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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KeSPA '스타1' 공공재 취급, 그리고 툭하면 '치트키'

e스포츠 헤게모니 중국에 내줘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5.31 00:29:30
[프라임경제] 'Show me the money'를 아시나요. 오늘은 유명 힙합 오디션 TV프로그램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치트키(Cheat-key)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치트키는 게임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속임수로 스타크래프트1의 싱글모드에서 'Show me the money'를 입력하면 미네랄과 가스가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게임에 자신 있는 플레이어는 치트키를 사용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기도 합니다. 당연하게도 치트키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할수록 쉽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당연해진 승리가 정당한가에 대하여는 부끄러워하기 마련입니다.

지금부터 스타크래프트를 기반으로 성장한 e-스포츠 시장을 이끌고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가 사용했던 몇 가지 치트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KeSPA는 'Show me the money'와 함께 'Pickpocket'이라는 치트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Pickpocket'은 '상대방 자원의 절반을 가지고 오는' 효과를 가졌네요.

스타크래프트 부르드 워.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저작권 Pickpocket 시도

2010년 5월3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eSPA와 프로게임단 공동 기자회견은 e-스포츠 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을 선도해온 KeSPA가 자본과 기술, 노력의 집합체이자 순수한 창작물인 게임을 이익단체인 자신들의 입장에서 쓰임새만 갖고 '공공재'로 표현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앞서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의 출시에 앞서 KeSPA의 프로리그를 통한 영리활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을 진행해왔습니다. 2007년 KeSPA가 방송사업자들에게 중계권을 팔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죠. 이후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3년간 한국e스포츠협회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지적재산권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양측의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블리자드는 곰TV에게 독점권을 제공했고요. 이 날 KeSPA와 12개의 프로게임단이 블리자드와의 협상 중단 그리고 곰TV와의 e스포츠 독점 계약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KeSPA는 기자회견에서 "스타크래프트2가 공공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e스포츠의 중심에 있는 스타크래프트는 스포츠의 일환으로 많은 관람객이 함께하는 공공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공공재 표현은 'Pickpocket' 치트키를 입력한 것과 같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저작권과 관련해 아무런 권리조차 없던 KeSPA가 당시 e-스포츠 시장의 헤게모니가 제작사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입력한 치트키죠.

표면적으로는 e-스포츠 자체를 공공재로 취급하기 때문에 e-스포츠의 종목이 된 스타크래프트 또한 공공재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KeSPA의 자의적 해석입니다. 

하지만 협회가 블리자드 측에 제공해야 할 게임(저작권) 이용료, 그리고 방송사가 2차 저작물을 통한 영리활동을 할 경우 지불해야 할 이용료를 고려한 고의적 책임회피라는 의견도 관측됐습니다.

대중들이 보고 즐기는 영역으로 발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게임을 공공재적 콘텐츠로 취급해야 할까요. 이후 정부와 국회의 개입이 더해지며 KeSPA는 프로리그 개최를 준비하는 등. 스타크래프트의 사용에 대한 블리자드 측 의견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10월 결국 KeSPA는 블리자드와 합의 없이 프로리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블리자드가 소를 제기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한국을 찾은 폴 샘즈 블리자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모든 콘텐츠 산업의 지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지재권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MBC게임과 온게임넷에 스타크래프트 지재권 침해와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습니다.

폴 샘즈의 기자 간담회 이후 KeSPA는 공식 입장을 통해 'e스포츠의 공공재 성격이라는 것은 'e스포츠'가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의 영역에 속하며 스포츠는 일반 공중에 대한 시청권(Public viewing)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라며 이전 표현의 의미를 수정합니다.

하지만 직전에 발생했던 e-스포츠 최초의 승부조작 사건의 공판이 진행되며 KeSPA의 '공공재' 표현이 사실상 치트키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선수와 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감추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사실 몇몇 팀의 감독들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KeSPA도 승부조작 루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를 나서서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미 게임 전문 방송국의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협회나 소속기업들 입장에서도 스타크래프트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운 종목으로 이해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타크래프트의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축 선수들의 기량 악화와 잇따른 악재가 겹치자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승부조작 사건을 방송3사가 아침뉴스를 통해 보도한 시점은 KeSPA의 기자회견이 있기 2주전이었습니다. 이미 승부조작에 대해 협회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이후지요. 

또 리그에 미성년자 선수들의 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소양 교육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진 다음입니다. 생계를 이유로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상황도 확인됨에 따라 선수들 권익 보호에 미진했다는 지적도 받게 됐습니다.

즉, KeSPA에게는 'e스포츠 팬'들의 비판을 전가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던 시점이니 추가로 저작권 이용료 예산을 만들어 지불하기 보다는 '명분'을 가져다 사용하는게 유리했겠지요.

◆전병현의 'Show me the money'

이번엔 e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KeSPA가 사용한 'Show me the money' 치트키에 대한 이야기가 맞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치트키를 입력해 얻게되는 미네랄과 가스 등 자원은 현실 세계에서 '돈' 이었습니다. 

2017년 11월7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한국e스포츠협회(KeSPA)의 자금 유용 정황을 포착하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KeSPA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 연합뉴스


3선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전 KeSPA 회장 등 화려한 이력의 전병현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해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KeSPA를 통해 뇌물을 받은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2013년 KeSPA 회장 자리에 오른 전 전 수석은 e-스포츠의 중심을 스타크래프트2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로 전환한 인물입니다. 롤은 2011년 국내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사이 블리자드는 KeSPA와 파트너가 돼 스타크래프트2의 e스포츠 리그 운영을 이어왔습니다. 앞서 서술했던 공공재 논란을 극복한 건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지요. 수익 배분의 합의점이 찾아지자 양 측은 '대승적 차원'이라는 허울 좋은 표현에 동의하며 합의했습니다.

기대와 달리 스타크래프트2의 인기는 신통치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의 상업화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스타선수의 출현이 이어지며 KeSPA는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로 등극했던 역사와 롤이 현재 e스포츠의 주류로 떠오른 과정이 닮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게임방송사인 OGN은 먼저 2012년 '리그오프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를 개최하며 최초의 정규 리그를 개최했습니다. 게임의 인기는 e스포츠 리그의 인기로 이어졌고, 다시 한 번 e스포츠 리그의 부흥을 가지고 옵니다.

전 전 수석이 이끌던 KeSPA도 도전에 동참합니다. 취임 첫해인 2013년 롤의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개최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LWC)' 대회에 국내팀을 참가시켰고, 그해 SKT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e스포츠로서 롤의 시대는 개막하게 됩니다.

하지만 2014년 전 전 수석은 회장직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국회의원 겸직 금지 원칙에 따름이죠.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 전 수석은 명예회장 자리를 지킨 다음 2016년 KeSPA의 회장으로 복귀합니다.

문제는 전 전 수석이 KeSPA의 회장으로 머물며 롯데홈쇼핑 등 대기업과 기재부와의 게임에서 사용한 치트키입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전 전 수석은 징역 5년, 벌금 3억5천만원, 추징금 25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전 전 협회장 혐의 가운데 롯데홈쇼핑으로부터 한국e스포츠협회 기부금을 받은 혐의와 금품을 수수한 혐의,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예산을 배정하도록 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롯데홈쇼핑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이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던 전 전 수석에게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는 방송재승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중단해달라는 청탁과 총 3억여원을 기부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대가성 뇌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를 적용했습니다. 

마침 전 전 의원에 대한 2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만일 형이 확정될 경우 전 전 수석은 국내 최초로 게임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 비리가 될 수 있습니다.

◆'복서'와 '옐로우', '페이커'의 맨파워 없다면…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가끔 '민속놀이'라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30대에서 50대를 아우르는 저변 때문이지요. 그 시절 황제태란 임요환과 카운터 파트너인 폭풍저그 홍진호는 아직도 'e스포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라이벌입니다. 

아마도 제 또래는 손가락이 허락하는 한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선수를 전설로 기억하며 스타크래프트를 민속놀이처럼 즐길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KeSPA도 분명 노력을 기울여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 비해, 선수들의 미래를 볼모로 협회의 이권을 위해 사용해온 기록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본명보다 닉네임 'Faker'로 더 많이 불리는 이상혁 선수의 시대입니다. 독보적인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프로게이머' 대우의 아우트라인을 개척하고 있지요. 실력과 인성으로도 칭찬을 받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또한 이상혁 선수를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스포츠스타로 만들어준 세대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비스되는 동안 지금의 시대를 추억하며 살아가겠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치트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자신들이 쌓은 업적을 동료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산업 전반에서 누리는 것에 욕심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들이 만든 유의미한 기록들은 반복해서 회자되며 선수 자체가 영향력이 되는 현상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반면 이상혁 선수를 비롯한 국내 롤 팀들이 세계 무대에서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 산업의 중심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 때문입니다. 일부 국내 팀이 선수들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제공하거나 성과를 가로채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KeSPA는 적극적으로 이에 대해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선수들은 많은 연봉을 포함한 정당한 대우가 제공되는 해외팀으로의 이적은 쉬운 선택이 됐습니다. 이는 해외팀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었고 실력이 뛰어난 팀이 많은 리그로 전 세계의 관심이 이동하는 것 또한 당연한 상황이지요.

이렇게 e스포츠 시장의 헤게모니를 이미 중국에 내준 KeSPA는 2월에도 프로게이머 표준계약서를 만든다며 선수 이적의 결정과정을 선수 동의 없이 가능할 여지를 삽입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후 KeSPA는 해당 보도에 대해 반박하는 자료에서 지적받은 내용이 포함된 수정안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선수 이적'과 관련한 부분은 다른 스포츠 산업과 비교해 보았을 때,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 이 조항은 타 스포츠의 사례와 국내 e스포츠의 종목별 시장 환경 차이를 고려하여 계속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했지만 세계 최고의 리그를 보유하지 못한 까닭. 치트키를 남발해서 사용해온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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