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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차르와 공자 사이'에 선 김종인과 기본소득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6.04 08:47:53

[프라임경제] 춘추전국시대 뿐만 아니라 중국사, 아니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도 공자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보낸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의 조국 노나라는 임금이 국내 사정으로 이웃 제나라로 달아나 정국이 혼란에 빠질 정도로 위태로운 약소국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정치 운영과 백성의 평안을 그가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한때 지금의 건설부 장관(司空)과 법무부 장관(大司冠)에 해당하는 지위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결국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해, 자기 정책을 알아줄 군주와 나라를 찾아 천하를 떠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도적으로 오인당하기도 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 일부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68세에 조국으로 돌아와 마침내 정치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교육 즉 자기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후진을 양성하는 쪽으로 초점을 바꿉니다. 73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그가 가르친 제자는 약 3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막강한 인력풀을 바탕으로 공자 철학이 흔적을 이후 남긴 건 당연지사이고, 더 나아가 오늘 날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를 가리켜 당시의 필부들은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대는 인사"('논어' 헌문 14장)쯤으로 평가했으니 아마 '몽상가'라는 세평이 강했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공자 자신은 "나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논어' 헌문 34장)이라고 생각했다는군요.

오늘 날 '정치기술자' 평가를 일각에서 받고 있는 논란의 중심,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보면 공자의 주유천하가 어쩐지 생각납니다(정확히 겹쳐보인다고 평가할 수는 '아직' 없을 것 같습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프라임경제

김 위원장은 한때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바 있을 정도(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근래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 스스로 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하지요),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다만 성격이나 일처리 방식이 독선적이라는 평가가 많고 이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는 평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여의도 차르'로 그를 부릅니다. 차르는 옛 러시아 황제이므로 당연히 이런 별명은 대단히 독재적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죠.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김 위원장 그리고 그의 활동 방식을 가리켜 "굿 스타트, 배드 피니시"라고 촌철살인 평가를 최근 던졌죠. 대권 주자 띄우기에 1등 공신이면서도 매번 안 좋게 결별하는 것을 아프게 지적한 셈입니다.

신랄한 평가를 넘어서서 처참한 수준으로 뼈저린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한 원로 기자가 김 위원장과 그의 행보를 컬럼에서 저평가한 바 있는데요. 도대체 재정학을 배우고 가르친 학자 출신으로서 제대로 연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겠다는 궁리나 하고 있다고 그가 만지작거리는 기본소득 논의를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이 컬럼은 김 위원장의 업적이 '경제민주화'를 현행 헌법에 넣은 것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 개념을 아는 이가 없다는 평가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그리고 그 구현 과정에서 정말로 건드리면 안 되는 '마지노선'은 무엇인지 정밀하고 세세히 세우기 보다는 매번 캠프를 옮겨다니며 실물 정치에 개입할 생각만 했다는 평 자체를 김 위원장이 한 번쯤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찌 보면 그는 정말로 한국 정치의 공자 같은 인물이자 그의 경제민주화 구상은 포퓰리즘이라고 폄하되기엔 너무 아까운 희대의 걸작일 수도 있고, 혹은 표퓰리즘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정치기술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확한 인물 평가는 '김종인시대'가 지나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나오겠지만, 기본소득을 그가 비대위원장으로 일하는 와중에 미통당에서 건드리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어찌 되었든 그가 실물정치에서 은퇴한 후 이론을 누가 보아도 쉽게 정립하는 시간은 꼭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인식 주유천하가 너무도 길고 고통스럽다는 점은 분명 그 자신이 택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시대가 그에게 사과해야 할 지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주유천하의 상처가 끝으로 빚어낼 '진주'를 받고 싶습니다. 특정 정파의 미래를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마지막으로 지른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과 기대감, 꼭 밝혀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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