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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통보는 사절' 부동산 주도권 선언한 '전략가 이해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7.07 09:43:20

[프라임경제] 더불어민주당이 전면에 나서나? 차기 당대표 이야기만 중심을 이루던 여당 분위기에서 부동산 정책을 여당이 주도하자는 기류가 새로 감지된다. 

차기 당권을 둘러싸고 나돌던 각종 이슈 즉 '김부겸 대 이낙연 경쟁 구도 형성론'이나 '홍영표의 숨고르기 이후 다음 및 차차기 기회 준비론' 등 대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해찬 대표가 중심에 서는 양상이다. 백조의 마지막 노래가 비견할 데 없는 절창이라 했던가? 이번 부동산 대란에 대한 그의 해법 제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대표는 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일방통행’에 노골적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청와대와 정부가 다 결정해서 보도자료까지 뿌린 뒤 당에 요청하는 당정협의는 받지 말라"며 정부 주도 부동산 대책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전날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도 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매번 뒤늦게 보완대책을 만들지 말고, 혁명적인 대책을 갖고 오라"고 주문했다.

이런 점들이 복합되면서 일단 민주당 내에서 시원하다는 반응이 대두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 내에 '대책은 정부가 만들고 책임은 민주당이 진다'는 불만이 상당했는데,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당이 좀 더 주도적으로 정책 설계에 참여하자는 취지를 대표가 직접 거론해 줬다는 이야기다.

그 다음 측면이 더 중요하다. '전략가로서의 이해찬' 면모가 제대로 부각될지의 기대감이 자극되는 양상 때문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다. ⓒ 연합뉴스

그는 일찍이 민주화 운동을 재야에서 하던 중, 평민당 당직자로 정치 즉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그 자신이 술회한 바대로 당시만 해도 "당사는 고참 당원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고 할 정도로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당료들은 당원들의 연락소를 맡아주는 연결자 역할에 그쳤다. 당료들을 이끌고 당원들을 자극해 정책 정당으로 거듭날 기틀을 당시에 놓은 게 바로 이 대표였다는 게 정설이다.

한때 '한겨레 창간'이라는 특이한 이벤트가 열리던 때에는 언론계로 진출해 볼까 잠시 고심했을 정도로, 이 대표는 글 쓰는 일 그것도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것보다는 정책적 제안과 설득력 있는 안건 제출에 일찍부터 재능이 있었고, 본인도 그것을 좋아했다.

DJ와 참여정부, 그리고 긴 보수 정권 치하를 거쳐, 한때 민주당 세력이 침체되었던 상황을 딛고 다시 재추진력을 가동해 지금 '슈퍼 여당'이 되기까지 단순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전략을 보여 준 몇 안 되는 '선배' 정치인 중 하나가 그라는 점은 이런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백년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해석도 이 대표의 전략가적 측면을 잘 대변한다. 이 개념은 사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에 이미 이 대표가 구상했던 틀이다. 하지만 이후 참여정부가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하고 정권이 반대편으로 넘어가면서 거론이 사실상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중에 이 대표가 20년 집권 필요론 등으로 개념에 다시 불을 지폈다.

단순히 레토릭에 그친 게 아니라, 2019년 겨울 '당원 교과서'를 펴내는 등 당이 실질적으로 정책 정당으로 나가도록 실제 수단을 만들면서, 이 대표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탄탄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는 이 발간 관련 행사에서 "(당시 기준으로 곧 다가올 21대) 총선에서 압승해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문재인 정부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그 힘으로 재집권해서 정책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당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주문했었다.

사실상 지금의 슈퍼 여당 구도, 그리고 재집권을 위한 당의 역할 주문 등이 부동산 대란이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이전인 이때 이미 예측돼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

청와대가 섣불리 나서기에는 현재의 유동성 초고도화 상황이 쉽지 않고, 한층 유연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 대표를 자극한다. 위에서 거론한 관료들에 대한 혁명적 대책 압박은 전략가로서의 성격, 경직되고 매너리즘에 젖은 중간관리자급의 유능하지만 영혼없는 일처리를 싫어하는 측면을 함께 드러낸다. 이런 부담감은 당의 싱크탱크 등 구성원 즉 당료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전망이다.

유동자금은 사상 최대로 풍부하고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서민·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을 강력히 추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당장 정부가 공급 문제에 대한 급박함을 호소하는 상황에서도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그린벨트 관련 문제에서 마이웨이를 최근 강조하는 등, 당 주변에서조차 일사분란한 정책 추진에 제동 요소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청와대가 정하고 정부가 대충 그린 뒤에 당에 통보하지 말라는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건 곧 '숙제가 떠넘겨질' 위험을 알고도 내린 결단이다.

이제 정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대표가 당의 CEO가 아닌, 전략가로서 마지막까지 일하고 싶다는 결연한 뜻을 나타낸 셈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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