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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의 코칭 이야기 23] '같아요 어법(語法)'과 '레이저 언어'

 

허달 칼럼니스트 | dhugh@hanmail.net | 2020.07.17 14:14:49

[프라임경제] 2007년 11월13일 플로리다 쌩 어거스틴 소재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서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었다. LPGA의 영원한 상징 낸시 로페즈의 손에서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 트로피가 박세리의 손으로 건네진 것이었다. 흰 바지에 금빛 단추로 장식한 검은 색 윗옷 정장을 입고 트로피를 손에 든 채 박세리는 3천여 축하객들 앞에서 당당한 영어로 입회소감을 밝혔다.

1998년 메이저 대회인 U.S. Women’s Open을 당당히 정복하고도, 마이크를 들이미는 ESPN 아나운서에게 '기쁜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아요'라고 말하려는 의도로 어설픈 'like, like'를 연발하던 재투성이 신데렐라 소녀의 주눅들은 모습은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박세리 선수의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모습. ⓒ 연합뉴스

언젠가 조선일보 태평로 칼럼에 박은주 씨의 '당신은 악마 같은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던 것을 기억한다. 칼럼의 내용은 위와 같은 '같아요 어법'을 다룬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젊은 세대들 간에 유행하는 옛 박세리 식 어설픈 자기표현 모습을 나무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같아요 어법' 속에 있는 정치인을 비롯한 세대 모두의 비겁함 '공격할 때는 좀 비겁하게, 방어할 때는 더욱 비겁하게' 증후군을 개탄하는 글이어서 필자의 마음에 크게 공명하였기에 아직까지도 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의 언어는 '같아요 어법'을 단호히 배격한다.

코칭이 비록 '고객의 언어'를 사용하여 고객과 소통한다고는 하지만 고객이 '같아요 어법'을 구사한다고 해서 이를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리더십 과정에서는 주도성을 키우기 위하여는 주도적 언어를 써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주도적 언어란 이러한 것이다.

"상무님, 현장에 나가 보았는데, 고객들이 아무래도 우리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대신에

"~~,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교수님, 다음 시간 강의는 제가 테니스 시합에 출전하기 때문에 결석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신에

"~~, 제가 테니스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 (부득이) 결석하여야 하겠습니다."

즉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대신에 '~하기로 했다, ~하기로 선택했다', '~같아요' 대신에 '~이다, ~임을 확신한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꼭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객이 주도적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이를 사용하면 그의 주도성이 크게 항진(亢進)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쉬운 예로서, 상대방을 인정 칭찬하면서 '같아요 어법'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불의(不義)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군요'라는 인정 표현을 쓰면서 상대방을 응시하는 경우와, '당신은 용기를 가진 사람 같아요'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눈길을 잠시 피하는 '같아요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를 비교하여 상상해 보시라. 이 차이로 인해 상대에게 닿는 울림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업 간부에 대한 코칭의 실제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객을 처음 만나보니 늘 미소 짓는 좋은 인상의 어눌(語訥)한 분이었고, 이른 바 '같아요 어법', 비주도적인 어법을 쓸 뿐 아니라 그것도 자주 끊어져서 코치와의 첫 대화에서도 좀처럼 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답답할 정도였다. 고객 자신도 코칭을 통하여 자신의 주도성과 적극성을 함양(涵養)하고 언어습관도 눌변(訥辯)에서 달변(達辯)으로 개선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과 코치가 함께 놀란 것은 부하 인터뷰를 통해 이 고객의 코칭 전 소통능력 수준평가를 마치고 나서 이를 함께 검토할 때였다. 명확한 언어의 구사 능력, 설득력, 등의 의사소통 평가 항목에 대해, 본인의 자기평가는 '최하'이었음에 비하여 부하직원의 평가는 '보통 이상의 수준'으로, 서로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코칭의 몇 차례 다음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 고객의 눌변과 미소가 부하들에게는 '공감적 경청'의 효과를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는 선행(先行) 과정이 된 까닭에, 비록 어눌하고 비주도적인 상사의 어법(語法)이었으나 설득력 있는 언어로 받아들이게 작용한 것임을 발견하였다.

발견이 이루어진 이상, 코칭의 목표는 달변을 이루고자 함이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눌변과 미소는 소통에 필요한 것이니 그 상태에서 계속 유지하고 '같아요 어법', '비주도적 어법'만을 주도적 언어와 중립적 언어로 대체(代替)한다는 처방을 얻게 된 것이었다. 이 코칭은 고객과의 합의를 거친 몇 차례 과제 수행과 확인 과정을 통해 성공한 코칭이 되었다.

코칭의 언어를 주도적이며, 간결한 언어로 만드는 다른 비결의 하나는 진정성이다.

코칭적 리더십을 구사하겠다고 결심하고, 내게 '멘토 코칭'을 받고 있던 어떤 기업의 임원이 하루는 '멘토 코칭'의 한 과정으로 자신이 부하직원을 코칭 한 녹취(錄取)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검토하여 잘된 곳, 잘 못된 곳을 찾아 피드백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약 30분 간의 코칭 장면을 녹취한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겉핥기 코칭이어서 코칭의 주제도 제대로 선정되지 못하고, 고객과 코치 모두 몰입도(沒入度)도 낮아서 실망이 컸다. 그래서 즉석에서 내가 주제 하나를 제시하고 내 문제를 코칭 하도록 시연(試演) 시켜보았더니, 아직 숙련이 부족한 미흡함은 있었으나 녹취된 코칭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훌륭한 코칭을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객과 함께 다시 찬찬히 녹취 파일을 들어보니 주제의 진정성 결여(缺如)가 먼저 지적되었다. 부하 직원이 억지 춘향으로 만들어 온 절실하지도 않은 과제를 주제 삼아 '연습인데 어때?' 하는 마음으로 교과서의 코칭 모델을 적용하여 코칭을 시도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부하 직원에게 해보도록 권고했다.

"자네가 가져온 그 주제는 스스로 얼마나 간절히 해결하기를 원하는 과제인가?"

"자네 주제의 절실한 정도를 1에서 10까지의 스케일로 표현해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임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 "아하!" 하는 깨달음의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자신이 코칭에 임하는 자세의 진정성도 함께 반성하였을 것이다. 이로써 다음 코칭 세션에서는 보다 더 자신의 진정성에 입각하여 고객의 본질과 연결된 코칭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깨어 있는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스스로 그러함이 진정성의 표출일 뿐이다. 코치는 고객과 함께 이 진정성의 세계에서 하나가 되기에 간결한 언어를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코칭의 언어는 깨끗한 언어를 지향한다. 적게 말하는 것이 많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레이저 언어'가 곧 깨끗한 언어이다.

위 사례 속의 기업 간부들은 선천적 어눌 또는 진정성에 대한 깨달음 등으로 깨끗한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코칭의 언어는 또한 예술을 지향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고객과의 연결을 오래 남는 감동으로 이루게 하기 위한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고객을 돕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다.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므로 거두절미 되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 당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부딪쳐서 의도한 바와 다른 의미로 되돌아오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상대방이 무엇 때문인가 감추어 두었던 숨은 명제가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뭐꼬?"

납자(衲子)는 이 한마디의 외마디 질문에 평생을 건다고도 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이 짧은 질문이 잊혀질 만 하면 늘 참선(參禪)하는 사람의 마음에 되돌아오는 것도 이것이 강력한 '레이저 언어'이기 때문이다.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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