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의 코칭 이야기 28] 시인의 뇌와 Burning Yes

2020-08-21 15:40:31

[프라임경제] 서기 23세기쯤 되어서, 인체 각 부분을 마음대로 교체 할 수 있게끔 과학이 발달하였다. 당연히 뇌(腦)도 마음대로 골라 바꾸어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고객(顧客)이 뇌 가게(Brain Shop)에 들러 주머니 사정(事情)에 적당한 뇌를 고르고 있는 중이었다. 진열장을 보니 단돈 5000달러 짜리 싸구려 뇌(腦)부터 수만달러, 수십만달러 단위의 뇌까지 아주 선택이 다양하다. 익숙한 이름이 있어 가격표를 보니 아인슈타인 5만달러 가격표가 붙어 있다.

"이걸 사야겠군" 하고 일단 마음은 정했지만 도대체 더 비싼 뇌는 누구의 것인가 궁금해서 옆 진열장을 기웃거려 보았다. 제일 비싼 뇌는 포장도 아주 호화롭게 되어있고 가격이 30만달러나 된다는데 아무래도 거기 적혀진 이름이 낯설은 이름이다. 마침 가게 점원이 지나가기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건 도대체 누구의 뇌인데 저렇게 비싸지요?"

점원이 말했다.

"아, 이거요? 이건 20세기 한국 정치인 모(某) 장군의 뇌인데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신품(新品)이거든요."

군사정권 시대에 유행하던 블랙 유머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장군 명칭을 떼어버리면 문민(文民) 정치인 범용(凡用)으로 꽤 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근간 책략이 나쁜 방향으로는 아주 뛰어난 무뢰배(無賴輩) 정치인들을 여럿 겪은 뒤라 이 유머는 그만 용도폐기 되어 버렸다.

▲Scientific America 잡지의 Brain 일러스트. ⓒ 허달


그렇지만 생각해 보시라. 선물용이 아니라 고객 누군가가 자신의 뇌를 갈아 끼우기 위해 새 뇌를 산다면, 뇌 상점에서 인기 있는 뇌는 책략가의 뇌일까, 시인의 뇌일까, 아니면 과학자/철학자의 뇌일까?

내 개인적 소망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시인의 뇌를 고르겠다는 원매자(願買者)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교세라를 세계100대 기업으로 일궈낸 뒤 탁발승으로 돌아간 이나모리 회장이 '카르마 경영'에서 주창(主唱)한 바와 같은 맥락에서, SK그룹의 '최종현 사장학'에서는 기업의 이윤추구에 도(道)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는데, 이 '일 道'에서는 기업경영의 원칙과 함께 자발적, 의욕적 환경 하에서의 두뇌활용(Brain Engagement)이 강조된다. 두뇌활용이라는 용어는 과정(Process)에 주안점을 둔 표현일 뿐이고, 이 역시 목표하는 결과물은 창의력이다.

영구 존속을 이상(理想)으로 삼고, 아주 오래 가는 기업을 만들려면, 지속적으로 안정과 성장을 동시 추구하려는 의제(擬制)된 인격체인 기업과, 길어야 30~40년 동안 공헌하다 결국은 떠나야 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時空間) 괴리를 메울 수 있도록,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어야 승-승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승-승을 이루는 가치는 나누어서 줄지 않는, 풍요로운 마음가짐(Abundance Mentality)에 합당한 가치여야 한다.

나누면 줄어드는 돈, 명예 같은 가치는 일시적으로 구성원의 헌신(Dedication)을 얻는 유인(誘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영을 승-패/패-승의 패러다임으로 이끌어, 기업과 구성원 사이에 지속 가능한 시너지를 이루려는 의도를 궁극적으로는 와해(瓦解)하고 만다.

기업경영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일까?

전문코치들의 기업코칭 워크숍 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다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윤추구'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정답보다 '사회적 공헌'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어서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젊은 코치들, 전교조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군" 하고 웃어넘기기에는 코치들의 태도가 전혀 농(弄) 끼 없이 진지하였기에 가만 그 이유를 살펴보니, 거기 모였던 전문코치들의 전력(前歷)이 그러 하였다. 학생 시절 운동권 출신이었으나 운동권과 연을 끊은 뒤, 코칭 입문한 코치들도 있었고, 대기업 HR 부서에 전문직으로 근무하던 분들도 있었다. 둘 다 기업의 성공적 경영보다는 구성원의 성취와 완성이 코칭의 선결 과제라는 측면에 가중치를 두고 기업코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허 코치님 웃지만 마시고, 말씀 좀 들어 봅시다. '사장학' 저자 직강(直講)으로…."

하는 수 없이 끌려들어 'SK의 기업관(企業觀)'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졸저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에서 인용한다.

(전략)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하여야 하고, 기업에서 일하는 구성원은 이를 위해 일정기간 기여하다 떠나는 것이다."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자신의 사장학 텍스트의 제일성(第一聲)을 선언(宣言)의 형태로 던졌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SKMS 기업관(企業觀)'인데, 나더러 평가하라면, 기업과 그 구성원을 바라보는 기업인(企業人) 최종현의 가감(加減) 없는 솔직한 진술이며, 그의 경영철학을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겠다.

"회장님의 뜻은 이해합니다만, 왜 하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넣어 구성원들을 위축되게 해야 합니까? 잘 구슬려서 열심히 하도록 해야 할 텐데요."

"떠나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인가?"

"그렇지만 임직원들이 생각하기에는, 오너(Owner)는 지속적으로 군림하면서, 종업원들만…"

"이봐, 자네들은 구성원이 누구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나?"

"… …"

"나, 회장도 구성원일 뿐이야. 그러면 됐나?"

"그래도 어쨌든 떠나야 한다는 어감이…"

기업과 그 구성원의 관계를 규정하는 이 선언에 대하여는 이후 이러저러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 주요 쟁점은 왜 굳이 '떠나는 것이다'라는 명시적 표현을 넣어 구성원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어서 어찌 보면 '일의 도(道)'를 추구하기 위해 기업가의 철학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선언하려고 의도한 최 회장의 철학적 깊이에는 많이 못 미치는, 좀 유치한 수준의 쟁점이었다고 필자는 회고한다.

"이런 기업관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을 하자."

적어도 기업의 리더/사장이 되려는 사람은 이와 같은 'Burning Yes'에 동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최 회장은 역설하곤 했었다.

"(회장을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은 인간이므로 이기적 존재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발전과 함께 기업발전을 이루어야 하고, 자기만을 위한 기업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발전에 더 이상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스스로 기업을 떠나야 하며, 이 원칙은 상위 직에 올라 갈수록 더 잘 지켜야 한다."

"반면에 기업은 기업의 존속,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하여 기여한 구성원을 그 기여도에 따라 직접, 간접으로 우대하여야 하며, 기여를 마친 구성원이 스스로 떠나는 때에는 그에 대한 퇴직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필자는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업경영의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최종현 회장의 위와 같이 딱 부러지는 태도에 매료되었었다.

2005년 1월21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0여 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두 분이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 마가레트 당시 나이 70대 초반의 두 분 수녀가 그분들인데, 마리안 수녀는 1962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6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이곳에 와서 평생을 이국(異國)의 한센병 환자 구호에 몸 바친 그들은, 번거로운 환송식이 싫어 이른 새벽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섬을 떠났는데 이들이 남긴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겠다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마리안 스퇴거, 마가레트 피사렉 두 분이 떠난 지 7년이 가까워 오는 2011년 12월에는 두 분 수녀의 이름을 딴 배가 각각 한 척씩 만들어졌다. 장금상선(주)이라는 화물선 회사의 갸륵한 대표이사 정태순 씨는 "두 분에 대한 존경과 감동의 마음을 나누고자 새로 만든 선박 두 척에 각각 두 분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밝혔다.

종교의 헌신과 봉사를 기업에 종사하는 일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할 법 하다. 그러나 '천년 가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일의 도(道)'를 실현한다는 것을 목표한다면 이런 정도의 이상(理想)은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하략)

기업코칭은 기업의 경제적 존재 이유인 이윤추구를 원칙에 따라 충실히 추구하는 것을 제1의(第一義)로 삼고, 기업과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구성원, 나아가서는 기업의 여러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이 함께 승-승 할 수 있는 공통적 가치 추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 공통가치를 '창의력 발현'이라고 놓고 보면 문제의 해답이 보인다는 것이 이른 바 '일 道'의 착안점이었던 것이다. 풀어 말하면, 창의력 발현을 통하여 기업과 주주는 이윤을 얻고, 구성원은 자신의 성장, 성취에 대한 보람과 인정, 보상을 얻는, 승-승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한다는 말이다.

'개인창의력'은 상상력과 패러다임 전환의 산물(産物)이라는 점에서 '집단창의력'은 승-승과 공감적 의사소통을 추구하여 서로 다름을 축복 삼는 시너지의 현재화(顯在化)라는 점에서, 둘 다 기업코칭이 목표삼고 있는 주된 본령이다.

기업경영은 냉철한 결정에 늘 직면해야 하는 비정한 일이므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시인의 뇌를 사서 장착(裝着)해서는 이에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는 분이 만약 있다면, 기업을 사랑하고, 가슴에 품고 간 많은 성공한 기업인들이 어째서 'Burning Yes'를 주창하는 낙관주의자들이며, 눈물 많은 감성주의자들이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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