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구 칼럼] 소비로부터 소외

2020-07-09 11:48:37

[프라임경제] 40대 주부 A씨에게 하루 두세 번 받는 택배는 삶의 활력소다. 가끔 5만원을 넘는 화장품 등도 있지만, 대부분은 1만~2만원 대 잡화다. 필요하지 않은 택배를 받은 뒤 반송할 때도 있지만, 온라인 쇼핑과 택배 받기는 중요한 일과다.

택배가 오지 않으면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택배를 받으면 배가 부르다는 느낌, 즉 '택배 포만감'이 든다고 그는 말한다.

A씨는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해봤지만 마음의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택배는 물건을 직접 받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며 "이러다가 택배 중독이라도 걸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19세기 유물론 철학자들은 '생산으로부터 소외(疏外)'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을 위해 물건을 만들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생산하는 물건과 무관하게 된 것을 소외로 보았다.

이렇게 도입된 소외라는 말은 요즘은 폭넓게 사용된다. 초등학생들이 부모에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이유로 '소외감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철학자들도 주목하지 않았던 뜻밖의 소외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 '소비로부터의 소외'다.

'생산으로부터의 소외'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사람도 '소비로부터 소외'라는 말이 성립하겠느냐고 말한다. 그들은 '소비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인데 어떻게 소비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개인의 필요나 만족을 위한 소비가 소외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필요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행동이 소비다. 하지만 모든 소비가 다 그렇지는 않다. 그 중 하나가 '쇼핑 중독'이다.

쇼핑 중독에 빠진 사람은 필요가 아닌 습관 또는 중독에 의해 물건을 사들인다. 쇼핑 중독이 심하면 물건이 담긴 쇼핑백이나 상자를 뜯어보지도 않은 채 방치해두고 또다시 쇼핑에 나선다고 한다.

쇼핑 중독은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택배를 받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행태는 쇼핑 중독과 닮은 데가 있다.

꼭 필요해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로 쇼핑하고 택배를 받는 것 자체에 집착한다.
중독을 설명하는 개념 중에 '쾌락 반응(hedonic response)'이란 게 있다. 이에 따르면 일부 반복 행동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필요(needs)해서 물건을 구입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필요하지도 않은데 습관적으로 집착하는 취향으로 변하고, 탐닉과 갈망을 지나 중독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건의 쓰임새가 아니라 물건을 사는 행위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주객이 바뀌는 셈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러온 '코로나 우울증'이나 심한 고립감, '빈둥지 증후군'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 중에 온라인 쇼핑과 택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택배 증가 현상에 묻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 택배 중독이 쇼핑 중독과 같은 사회적 또는 정신건강의학적 이슈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숨은 개인의 소외, 고독감, 우울증 등이 더 심해지기 전에 해소할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택배 중독이 개인의 낭비벽이나 과소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병리 현상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소비 활성화나 택배 산업의 성장과는 별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풍요속의 빈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택배아저씨가 아빠보다 반갑다'는 우스갯소리에 담긴 절실한 메시지를 놓친다면 언젠가 가정과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김영구 대한레이저학회 이사장 / 연세스타피부과 대표원장(피부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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