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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 시진핑 삼성 반도체 시찰 기필코 거절해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8.21 09:03:12

[프라임경제] 21~22일 양일간 일정으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한국을 찾는다. 그는 부산에서 서훈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회동하는 등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 등 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양 주임과 우리 당국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추세에도 진행되는 고위급 대면 외교인 만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등 굵직한 현안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성급하지만 설득력있게 제시되는 이유다.

문제는 '청구서'다. 양국은 한반도 및 국제 정세 등 상호 관심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의견을 교환할 여러 문제에서 중국은 거의 항상 고압적 자세를 취해 왔다.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한 불만을 '한한령'이라는 채찍으로 표출, 한국 길들이기를 시도했던 것은 물론, 북핵 악재가 지금껏 종양처럼 커지는 상황에도 큰 역할을 해 왔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 개발이 불편하면서도, 동북아 역학 측면에서 북핵을 적절한 도구로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의 방한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물론 북한과 대화를 하고, 북핵 문제를 푸는 데 미국이나 러시아 등의 도움 못지 않게 중국의 협조는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중국이 북한 봉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교류를 계속하는 식으로 도와준 채널이기에, 중국의 협조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시 주석이 연내에 방한할 경우의 '드라마틱한 효과'에 정부가 초연할 수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을 우군으로 삼는 외에도, 우리 정부가 신경쓸 문제가 적지 않다. 중국이 시 주석 방중을 순전히 호의로 해 줄 가능성은 사실상 '0'다.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 한국에 그 어느 때보다 비싼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최악의 국면을 걷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한반도라는 첨예한 이해 충돌의 현장에 서 있는 우리를 우군으로 끌어넣고 싶어한다. 

미국은 이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통해 한국의 우주발사체 고체연료 제한을 해제하고,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제한까지 푸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G7 회동 초청 카드 등도 꺼낸 바 있다. '중국 견제'에 확실히 동참하라는 다양한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중국 역시 '중국 견제 불참'을 우리 측에 요구할 필요성이 높다. 

전략적 모호성, 더 직접적 표현으로 줄타기를 최대한 오래 하는 것이 좋겠지만 지금 외교 상황은 그런 여지를 이미 오래 전 넘어섰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나 의지 자체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는 이번 정부 출범 이후 계속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펼치는 와중에 부득이하고 최소한의 마찰은 있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대북 재제에 지속적으로 엇박자를 낸다는 우려를 사면서 그 선을 넘었다. 그렇게 미국과 각을 세우면서 추진한 한반도 운전자론은 북한의 야멸찬 태도에 결국 실패작 꼬리표가 붙었다.

그럼에도 새롭게 취임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워킹그룹의 역할론에 대한 일부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한미워킹그룹의 운영과 기능을 재조정·재편하겠다는 식으로 나서는 등 기조가 바뀌는 것 같지 않다. 

"워킹그룹에서 논의할 것과 우리 스스로가 할 것을 구분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통일 관련 업무의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원론적 이야기의 선을 넘어, 민감한 시기에 양국의 오랜 동맹 관계에 굳이 상처를 낼 수도 있는 위험한 행보다.

줄타기도 아니고, 이미 충분히 미국과 불편한 상황을 빚어대는 상황 속에 중국이 내미는 요구 조건을 수용해 버리는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 고속도로에 가깝다. 

일부 언론은 이미 '시 주석이 방문할 때 삼성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는 것을 중국이 제의할 가능성' 등 구체적 문제까지 보도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상황에서 첨단 산업 발전 가능성은 특히 집중 타격 목표가 되고 있다. 전자와 통신 등이 거기 해당한다. 그런 와중이기에, 반도체 등 문제에서 한국과 한국 기업들은 중국이 충분히 탐낼 협조 파트너 후보군이다. 

그렇기에 시 주석의 반도체 공장 시찰 등을 허용하는 것은 미국과의 본격 마찰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된다. 한국 정부는 물론,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을 아마츄어리즘이나 계산 미숙도 결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문제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아마츄어리즘도 아니고 현 정부의 판단력 자체에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오로지 북한에 온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구도에서, 미국보다 중국과의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덜컥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할 가능성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먹거리, 한국 대표 기업의 미래를 걸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런 가능성이 언론 보도에서 구체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는 자체가 정부의 미숙과 불안정성을 방증한다. 

시 주석 방한이 불발되고 한반도 정세에서 다소 더디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더 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더 큰 그림에서 이상한 청구서를 덥썩덥썩 받아드는 것은 결단코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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