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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의 코칭 이야기 27] 코치들의 브런치 소묘(素描)

 

허달 칼럼니스트 | dhugh@hanmail.net | 2020.08.14 18:59:53

[프라임경제] 서울 있을 때 몇몇 가까운 코치들이 모여서 하는 친목 겸 학술 모임이 있었다. 언젠가의 송년 모임으로는 모처럼 호사(豪奢)를 좀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서, 모 오성(五星) 호텔 부페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 브런치(Brunch)를 들기로 하고 모였다.

브런치 하면 생각나는 것이 미국 남부 재즈의 고향으로 알려진 뉴올리언즈의 프렌치 쿼터에 있는 브레넌(Brennan) 식당의 유명한 아침식사이다. 이 프렌치 쿼터라는 거리는 기본적으로 청교도 나라인 미국의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差別化) 하여, 취객(醉客)이 만취되어 비틀거리며 다녀도 흉이 되지 않는 거리라고 해서, 술꾼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모처럼의 해방구(解放區)를 찾은 술꾼들이 전날 밤 과음의 업보인 쓰린 위장을 안고 찾는 식당이 브레넌 식당인데, 굴 요리와 게 요리 그리고 다채로운 달걀요리가 가게의 자랑이었고, 아침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요리마다 추천 와인이 따른 메뉴를 제공하여 '과연, 해방구답네' 하고 미소를 머금었던 일이 기억 난다.

아침 식사로 유명한 Brennan 식당의 일러스트. ⓒ 허달

코치들 모임 날의 브런치는 부페였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일식(日食) 초밥, 이태리 식의 야채 볶음과 조갯살 요리, 생굴과 올리브유에 데친 해산물 요리 등을 아침부터 샴페인, 백포도주 등 음료와 곁들여 브레넌 식당 못지 않은 풍미(風味)로 훌륭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음식과 음료를 즐기다 보니 화제는 과식, 체중조절 특히 여성 코치들의 왕성한 식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매 유지 비결 등으로 다소 위험하게(?) 전개되었다. 당시, 관광차 다녀온 지 얼마 안돼 기억도 따끈따끈한 인도의 미투나(Mithuna) 조각상에서 발견했던 풍만형 미인 척도(尺度)나, 옛 중국 당삼채(唐三彩)에 표현되는 양귀비 형 미인의 척도가 모두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만에 가까운 푸근한 몸매를 최고의 이상형으로 매김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다산(多産)의 풍성함을 예감하는 아름다움을 여성 코치들에게 짓궂게 이야기 해보았으나, 여성 코치들은 아예 감동(?)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계제가 그래서였던가, 그날 코치들이 서로 나눈 코칭 사례 중에는 의외로 영양과 건강, 다이어트 등에 관한 라이프 코칭이 많았는데, 다이어트로 시작된 코칭이 결국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로 발전하여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삶, 존재 등 철학적, 종교적 주제가 고객의 코칭에 등장할 때에 코치는 어떻게 접근하여야 하느냐는 논의도 흥미로웠다. 결국 고객의 철학적 고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는 코치 자신의 철학적 사고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하리라는 데 원론적으로 의견이 합치되기는 하였지만, 그 자리에 참여한 코치들의 다양한 생각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노래를 스마트 폰에서 음원(音源) 찾아 들려주고, 고객과 불필요한 철학적 논의에 끌려들어가는 곤경(困境)을 모면하였다는 코치가 재치상(賞)으로 뽑히고는, 노래의 가사 첫 마디를 흥얼거려 들려주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후략)

그러면서 그 많은 '나'들을 통째로 뽑아내어 비우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일도 아니기에, 하나씩 둘씩 소중한 ‘남’으로 바꾸어 넣는 작업이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코치의 마음 비우기(Egoless) 를 이야기하였다.

기독교적 창조론(創造論)과 대비하여, 금세기 최고의 다윈 논자(論者)로 불리는 리쳐드 도킨스의 업그레이드 된 진화론(進化論) 등도 언급되었는데, 그의 저서에 등장한 삶과 죽음에 대한 도킨스의 표현이 재미있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역설적(逆說的)이지만 이 말은 우리가 행운을 타고난 존재라는 말도 된다. 우리가 상정(想定)하는 대부분의 잠재적(潛在的) 존재들은 죽음을 경험하는 행운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 이 자리에 나를 대신하여 존재할 수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결코 삶을 성취하지 못한 잠재적 존재들의 숫자는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숫자보다 많다.'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여기 있는 개개인의 존재 확률이 과학적 잣대로 보아 기적(奇蹟)에 가깝다는 의미이겠는데, 이 낮은 과학적 개연성이 자아(Ego)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신(絶對神)의 창조론을 펴는 논거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코치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창조론에도 일리가 있다 하겠으나 패자부활전(敗者復活戰)이 없는 것이 문제 아니겠느냐는 반어법적(反語法的) 의견을 피력하였다. 인과률(因果律)이란 과학이며, 어떤 경우에도 원인(因)이 있으면 그 과보(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삶의 일회성(一回性) 교리를 따르다 보면 죽음이 인과법칙의 이행을 거부하는 모순을 낳게 되기에, 환생과 윤회(還生과 輪廻, Reincarnation)를 긍정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인과(因果, Cause and Effect)와 연기(緣起, Conditioned Genesis)의 과학, 나아가 '켄 윌버(Ken Wilber)'의 '무경계', '그렉 브래든(Gregg Braden)'의 'Divine Matrix' 이야기까지, 현상에 참여(參與)하는 관찰자(觀察者)로서의 인간, 이에 따른 불확정성(不確定性), 인간계의 상의성(相依性)이 잠시 더 이어지는 고급(?)진 화제가 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코칭 질문을 살펴보자.

"김 아무개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건 이름일 뿐이고, 당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反問)이 기다리고 있다.

"S 회사의 영업을 맡고 있는 임원"이라고 대답하면 어떤 반문이 돌아올까?

의당, "그건 당신의 일일 뿐이지, 더욱더 당신 자신은 아니지. 운운" 하는 짜증나는 반문이 또 튕겨져 나올 것이다.

이런 질문을 인내하고 대답하는 것이 결단코 쉽지만은 않은데, 결국 모든 존재는 다른 무언가와의 관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자신을 확정(確定)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존재의 상의성이다.

되풀이 되는 말이지만, 그만큼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코칭은, 그러므로, 이 의미 깊은 '존재의 상의성'의 세계에 주목한다.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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