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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악마는 부동산 정책을 입는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8.03 14:24:45

[프라임경제] 미국의 직장 생활 초년생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을 거뒀다. 탄탄한 줄거리로 영화화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의 애환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담아 단순히 '칙릿(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나 직장을 무대로 젊은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킨 가벼운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뉴욕의 내면을 다루는 정통 사회부 기자가 목표지만, 뜻하지 않게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패션잡지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가상의 유력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을 보조하는 말단 어시스턴트가 되면서, 바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생활에 시달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주목받는 잡지, 그것도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의 보조라는 역할이지만 막상 주인공은 내면의 혼돈을 느낀다. 경력 관리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일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일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상사는 변덕스럽다. 여기에 일을 이겨내지 못해 허덕이는 자신을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멀리 한다.

결정적인 사표 계기는 결국 말단 어시스턴트로서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어야 할 파리 출장 기회에 생긴다. 절친한 친구는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자신은 일 때문에 '당연히'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을 주변 사람들은 비난하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그런 주인공의 사정을 알지만, 편집장은 안타깝다는 위로 한 마디 없이 "잘 생각했다"고만 하고, "그만한 나이 때의 나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당장의 생활이 힘들든 괴롭든, '배우고 싶은 롤모델'의 말이었다면 세상 더없는 칭찬이었겠지만, 회의감에 지친 상황에서 저런 말은 '위로 아닌 이제 이대로 한 몇 십년 살면 저 편집장처럼 되는 건가'라는 자아가 붕괴되는 소리로 들린다. 결국 사표를 내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동경하는 명품들에 둘러싸여 살고, 전설의 패션 디자이너들과 두루 교분을 트고 지내더라도 자신에게 전혀 공감해 주지 않는 사람,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생활을 모델 내지 정답이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살기는 싫다는 주제의식이 일반적인 칙릿의 한계와 이 소설을 구분짓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22번의 실패'라고 반대파에서는 부르고 지지자들은 여전히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 내지 과정상의 진통'이라며 엇갈린 의견을 내놓는다. 

중요한 점은 정책 실패 논란과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공감 능력의 부재'가 아닐까?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는데 통계 지표를 어느 것으로 쓰느냐에 따라 달라보인다고 훈계하고, 다른 나라 사회 초년생들이 월세에 허덕이는 것과 달리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주는 기회인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있음에도 월세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게 여당 정치인들이나 이번 정권 고위직들의 태도다. 

도저히 부동산 가격 고삐를 제대로 죄고 있다는 소리를 하기 어려운 때에는 앞서 정권 탓을 하면 된다. 정부와 여당의 핑계를 다 이어 붙이면, 보수 정권이 잘못 프로그래밍한 부동산 상황을 해결하느라 사람들은 괴롭든 말든, 정의만 세우면 된다. '집 가진 사람들은 다 때려잡고, 모두가 전세도 못 살고 월세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된다.

배준영 미래통합당 대변인이 급기야 2일 구두논평으로 "22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왜 했는지 알겠다. 공감 능력이 0"라며 한탄하는 지경까지 왔다.

세상 어떤 정의를 세우는지 국민들의 의식주 기본 충족 자체를 흔들어 삶을 힘들게 한다면, 오히려 그런 아우성을 치는 이들에게 '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정책, 정부와 정당이라면 그건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 아닌지 궁금하다. 

그런 공감 능력이 결여된 부동산 당국자들이나 여권 정치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의 편집장에게 절망하는 주인공 같은 심경이 아닐까? 적어도 '악마가 부동산 정책을 입고 있다'는 소리는 확실히 면할 수 있게끔, 정권 후반부에 귀를 열고 노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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