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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람이 죽어도 '사람보단 말(馬) 타령'하는 나라, 언제 바뀔까

38명 목숨 앗아간 이천화재…법률·직책·책임소재 '탓탓탓'에 유족 멍든다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20.05.27 13:19:09
[프라임경제] "마구간이 불탔는데 선생이 퇴궐하고서 이를 듣더니 사람이 다쳤느냐 묻고는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 인물이자 유학(儒學)의 비조로 추앙받는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에겐 마구간이 소실된 손해도, 말들이 다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산피해도 아닌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38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다 돼가지만, 안타까운 목숨에 대한 슬픔은 법률과 책임소재 따지기에 밀려 보이지 않는다.

최장수 총리를 역임한 국회의원 당선자 이낙연 전 총리는 유족들이 해결책을 묻자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 빈축을 샀다.

유족들이 듣고 싶은 말은 그저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희생자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도를 찾는데 노력을 다하겠다"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현 정부의 전직 총리이자, 다가 올 21대 국회의 당선인이고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치인이 건네는 위로의 말은 유족들에게 큰 힘이 됐을 터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기에 비난이 일자 측근들과 상황을 '분석'해 가면서 대응하려한 태도는 안타까운 목숨에 대한 애도보다는 '정치적 행동'에 한없이 가까운 태도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안전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유족들 앞에서 공언했다. 이후 8일 주재한 '건설안전 혁신위원회 2기 킥오프 회의'에서 가연성 패널을 제안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국토교통부와 TF(테스크포스) 팀의 논의 방향은 기대와는 멀다는 전언이다. 샌드위치 패널을 완전 퇴출시키자니 관련 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결론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완전 불연성자재를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결정이 아니라 업계가 생각하는 '적당한 선'에서 타결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워낙 관련된 산업이 많아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그럴 듯한 구실은 자기위안용으로 준비 중이다.

여론이 들끓었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실신까지 하던 관계자들이 시간이 흐르고 관심이 점차 식어가자 책임소재를 미루고 배상의무가 없다면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점은 이들에겐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유족들은 결국 상황이 점점 장기화됨에 따라 생업에 쫓겨 떠나간 혈육의 영령을 제대로 위로조차 못 한 채 떠나보내고 있다.

최근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 비례대표 정치인은 '전직국회의원 출입증'을 발급받아 SNS에 자랑했다. 그리고 최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11주기에서 고개 숙이며 '노무현 정신'을 따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당 일들이 절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을 꿈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새기자면서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해당 의원이 유가족들을 얼마나 챙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개혁을 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 토대 위에 살아갈 국민의 생명을 돌보지 않는다면, 마구간이 불탔을 때 마구간 수리 이야기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정치의 근본을 2500년 전 공자의 일화를 통해 다시금 돌이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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