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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산진구 '빈 박스만 잔뜩 도착' 애초부터 꼬였던 마스크 사건

직원들 '헛웃음' 첫 해프닝 때 강력히 항의, 업체 압박했으면 큰 손실 줄였을 것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20.09.02 17:49:18

[프라임경제]부산광역시 부산진구(구청장 서은숙)의 마스크 사기 논란의 여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진구의회는 마스크 관련 의혹이 확산되자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오는 3일 자체 조사특위를 구성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앞서 부산진구가 유통업체로부터 마스크 선금을 떼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은 본지가 지난 8월30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부산시 진구청이 업자에게 마스크 사기를 당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 진구청

부산진구는 지난 4월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KF94마스크 100만장(장당 1980원)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하고, 구 예비비 20억원을 긴급 편성했다. 

하지만 A사는 최종납품일인 4월20일까지 전체물량 중에 절반이 조금 넘는 55만장을 납품하는 데 그쳤다. 구의 수차례 독촉에도 해당 업체는 이미 받은 금액 중 3억1000만원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특히 막상 공급된 물품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KF94 마스크는 겨우 6만8020장(1억3400만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일본 에코마스크Ⅲ(48만장·9억5040만원)였던 것으로도 파악됐다. 

부산진구와 A사는 KF94 마스크 부자재(필터) 수급불안정을 이유로 국산 마스크 수급이 힘들다고 판단, 지난 3월30일 N95마스크로 대체하기로 한 차례 변경계약서를 다시 쓰기도 했다.

N95는 미국 안전보건원(NIOSH)의 기준에 따르면, 1.0 마이크로미터(㎛) 이상 크기의 미세과립을 95%이상 걸러낸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렇게 계약을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실제 납품된 마스크는 N95가 아닌 일본수입산 에코마스크Ⅲ로 드러났다.

결국 계약 내용을 바꿔 주는 등 상황에도 결국 납품이행을 제대로 하지 못 했던 셈이다.

그런데 마스크 공급업체 선정도 석연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 마스크 구매 담당부서는 안전도시과로 B사와 KF94를 1870원에 계약했었다. 그런데 업무가 행정자치과로 이관되면서 1980원으로 껑충 뛰어 올랐고 공급업체는 B사에서 A사로 넘어갔다.

업체 변경사유는 좀 더 취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혈세 20억원을 구청장 전결로 수의 계약할 때, 특히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 계약임을 감안할 때 A사가 이런 특수한 거래를 수의계약으로 맡을 정도의 공신력 있는 업체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A사는 골프웨어 등 섬유·패션사업에 주력하는 유통회사로 알려졌고, 국내에는 마스크생산에 필요한 자체 제조공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재무제표 상에 2017년 (-54억), 2018년 (-24억) 등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 상황이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A사와 계약한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회사를 직접 방문했고, 몇몇 취업사이트에 공개된 기업정보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했다"고 답했다. 

이어 "처음 겪은 일이라 행정적인 아쉬운 부분은 공무원으로서 달게 처분 받겠다"며 "그러나 주민들께 나눠 드린 일본산 마스크 필터품질만은 KF94와 N95 상당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자신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마스크 납품 시기와 전체 납품 물량 중 KF94의 비율 등을 보면, 이 같은 해명은 신빙성을 잃는다. 이번에 본지가 확인한 A사 관련 마스크 검수서에는 최초 납기일이 2020년 4월2일(에코마스크 48만장 및 KF94 9600매)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KF94 마스크만 따로 이보다 훨씬 전인 3월19일에 이미 납품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처음부터 이 업체가 제공할 수 있는 KF94 물량은 이미 한정돼 있었고, 그 이후 공급 상황이 어렵자 3월30일 변경계약서를 썼다. 물론 이조차 지키지 않았다.    

부산진구가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준 일본 에코마스크Ⅲ. 이해를 돕기 위해 겉포장지에 마스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았다. ⓒ 진구청

이 과정에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숨어 있다. 이 업체는 KF94마스크 납품도 원래 3월16일에 하려 했다. 구청 직원에 따르면, 이날 마스크 24박스를 실은 화물차 한 대가 서울에서 출발 약 400킬로미터를 달려 부산진구청 앞마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박스를 뜯는 순간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 

모든 상자가 내용물 하나 없는 빈 박스였다는 것이다. 아연실색해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는 직원들은 이 순간을 두 번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초 전체 물품을 공급할 능력이 부족했고, 결국 초도물량 이후에는 KF94 공급의지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부산진구가 계약 이행이나 손해배상 등 책임 추궁을 했어야 하는데 나라가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우니 아래 등급 물품으로 조건 변경을 쉽게 해 주어, 오히려 일을 키운 게 아니냐는 것. 

이런 가운데 장강식 부산진구의회 의장은 "집행부 주도로 진행된 이번 마스크공급에서 긴급재난지원으로 분류 돼 의회가 예산승인 말고는 일체 관여할 수 없는 독특한 사업이었다"며 "여러 정황상 사기죄 성립도 가능해 보이는데 민사소송만 제기한 집행부의 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행부는 마스크 수급이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주장하지만. 3월 중순께는 정부 공적마크스 공급에 여유가 있어 줄을 서지 않아도 약국에서 구매 가능했던 때였다"고 짚었다. 

실제로 다른 구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부분 3월 중순 즈음 마스크 무상 배포를 할 수 있었다. 

이에 부산진구의회측은 3일 의회에 마스크특위가 구성되면 주민들의 혈세 20억원이 어떻게 쓰였는지 면밀히 조사해서 한 치의 의구심이 남지 않도록 조사할 방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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