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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미투상품 철퇴? 법원 오락가락 잣대에 아직 먼 얘기

새로운 아이템 나와도 빼앗기기 쉬워진 까닭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7.22 11:06:07
[프라임경제] 시장에서 인기있는 제품을 모방하는 행위에 대해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올바른가를 판단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배끼기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의 수혜가 어디를 향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중심의 사고에 따르면 수요는 공급의 확대를 부르고, 미투로 인해 늘어난 공급은 가격결정선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미투행위는 경쟁구도의 강화를 촉진해 마케팅과 연구개발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며 기대이익의 하락을 초래합니다.

그럼에도 산업 전반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각 기업의 윤리적 경영에 기반한다'는 사회적 요구과 상법과 민법이 보호하는 '차별성'에 의거, 따라한 쪽이 잘못했다는 여론이 늘 다수의 지지를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론과 법원의 판단은 다를때가 종종 있지요.

이와 관련해 2010년 7월22일은 법원이 미투상품에 대해 이례적으로 '제조판매금지 가처분'결정을 내린 날입니다. 

법원은 "등록상표인 '백설'이나 '쇠고기다시다'가 아닌 상품 포장이 장기간 계속적, 독점적, 배타적으로 사용되거나 지속적인 선전광고 등에 의해 국내 수요자들에게 특정한 품질을 가지는 특정 출처의 상품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별화되고 우월적 지위를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두 상표와 디자인의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 법원

당시 CJ제일제당(097950)은 "35년전 출시한 조미료 '다시다'의 이름과 포장을 모방한 대상(001680)의 제품이 시장에 풀리자 한달만에 전년대비 매출의 8%가 하락하는 등 실질적 손해가 발생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처분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은 CJ제일제당의 손을들어줍니다. 법원은 대상의 제품이 상품포장과 포장 디자인 등에서 CJ제일제당의 제품과 유사한 점을 인정하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미료 '쇠고기진국다시'를 제조, 판매, 수출, 전시하거나 선전광고물에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며 제조판매금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가처분 결정이 떨어졌는데도 8월6일 서울 북부지검에 대상과 대상의 대표이사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강제집행면탈죄, 공무상표시무효죄로 형사 고소했습니다. 

이어 9월에도 CJ제일제당은 가처분결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이 유통됐다며 경찰에 고발하고 10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합니다. 이에 대해 대상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난 직후 해당 제품의 디자인을 바꿔서 판매하고 있다"며 항소합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본안소송에서 법원은 대상의 주장을 인정합니다. 가처분결정과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이지요. 

당시 서울북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최종두 부장판사)는 CJ제일제당이 "경쟁사가 쇠고기 다시다의 포장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동종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며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2010가합6721)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등록상표인 '백설'이나 '쇠고기다시다'가 아닌 '상품 포장'이 장기간 계속적, 독점적, 배타적으로 사용되거나 지속적인 선전광고 등에 의해, 국내 수요자들에게 특정한 품질을 가지는 특정 출처의 상품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별화되고 우월적 지위를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양 제품의 포장 중 붉은색 바탕과 하단의 사진 부분은 관련 제품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형상으로 출처 표시로서의 기능이 매우 약하다"며 "결국 쇠고기 다시다의 '백설'과 '다시다' 부분, 쇠고기 진국다시의 '미원'과 '진국다시' 부분이 식별은 가능한 것이므로 소비자들이 양 제품을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습니다.

가치관의 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에 앞서 35년간 '다시다'로 불려온 CJ제일제당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법원 판단에 따라 두 제품이 차별성을 갖는다는 해석도 인정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조미료 시장의 경쟁구도를 조성해 가격하락과 품질상승을 기대하게 됐으니 오히려 좋을수도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요. 출시 후 "디자인을 바꿨으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대상의 입장도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좌) 법원 결정문 별지에 6900원 차돌박이+돌초밥·쫄면과 함께 팔지 말도록 기재된 간판 및 인테리어, (우상) 고양 라페스타 Y빌딩 1층에 입점한 일차돌 외관, (우하) 고양 라페스타 Y빌딩 1층에 입점한 이차돌 외관. ⓒ 프라임경제


문제는 해당 판례의 영향력입니다. 법에 비해 법감정이 진보적인건 유사 이래 늘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때문에 보편적인 법감정은 법원이 개별 사건들에 대한 일관적 판단을 통해 보다 윤리적인 기업 경영을 강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가처분 이후의 양사의 대응과 그에 따른 법원의 본안소송 판결은 이후 기업들의 베끼기 전략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우선 베껴서 출시하고 지적사항을 변경하면 법원의 철퇴를 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 것입니다.

지난해 프라임경제는 이차돌과 일차돌의 상표권 소송을 조명한 바 있습니다. 이차돌의 인테리어와 간판, 메뉴 등을 모방한 일차돌의 가맹사업으로 실제 양쪽 가맹점주들이 입는 피해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관련해 법원은 부정행위금지를 구한 이차돌의 가처분 소송을 인정했던 반면, 본안 소송에선 일차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반면 일차돌 측은 "결정 이후 새로 오픈하는 지점의 메뉴를 100원 낮추었으니 더 이상 침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왔지요. 

이에 이차돌은 일차돌의 본사인 ㈜서래스터 및 2개 가맹점 점주를 대상으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주체 혼동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다시 진행했고, 법원은 "이차돌과 유사한 간판 및 매장 외관을 함께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앞선 1차 가처분 결정과 사실상 일관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본안 소송에서 법원은 일차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상표권 침해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성과도용행위 등에 대한 이차돌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이차돌은 이와 관련해 "이미 가처분 절차에서 두 번 다 승소함에 일차돌(서래스터)은 기존의 간판과 매장 외관을 그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됐고, 그래서 이번 본안 1심에서도 당연히 승소할 줄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의 결과에 실망이 크다"며 "즉각 항소했으며, 상표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법적 심판을 제대로 받게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의 일관적이지 못한 판단에도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법원의 오락가락하는 판결이 미치는 악영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해당 판결을 보며 기업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키워 성공에 이르기까지 땀흘린 노력의 보상을, 보다 보편적인 법감정이 이해하는 범위안에서 법원이 지켜주는 날은 아직 먼 이야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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