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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에서만 장애인 채용 피하는 '필립모리스'

10년간 '장애인 고용 불이행 기관 및 기업' 불명예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4.20 23:37:43
[프라임경제] 40번째 장애인의 날이 돌아왔다. 사람 나이로 마흔,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이 네 바퀴를 돌았지만 장애인을 보호의 테두리에 넣길 꺼려하는 기업 풍토는 여전하다.

2월 한국필립모리스는 백영재 전 구글 글로벌 디렉터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백 대표 체제의 한국필립모리스가 장애인 고용의 문턱을 낮출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프라임경제


그나마 우리 자본이 키워온 대기업은 기업 가치관에 대한 지적과 사회 환원에 대한 강도높은 요구가 반복되며 필수고용을 준수하고자 하는 노력의 가시적 성과를 거둬가고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의 투자로 설립돼 성장 과정에서 정권의 특혜나 정치적 배경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지 않은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 마케팅활동을 빌미로 필수고용의 의무를 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한국필립모리스의 경우 고용노동부의 연이은 개선 요구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아왔던 사실이 확인됐다. 해외에서 칭송받는 '평등' 기업이 유독 국내에서만 사회적 기여를 통한 불평등 개선의 의미를 잊어버린 현상이다. 

한국필립모리스가 매년 평균 2명의 장애인 고용을 유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자 총 수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라는 정부 의무고용율에 턱없이 모자른 0.2% 수준이다. 

이는 국내에서 장애인 채용을 꺼리는 또 다른 의미의 차별적 정책으로, 국내 시장에 대한 글로벌 본사의 기조를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다.

한국필립모리스의 모태가 된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 등 필립모리스의 해외 법인은 장애인에게 채용의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이미 평등한 채용에 관한 가이드를 내놓았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장애인 채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되려 미국에선 연방법인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근거해 승진과 채용 등 평가에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매년 강조하는 수준이다.

이런 노력은 필립모리스 사업장이 위치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필립모리스 파키스탄 법인은 지난해 말 장애인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장애인 단체와 협약을 맺는 등, 전 세계의 법인에서 장애인 채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 아시아와 태평양의 대부분 사업장에서도 이어졌고, 필립모리스는 지속가능보고서 등을 통해 각국에서 펼치는 채용과 노동자 대우의 형평성과 다양성에 대해 인정받고자 했다. 

이토록 해외에선 장애인 고용의 모범사례로 불리는 필립모리스가 국내에서 장애인 채용을 기피해온 까닭은 우리나라 장애인 고용법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 이후 한국필립모리스는 '장애인 고용 불이행 기관 및 기업' 명단에 지속해서 이름을 올려왔다. 명단 등재의 기준은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현저히 불이행한 경우에 해당한다.

2019년 이후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그 근로자 총수의 3.1%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법에 따라 지난해 1126명의 근로자를 고용한 한국필립모리스는 32명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지만 실제 고용된 장애인은 두 명이다.

한국필립모리스가 30명의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결과로 지불해야 할 댓가는 5억원 상당의 장애인 고용부담금과 매년 국방부 납품과 관련해 장애인 고용기업 가산점(0.5점)을 받지 못하는 것에 그친다.

가산점을 받지 못해도 한국필립모리스는 2016년 군납의 문을 넘었고, 납품에 골인한 단 한가지 종류의 제품(말보로 골드)으로 1000억짜리 군납시장에서 점유율 25%를 차지했다. 공적기관 납품을 제한해 사회적 책임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이미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또한 한국필립모리스는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법인으로 내보낸다. 지난해에도 22%의 매출하락과 별개로 전년보다 38% 많은 로열티를 송금했다. 애초에 수익 대부분을 해외법인으로 보내왔던 관행은 배당수익의 국내환원을 무시한 행동으로 경영목적에 사회적 책임과 거리가 멀다고 이해되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필립모리스는 장애인의 고용대신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것이 훨씬 유리하다. 강도높은 '직장 무결성 정책(Workplace Integrity Policy)'에 따라 장애인 고용유지의 책임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7년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 발행한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35개국 80개의 노조가 있으며, 노조 가입율은 67%에 달했다. 반면 한국필립모리스는 노조가 없다. 노동조합이 없는 점도, 해외사업장과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그 사이 필립모리스는 국내 시장과 보건복지부를 권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테스트베드로 삼았다. 유해성과 관련한 객관적인 과학 검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를 시작했고 이는 판매국 확대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권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대상으로 여론전을 펼친것은 자사의 검증 수준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흡연자와 정부는 아이코스 마케팅에 잘 사용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동부가 공개를 시작한 이후 한국필립모리스는 '장애인 고용 불이행 기관 및 기업' 명단에 가장 자주 등재됐다. 적게는 한명, 많을 경우 두명의 장애인을 고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채용 규모와 비율을 확인하고 있다"며 "당장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제 40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문재인 대통령은 "재난의 크기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다. 장애인이나 취약한 분들에게 재난은 훨씬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창궐의 여파가 한창인 시점에 맞이한 장애인의 날, 장애인 채용을 외면해 온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법적 장치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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