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영의 Law포유]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母)의 업무상 재해

2020-08-24 11:48:30

[프라임경제]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제도로서 도입된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제도는 일터에서 발생한 재해를 신속·공정하게 보상해 해당 재해를 입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고 사업자에게는 불시의 부담을 분산·경감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줄이는 등 재해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발생한 재해로 근로자가 부상당하거나 사망하였다면 그 근로자나 가족을 보호 내지 보상해 주기 위해 산재보험 제도가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의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 본인 뿐만 아니라 태아도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아, 모체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내렸다.

본 사건의 원고들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로 모두 2009년에 임신하여 2010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출산한 아이들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원고들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것이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피고는 업무상 재해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만을 의미하고 원고들의 자녀인 '태아'는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로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요양급여신청을 반려하는 처분을 했다.

원고들은 이에 불복해 피고를 상대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제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여 피고의 처분을 모두 취소했으나, 원심인 서울 고등법원은 제1심의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산재보험법이 그 적용대상을 '근로자'로 명시하고 있어, 2016년 고등법원이 "여성근로자에게 출산한 자녀를 위한 보험급여수급권을 인정하지 않음이 헌법상 평등, 국가의 모성보호의무 및 사회보장·사회복지증진 의무 등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태아의 건강손상 등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어려워 본 사건의 제1심과 원심의 판단이 각기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기본이념과 헌법상 보호되는 '모성 및 태아 생명'을 강조해 원고들인 여성 근로자와 태아 모두 업무상 재해 대상에 포함할 수 있으며,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업무로 인해 태아의 건강이 손상됐다면 이후 출산으로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어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들이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먼저 헌법 제32조 제4항과 제36조 제2항이 국가의 여성 근로 특별보호의무 및 모성보호의무를 선언하고 있으므로, 국가는 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노동조건과 관련해 해석하면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했다.

아울러 민법상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고, 산재보험법에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산재보험법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되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게 되므로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모성과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유산과 태아의 건강손상을 구별할 합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유산의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왔던 피고의 입장 또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는 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생존권적 기본권, 국가의 모성보호의무 및 여성 근로의 특별보호의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를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충실히 반영해 큰 의의가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이 여성 근로자의 관점에서 안전한 근로환경, 일과 육아가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계기가 돼 심각한 저출산 문제해결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찬영 변호사·공인노무사 /스마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대한진폐보호자협회 자문변호사 / 서울특별시 노동권리보호관 / 한국폴리텍대학교 자문위원 / 양천구 노동복지센터 자문변호사/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산업안전보건과 의료 고위과정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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