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레거시 미디어 몰락의 테제

2020-06-02 13:51:22

[프라임경제] 정부를 향한 생떼가 기존 주류 미디어 이익단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부끄럽다. 이 민망함은 출처가 분명하다. 

코로나 바이러스19의 확산에 따라 경영난에 처했다며 정부라도 나서서 도와달라 요구하는 신문협회에 대한 감정이다.

바이러스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고 산업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따스할 것 같던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 '힘들다'라는 소리는 누구의 입에서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탄식은 동종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 다를 바 없다. 스스로가 마주하는 어려움을 보편적인 힘듦이 돼버렸다고 인정해버리면 서로 다르게 느낄 어려움의 체감에 대해서까지 비판하고 싶지 않아진다. 

하지만 미디어와 기업의 본질을 잊은 채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저들의 주장은 따져 묻고 싶다. 살기 위함이라는 구실은 기존에 누리던 수준의 삶을 기준으로 부족함에 대한 피력이 아니냐고. 정부 광고 기대치를 근거로 올해에만 수천억의 광고료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저들의 요구에 대해 반론한다.

형평성을 기반해 정부는 재난 기본소득을 들고 나섰지만 '모두'에게 속하지 못하는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사이 미디어 기득권의 한 축인 신문협회의 요구는 구태의 만연함을 넘어섰다.

아마도 의무와 책임의 저울이 고장 난듯하다. 언론사는 원부자재의 수급이나 외환과 국제유가의 영향을 받는 산업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취재 환경의 애로사항이 됐다는 주장은 공감할 수 있지만, 실물경제의 정지로 신문사가 먹고살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에 수긍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도리어 신문사들 또한 독립된 기업으로서 위기에서 스스로 극복할 기초체력을 만드는 것은 조건이 없는 의무다. 하지만 유일한 생산물인 기사 콘텐츠의 가치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화에 실패했다. 수익구조가 광고와 협찬에 집중됐다는 사실은 코로나가 아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을 때 또다시 경영난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신문협회와 회원사 경영진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준비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길 바라본다. 불가항력에 따름이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직시 없이 과거의 경영방식으로 포스트코로나를 맞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부가 코로나19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격리'의 일상화는 'K방역'을 완성하는데 뼈대가 됐다. 자발적으로 통제하는 격리를 목적으로 미디어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정부에게 넘어갔다. 어느 신문사도 '재난 안전 문자' 메시지보다 빠른 속보를 내지 못했고, 반드시 필요하고 빠른 정보는 관에 의해 제공됐다. 정부가 주도한 방역망에서 미디어의 도구는 종이가 아닌 데이터로 치환됐다.

현실에 마주한 위기는 정확한 정보와 속도가 갖는 중요성을 온 국민에게 경험을 통해 확인시켜준다. 이를 뒤집으면, 이미 종이신문은 새로운 것(NEWS)을 전하는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던 레거시 미디어, 특히 효용면에서 신문의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때문에 정부광고 상반기 집중 시행을 골자로 하는 신문협회의 요구사항을 보니 속이 뒤집혔다. 코로나19 시국의 돌입과 동시에 신문은 재난 문자메시지와 경쟁조차 불가능했다. 100년 전부터 세상을 내다보던 종이신문의 현재가 고작 20년 전 사용되기 시작한 문자메시지에게 패배라니 반성부터 해야 맞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문자메시지와의 속보경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필요했고, 결국 벌어진 이 승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데 대한 반성의 단계는 보였어야 했다.

기술의 발달은 미디어 시장을 바꿔놓았다. PC(personal computer)의 등장은 새로운 개념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만들었고, 이들 PC를 이어주는 인터넷의 등장과 무선인터넷의 진화에 따라 소비자 중심의 개인화된 미디어 서비스로 발전했다.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서비스는 극단적 양상을 보이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사이 인쇄된 종이를 통해 담론을 이끌던 철학은 '한편 네티즌들은…'에 집중한 페이지 뷰 경쟁에 패배했고, 이런 식의 여론을 가장한 의견조차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버렸다.

그러자 매체력과 기자개인의 맨파워를 논하던 시절도 유튜브의 등장과 함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됐다. 직장인으로 살 것인지, 기자로 살 것인지를 묻던 가치관의 충돌은 이제 '이 바닥'에서 고민거리가 아니게 됐다. 모두가 '마이크'를 갖게 됐고, 소비자는 원하는 '스피커'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수요에 따른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환경은 생각지도 못한 위기상황에서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를 드러내게 했다. 기본적으로 원하는 스피커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선택권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강제로 제공받는 채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에게 정보전달의 역할을 줄 바에는 관과 지자체의 입장에서 명확한 상황을 전달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이는 속보의 주체를 정부로 바꾸게 했다. 

이로 인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선 '안전 안내 문자 메시지'를 매스미디어 목록에 추가해야 한다. 

재난 문자 메시지의 미디어로써 활용은 계속 확장 추세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정부는 확진자 정보의 공개위주로 '재난 문자 메시지'를 제공해 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지진상황을 주로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오송역 전차선 장애'에 이르기까지 뉴스로 가치가 있는 정부기관의 정보를 '안전 안내 문자'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서 미디어 역할은 뉴스를 강제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됐고, 필요에 의해서는 어떠한 소식을 불특정 다수에게 강제로 전달할 수 있다는 생산자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도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이미 사용된 바와 같이 안전 안내 문자는 구체적인 정보로 이어지는 링크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속보의 영역도 벗어나고 있다.

사실 무선통신망의 커버리지는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또 스마트폰의 보급률은 휴대폰 보급률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이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다양한 메신저가 정부가 공공성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안전 안내 문자를 100% 대응하지 못하더라도 미디어 존재 가치는 보여줄 수 있는 수단임을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미디어는 이런 시스템을 적극 활용됐어야 하지만 매체에 대해 부족한 신뢰가 서비스 진입조차 거부하게 만들었다. 수요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디어에 대해 편향되지 않은 정확한 정보전달의 주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대안을 통한 속보 전달 서비스는 불가능해졌다.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 해야 한다. 존재 목적을 다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변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 주체는 미디어가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는 반성 대신 기존의 기득권을 기반으로 오만한 태도를 이어간다. 자신들의 한계를 충실하게 메워준 정부에게 먹고 살 방법마저 내놓으란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편성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던 비난은 '내로남불' 그 자체다.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정부의 지원금을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에 대한 지원이 다른 산업에 비해 부족하다며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한다.

신문협회가 내놓은 요구의 배경에는 주류 매체들의 욕심이 감춰져 있다. 제안서에는 정부광고 상반기 조기 증액 집행 요구가 담겨있다. 또 정부에 제출한 제안서 세부사항에는 '매체별 정부 광고 배분은 발행부수·유료부수·매체의 브랜드파워·열독률·구독률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안전 안내 문자'와의 속보경쟁에 자연스럽게 패배했다. 패배를 반성하기 보다 독립된 기업 스스로 생존력 없음도 인정해버리고 욕심만 남겼다. 제안서와 세부사항을 보니 이제 누가 먹고살기 위한 생떼를 쓰는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누구의 욕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겸손을 감춘 패배자의 욕심은 꼴사납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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