으로, 또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일컫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가 더 좋았더라면, 좀 더 성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장례식 때 유가족 외의 민간인은 못 들어오게 했다. 우리 국민들이 안타까워서 인사하러 온다는데 분향을 막을 이유가 있었나"라는 아쉬움도 덧댔다.

격려와 비난을 비롯한 너무 많은 사회적 관심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부담을 느꼈던 김한나 씨는 한때 미국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큰일이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 청소나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하며 3년 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한나 씨는 과연 '나라'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희생정신이 없으면 감내할 수 없는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국가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이후 생각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 씨는 지난해 8월부터는 유튜버로 변신,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고 근황을 전하는 활동을 전개 중이다.

그는 "남편의 영정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가 참전용사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을 찍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여러 생각 끝에 좋은 작가를 만났고, 같이 사진 활동을 하게 됐다. 지금은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에서 안 하니 저라도 하는 것이다. 지금 국가의 보훈정책이나 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여러모로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정계 진출을 결심하게 된 것도 국가의 군인에 대한 아쉬운 처우에서 비롯된 게 컸다.

군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남편이 전사한 후에는 순국선열의 아내로 산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고민 속에서 지금의 장병처우나 보훈에 관한 문제 지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다다랐던 것.

김 씨는 "남편 일이 끝나고 책이 나왔다. 17년 동안의 활동을 담은 것이다. 내가 또 나서서 뭘 할까 했는데 그 무게를 쉽게 내려놓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김한나 씨가 정치 쪽에 처음 얼굴을 알린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지지 방송연설 당시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정치에 진출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지지연설을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도 어떻게 보면 군인가족이고 당시 자서전에서 의지하던 가족을 잃었던 이야기 등이 공감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친박신당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한 김한나 후보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사병(부사관과 병사)의 인권이나 공로에 대한 보훈시스템이 미흡하다"면서 이번 출마도 그러한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의지에서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김청민 기자



이어 "정치는 다들 '똥물'이라고 말해 왔었고, 이에 동의했었기 때문에 발을 담근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그럴 주제도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엇나가고 있는 정국을 보면서 분노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직접 몸을 던져 오류가 난 시스템을 고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남편을 잃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보나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국방이나 보훈정책이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씨는 "사실 보수정권이라고 국방과 보훈 정책이 진보정권보다 확연하게 나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사병(士兵)의 사정이나 고충을 전하는 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장병들의 인권을 다루는 정부기관이 없이 민간단체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며, '관심병사'와 같은 낙인을 찍어 '관리'보단 '분리방치'를 해온 것이 바로 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만약 당선이 된다면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국방위원회에서 상임위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 김한나 씨의 바람이다. 

김 씨는 "17년 동안 고민과 겪어온 일들을 통해 내가 대변해야 할, 대변하고 싶은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특히 군 장병 인권보호와 보훈시스템 개선에 힘을 쏟고 싶다"며 "국방세나 모병제와 같은 잘 다루지 않는 문제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전달자'이고 싶다"면서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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