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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민주주의 후퇴시킨 '민주투사' 카친스키 형제의 교훈

'적폐청산 명분' 사법·검찰·언론 장악 '민주적제도 붕괴위험' 결과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20.04.10 07:54:08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재(가운데 아래)가 막후에서 힘을 발휘하는 폴란드의 집권 여당 법과정의당은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반민주주의로의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재와 그의 쌍둥이 동생 故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모두 폴란드의 민주정부를 여는데 공헌한 민주투사라는 점이다. 사진은 폴란드 국회가 정부의 사법부 통제권한 강화에 관한 법률을 가결시키는 모습.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인 2010년 4월10일은 폴란드의 대표적 민주투사로 꼽히는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러시아로 향하던 도중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한 날입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10년 전 죽은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현재 폴란드의 실질적 막후지배자로 꼽히는 그의 일란성 쌍둥이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현재 한국정치에 소환되고 있습니다.

민주투사였던 레흐 카친스키와 그의 일란성 쌍둥이형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분하에 사법·검찰·언론을 장악하면서 폴란드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49년 6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레흐 카친스키는 바르샤바 대학 법대를 졸업했고, 형인 야로스와프와 함께 1970년대 당시 공산주의 일당독재 정권이었던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대항하는 反(반) 일당독재 투쟁을 벌였습니다.

1980년에는 당시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가 주도한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에서 조언가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폴란드 제3공화국의 국부로 불리는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1981년 계엄령 선포 직후에 투옥되기도 하면서 고초를 겪은 레흐 카친스키는 이후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과 다시 손잡고 폴란드를 바르샤바 조약 가입국가 중 최초로 민주정부 탄생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레흐 바웬사와 결별한 레흐 카친스키는 형 야로스와프와 함께 법과정의당(PiS)를 창당했고,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복지 확충을 주장하면서 2005년 폴란드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야로스와프는 총리가 되면서 쌍둥이 형제가 폴란드 권력의 정점에 나란히 서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재임 당시에는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고 낙태금지와 이민자반대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유럽연합에서의 고립행보로 총선에 패배해 야로스와프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제가 가미된 내각제 형태인 이원집정부제 성격을 띠는 폴란드의 특성상 큰 정책적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이후 정권이 바뀌기도 했지만, 2015년 대선과 총선에서 법과정의당이 승리하면서 다시 정권을 되찾은 후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총재로서 실질적인 정권의 막후세력을 활동하고 있습니다.

법과정의당은 집권 후 공산주의 정권시절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면서 판검사의 은퇴연령을 줄여 집권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물갈이하고, 판사임명권을 하원에 둠으로써 사법부 독립을 훼손했습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한 명이 맡는 것으로 통합하면서 장관이 일반 검사들의 결정과 의사표현에 간섭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행해졌습니다.

기자 200여명을 해고하는 등 국영TV와 라디오를 장악해 언론도 통제 하에 뒀습니다. 여기에 민영방송까지 매각하도록 압박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편향보도를 이유로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0년 7월 설립한 미디어텔리콤청과 미디어위원회에서는 모든 미디어에 언제든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도록 하면서 사실상 '검열'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미디어법을 통해 감독기관의 판단에 따라 '균형잡히지 않고 혐오스러운' 보도에 대해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폴란드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2019년 민주주의지수(Democray index)에서 6.62p로 57위를 길고하면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평가를,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도 59위로 급락했습니다.

하지만 법과정의당은 아동수당·보너스연금 지급 제로를 도입하고 최저인금을 2015년부터 지금까지 49%가량 끌어올리고 또다시 이를 54% 가량 인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와 여당에 대해 야권과 재야에서 폴란드의 카친스키 형제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현 정부가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을 표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도 유사점이 많습니다.

폴란드는 앞서 여러 정책들을 통해 반자유적 민주주의로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반여(反與)성향의 목소리를 '언론권력'으로 대상화해 비판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입니다. 하지만 폴란드 민주투사의 반민주주의로의 퇴행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최근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논의를 "나와 내편만이 옳다"는 쪽으로 이행되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중도성향의 TK지역출신 청년은 보수성향의 부모님에게 "비민주적인 전횡과 국정농단이 있었다면 이를 엄벌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가 '좌파에 물든 빨갱이 사고'라는 핀잔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청년이 서울지역에서 참석한 한 모임에서 "현 정부의 정책적 실패도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가 '보수지역 출신이라 보수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건전한 비판과 중도적인 입장이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진영논리에 상관없이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만두지 않는 한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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