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구 칼럼] 초심

2020-06-07 09:52:08

[프라임경제]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란 찬사를 받고 있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79).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 절제미의 절묘한 조화라는 새 분야를 개척한 건축계의 슈퍼스타이다.

그는 공고를 졸업하고 권투선수에 트럭운전사를 거쳐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대가의 반열에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유명세를 더해주는 것이 작업실에 있는 그의 '책상'이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100㎡ 규모의 대지에 지하 2층, 지상 5층의 소박한 건물로 돼 있다.

1층 출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그의 책상이 놓여 있다고 한다. 그 책상에 앉으면 직원들은 물론 건물에 드나드는 손님들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심지어 조금 목소리를 높이면 1층에서 4층에서 일하는 직원과 대화까지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독특한 점은 또 있다. 직원이 30명쯤 되는데, 이 건물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한 대뿐이며, 근무시간에는 이메일, 휴대전화, 팩스 사용도 금지돼 있다고 한다. 공용으로 쓰는 전화기 5대는 안도의 책상에 놓여 있어 누가 어떤 전화를 하는지를 서로 알 수 있게 돼 있다. 그 대신 안도의 작업실에서는 편지와 엽서 등을 적극 활용한다.

안도 타다오는 인터뷰에서 특이한 작업실 운영에 대해 '창조적 게릴라 집단'으로 서로 혼(魂)이 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소통이 더 감소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해져 개성과 창의력이 퇴보하고 있다고 그는 개탄했다.

안도 타다오의 이색적 작업실에 대해 창의성을 중시하는 건축가의 고집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의견도 있지만, 업(業)의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자세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더 우세하다.

안토 타다오는 건축의 본질이 창의성이라고 했던 자신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 작업실을 디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간의 본질적 약점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의 글로벌 기업 여러 곳을 방문해본 경영학 교수나 언론인들은 CEO의 사무실이 대개 작고 소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전해준다.

특히 벤처기업들은 사장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직원들과 같은 공간 한 곳에서 일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경영을 중시하는 벤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 금언(金言)처럼 통하고 있다. 초심을 오래 지켜나가기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말은 정치인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업, 정치 등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권력과 재물을 얻은 뒤에도 초기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은 드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불미스런 사건 사고들의 상당수가 관련 당사자들이 초심을 잃고 엉뚱한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출세해 말을 타면 처음에는 직접 고삐를 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 위에 편안히 앉아 고삐를 잡아주는 아랫사람을 부리려고 한다는 뜻이다. 

간혹 겉멋에 취해 초심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사람들도 없지 않다. 비즈니스계 뿐 아니라 정계, 학계, 연예계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몇 걸음도 못가 낙마(落馬)한다. 경마를 잡히기도 전에 말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사연도 흔하다.

초심을 잘 정립해 변함없이 지키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면 헛된 소망일까?


김영구 대한레이저학회 이사장 / 연세스타피부과 대표원장(피부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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