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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반복되는 불법 포경…수긍하기 싫은 바다의 '로또'

학살당한 고래고기 맛 궁금하지 않다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6.17 08:01:30
[프라임경제]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전라도 광주를 연고로 한 기아 타이거즈 야구팀의 응원가이자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가수 송창식 씨의 대표곡 '고래사냥'의 후렴구 가사입니다. 

영화가 담은 시대정신과 노래가 명성을 얻은 배경을 고려할 때 가사에서 말하는 '고래'란 '희망'에 가까울 것입니다. 오늘은 고래와 관련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9일 오후 울산시 동구 방어진수협위판장에서 고래연구센터 관계자가 불법 포획된 밍크고래 사체를 조사하고 있다. 고래 몸통에 불법 포획단이 쏜 것으로 보이는 작살 여러 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10년 전 오늘, 2010년 6월17일은 무려 120여 마리를 유통한 국내 최대 규모의 불법 포경단이 적발된 날입니다. 

당시와 같이 작살을 사용한 불법 포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유지가 우리의 희망에 작살을 꽂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고래는 어민들에게 '바다의 로또'라고 불립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높은 몸값 때문이지요. 상업포경을 금지한 1986년 이후에도 고래고기의 유통은 아직 합법적인 관계로 울산 장생포 등 일부 지역은 고래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남아있고요. 일부 어민들은 그물에 고래가 걸리는 '혼획(混獲)'을 기대하는 경향도 이어지고 있지요.

고래를 수익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행위도 비판을 받습니다. 하루 100㎞ 이상을 움직이며 살아있는 물고기 12㎏을 사냥하는 돌고래는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입니다. 많게는 1000마리 이상의 집단을 이루며 끊임없이 소통하는 돌고래를 관찰이나 연구가 아닌 관람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 자체로 동물학대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렇다 보니 식용으로 고래고기 유통을 허락하고 있고, 돌고래 사육에 큰 규제를 가하지도 않는 우리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혼획을 가장한 불법포경이 자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동물학대 행위를 정책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내 해양포유류 보호 및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근절 방안과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 개정에 따른 국내 대응 논의' 토론회에서 환경정의재단의 김한민 운동가는 "국제포경위원회(IWC)에 한국이 보고한 2014년 고래류 혼획 수는 1835마리인데 다른 10개 나라 평균은 19마리"라며 "한국은 미국에 수산물을 수출하는 나라 중 해양포유류 혼획 위험성이 ‘높음’으로 분류된 몇 안되는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토론회는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 개정에 따라 2022년부터 해양포유류 혼획 위험이 있는 어법으로 어획한 수산물을 수입금지하기로 한 것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입니다.

개정된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에는 미국의 기준을 초과해 해양포유류의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일으키는 어획기술로 포획된 수산물 또는 수산가공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실상 연안에서 혼획이 발생하는 방식의 어업은 이 법을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안강망, 자망 등 그물을 사용하는 어업은 혼획이 잦아 향후 대미 수출에 차질을 빚을 전망입니다. 이는 고래고기 수요가 유지되는 한, 즉 고래 혼획이 수천만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어업민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여지를 제공합니다. 

또한 고래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인지, 고래식육 문화를 전국으로 보급하며 일본처럼 상업포경국으로 돌아설 것인지를 두고 갈팡질팡 하는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도 비판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래 남획에 대해 비판할 명분을 스스로 잃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관련해 2018년 9월22일 한겨레의 '포경에 대한 한국 정부 입장, 동의하시나요?' 제하의 기사는 우리 정부의 포경에 관한 입장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묻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라는 도시에서 개최된 IWC 67차 총회에서 우리 정부는 '상업포경을 재개하기 위한' 일본측의 제안에 '기권'을 행사했습니다. 명확한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은 것입니다. 해당 안건은 과반 이상의 반대로 부결됐고 이는 일본이 IWC를 탈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같은 회의에 올라온 또 다른 안건인 '보호구역 확대'안건과 '고래보호선언' 채택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반대'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반대했던 '고래보호선언'을 책택이 되었지요. 

이와 관련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의 결정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포경(허용)으로 기울어지길 바라는 소심한 투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부의 기조가 이러하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어떨까요? 울산은 고래를 지역의 상징으로 삼은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핫핑크돌핀스와 울산시 남구청의 의견을 종합하면, 울산시 남구가 운영해온 울산고래축제는 '고래고기 소비 촉진'과 '장생포 포경 전통의 문화적 계승'을 명목으로 2015년부터 장생포에서만 진행해왔습니다.

울산시는 '울산역사문화대전'에 '고래고기'를 남구를 대표하는 향토문화로 지정했다. ⓒ 울산역사문화대전


특히 2016년까지 고래문화축제는 식문화로서의 '고래고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울산역사문화대전'에 '고래고기'를 향토문화로 지정하는 등 시와 구가 고래고기를 문화사업의 한 갈래로 추진해온 흔적은 찾아보기 쉬운일입니다.

관련해 울산시 시민단체 일부에서는 "전통식품 전문가이자 오래된 고래고기 식당의 대표가 직접 '고래고기'를 울산시와 남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지정했다"며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지금의 고래고기 식문화를 향토문화로 지정하고 이를 보급하는 일에 시가 나서서 예산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울산시 남구 관계자도 "2016년까지는 축제기간에 고래고기 부스를 마련하고 행사에 포함시켜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현재는 고래 보존과 관련한 활동을 중심으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며 "환경적 측면에서 고래문화축제를 더욱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남구청의 설명과 상이한 행보입니다. 남구청 산하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고래생태체험관은 2007년부터 돌고래 수족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장 당시 남구청은 장생포 앞바다 물을 최신식 여과기를 거쳐 매일 40톤씩 공급하고, 전문가를 고용해 매일 돌고래 건강을 체크하는 등 돌고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2017년 일본에서 수입해온 큰돌고래 2마리 가운데 1마리가 폐사하는 등 개관이래 6마리의 돌고래가 폐사한 수족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방문객이 육안으로 고래를 관찰하는 '고래생태설명회' 등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이은 폐사에도 돌고래 수족관을 지속해 운영하는 남구의 선택은 배경이 있어 보입니다. 포경 재개와 고래고기 보급 확대를 바라는 지역 민심의 요구에 따름인데요.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고래에 대해 동물학대라는 의견을 넘어서야 비로소 상업포경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가 실제로 드러났던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2012년 19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이하 농수산위) 소속 새정치민주당 장하나의원이 발의했던 '고래보호법'이 농수산위 안건에 오르자 고래문화보존회와 장생포청년회, 고래상인협의회, 통장회 등 남구지역의 포경지지 4개 단체는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19명 모두에게 '고래보호법' 부결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발의된 법안은 모든 고래류의 포획과 전시 및 쇼를 금지하고 고래의 가공·유통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은 다음 단계인 국회 상임위의 법률안 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8년, 남구도시관리공단은 장생포 고래박물관 관장으로 당시 고래문화보존회 대표(현 상임고문)를 맡았던 이 모씨를 임명했습니다. 이씨는 고래축제의 초기 사무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었네요. 

고래문화보존회의 다음 카페 이름은 '고래문화보존회 (食 文化 保存會 / 식 문화 보존회)'이다. ⓒ 고래문화보존회


이씨가 몸담았던 고래문화보존회가 주장하는 '고래문화'란 사실상 일제시대에 유입된 상업 포경의 방법과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해체 기술, 조리법 등을 담고 있습니다. 고래문화보존회 카페에선 '식문화보존회'(食 文化 保存會)로 스스로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해당 인사가 포경 합법화를 요구하는 지역 민심이 반영된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나아가 박물관이 포경 재개를 위한 여론 형성에 사용될 우려도 확산됐습니다. 

사실 남구는 고래고기 식용에 주도적인 입장입니다. 2011년 고래고기를 활요한 음식브랜드 '고래의 맛'을 직접 상표등록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남구청이 직접 나서서 고래고기 상업화 전략을 세우고 브랜드화를 추진한 것이지요.

남구청 산하 남구도시관리공단은 여전히 <장생포고래문화특구> 홈페이지를 통해 '고래의 맛' 브랜드 소개는 물론, 고래고기의 다양한 맛을 알려주며 고래고기 맛집이 어디인지를 안내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소한 우려는 사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달 14일 고래문화재단은 고래축제의 기존 개최일정을 6월에서 9월로 연기한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의 여파로 두 차례 일정을 미룰지언정 취소는 없다는 강행의지가 피력된 것이지요. 

일주일 전 울산 앞바다에서 해경 순찰 헬기가 작살을 사용한 포경선박을 적발했습니다. 포경선박이 바다에 고래와 포경도구를 버려 배 안에서 고래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적발 당시 울산해경 항공 순찰 사진을 보면 배에 매달려 끌려가는 고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후 인근 바다에서 5~6개의 작살이 꽃힌 채 발견된 밍크고래의 사체는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국제 사회가 상업포경을 금지하며 보호하고 있는 대형고래들까지 먹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에 고래 보호 국가로 당당히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며 '잔인한 방식으로 불법 포경을 하면서까지 고래를 사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취재 과정에서 '고래고기를 먹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고래고기를 먹기위해 발생하는 '대미수출규제의 원인제공', '국제사회의 비판', '동물학대의 오명', '지역내 정치력 형성 목적으로 포경 이슈를 소비한다는 지적' 등 나열하기에도 많은 부정적인 대가를 극복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포경에 대한 어떠한 선택도 울산 남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업 포경 재개에 따른 반대급부는 '우리나라'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민이 짊어져야 할 숙제가 될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은 국민적 여론의 동의가 우선이지요.

당부를 드리자면, 우선 고래고기가 정말 맛있는지를 넘어 '고래고기를 먹기위해 벌어지는 일과 감당해야 할 일들이 우리 이웃에게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10년 전에도,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도 연안의 고래들은 불법포경선에 학살당했습니다. 이렇게 죽임당한 고래고기가 '어떠한 맛'일지 알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대미수출 규제는 내 이웃인 다른 어민들의 생계수단을 훼방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먹어야 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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