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10년 전 오늘] 삼성과 중소기업의 상생…'세계 일류'에 대한 기대

동반성장위해 뼈를 깎는 노력 보여줄 때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9.13 00:14:30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12명의 재벌 총수들이 조찬간담회를 가졌던 날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적극적인 재벌친화정책을 지속해왔음에도 재벌들의 투자가 미미해 채용과 소득의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께 부탁의 말이 있다"며 "서민들의 일자리가 창출이 안 된다. 실업률이 통계상 8%다. 실제로는 더 된다.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통계상 낫지만, 세계에서 가장 경제를 회복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일자리가 매우 더디게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연합뉴스

또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동반성장하자고 하지만 모든 걸 규정이나 법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래서 인식을 한번 바꿔보자. 인식을 바꿔 기업 문화를 바꿔보자. 아무리 총수가 그렇게 생각해도 기업 문화가 바뀌지 않으며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발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주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을 이끌던 이건희 회장은 "사실 대기업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이 회장은 "지난 30년간 협력업체를 챙겨 왔지만, 그 단계가 2, 3차로 복잡해지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2,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좀 더 무겁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챙길 것입니다. 동반성장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를 만들어 가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지요.

그래서 이번 기사는 동반성장과 상생에 대한 이 회장의 생각이 삼성그룹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중소기업이 일류가 되는 것이 동반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인식을 바꾸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일까요.

우선 여기서 쓰인 '일류'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방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뜻인 이 단어를 이 회장은 꽤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세계 1등'을 추구하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습니다. 

이 회장의 수많은 어록 가운데서도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돼야 한다'는 주장과 의미를 같이하는 발언은 아마도 2000년 삼성전자 신년사에서 나온 '일류 기술과 일류 제품은 일류 인재가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와 맥락을 같이 할 것입니다. 

당시 이 회장은 "일류 기술과 일류 제품은 일류 인재가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창의력과 지식이 더 소중해지는 21세기에는 인재야말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회장의 인재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요. 일류 인재에 대한 욕심이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계일등' 경영철학과 맞물려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았던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돼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읽어지는 까닭입니다. 

만일 삼성과 이 회장이 상생을 우선했다면 일류 중소기업의 '정당한 경쟁을 방해하거나', '기술을 내재화 하거나', 아예 '중소기업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하는' 등의 사례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사례를 통해 일류 중소기업에 대한 이 회장과 삼성의 태도를 확인해보겠습니다.

2004년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하이패스 시스템 장비 입찰을 위해 현장 성능시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성SDS와 포스데이터가 각각 컨소시엄을 꾸려 입찰에 참가했고 어느 쪽의 성능이 더 뛰어난가를 실사하는 과정이었지요.

그런데 삼성 SDS직원이 몰래 근처에 숨어서 경쟁사의 장비 테스트를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백억의 계약을 위해 직원을 동원해 타사의 계약을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지요.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삼성SDS의 직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국내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주파수 통신방식의 능동형 시스템'이 '공동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을 방해한 혐의로 각각 징역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2008년 삼성엔지니어링은 하도급업체의 배관물량산출(이른바 MTO) 자동화 프로그램의 기술자료 샘플도면을 입수, 동일 기능 프로그램을 복제 개발의혹을 받은바 있지요. 당시 기술탈취 의혹의 전면에 있던 삼성엔지니어링 직원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간담회 이후에도 사례는 많습니다. 2017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이 거래업체에게 재하청 강요, 기술유용 등 불공정행위를 자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의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이 보안전문업체인 아이시드와 구두계약 체결후 인력부터 현장에 투입할 것을 요구하고, 실제 계약은 삼성SDS등 다른 거래업체와 맺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하도급법 적용을 회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아이시드가 보유한 보안기술에 대해 삼성엔지니어링이 관리하는 현장 일부에만 적용하는 계약을 체결하고도 다른 현장에서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엔지니어링을 '하도급법 등 위반행위'로 신고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삼성이 중소기업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앗아 일류가 됐다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고는 합니다.

삼성이 기술을 빼앗지 못했을 경우 어떤 자세를 취해왔는지도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최근의 일인 삼성전자와 케이아이피와의 소송전을 보면,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은 2월21일(현지 시간) "삼성전자가 ㈜케이아이피(KIP)의 특허 기술을 '고의적'으로 탈취했다"며 2억 달러(한화 약 24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건의 중심인 이 특허 기술은 이종호 교수(서울대)가 지난 2001년 발명해 특허권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자회사 케이아이피가 가지고 있는 '벌크 핀펫(FinFET)'이라고 불리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입니다.

한국 특허청은 삼성전자의 ‘특허 무효 심사’ 신청에 대해 지난해 8월 "특허가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를 받아들인 인텔과 애플은 이미 케이아이피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특허사용료를 지불했습니다. 

관련해 이 교수측은 삼성전자에 기술 내용을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사용료 합의를 요청했지만 삼성전자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며, 재판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가 이 교수에게 해당 기술에 대한 설명만 듣고 사용료는 내지 않은 상태에서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는 항소를 통해 삼성전자의 고유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받겠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별도로 미국 특허심판원에 특허 재심사를 신청하여 현재 항고심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시계를 돌려 현재를 조명해 볼 차례입니다. 2020년은 삼성의 경영과 관련해 무척 의미있는 시기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5월 대국민사과에서 자신 이후 더 이상의 승계를 스스로 포기했고, 경영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을 외부 견제집단을 통해 세간에 공개하고 바로잡는 시스템(준법감시위원회)을 도입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사과문 첫 문장에서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사실 대기업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발언은 더욱 큰 의미를 갖게됩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따른 구체적 실천 방안을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에 보고하고 대기업 갑질 근절을 최초로 명문화한 가이드라인을 주요 계열사에 공지했습니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하는 한편 변화와 혁신을 위한 장치를 신속하게 도입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과 실천입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불법 승계 수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것 만은 인정해야하겠지요. 

하지만 노력이 결과를 거두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가이드라인은 하청업체에게 상식수준 밖의 행동을 하지 말라는 내용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배포한 '협력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삼성 직원들은 협력사 방문 시 사전에 동행자, 협력사 등록 방문 신고 서약서를 쓰고 승인을 받은 뒤 방문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협력사 방문 전 최소 하루 전에 통보하고 동의하에 방문해야 하며, 협력사 방문 시 기술자료를 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협력사 방문 시 다른 회사에 기술자료가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협력사 방문 시 금전요구를 하는 등 사적이익을 취득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당시 자료를 보며 '이렇게 까지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행동을 가이드라인까지 제작해서 알려줘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8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홈페이지가 개설된 이후 이달까지 220여 건의 신고·제보가 접수됐다"며 "개인 민원이나 불만사항 신고를 제외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진행중인 제보는 약 50여 건(22.7%)으로 '하도급 갑질'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습니다. 홈페이지는 3월 말경 개설됐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밝힌 제보 가운데 갑질 근절에 대한 공지 이후에 접수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경영을 위해 썩은 곳을 잘라내는 노력'을 기대했더니 '상식적으로 행동하라'는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고, 여전히 하도급 갑질은 나타났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삼성의 '세계 1등'보다 '부당승계'를 기억할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은 제품이 좋아서 삼성을 구매하겠지만, 동시에 청문회장에서 이 부회장의 표정을 기억할 것입니다.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삼성이 '일류'에 매몰되지 않더라도 삼성의 기술과 경쟁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반대로 삼성이 배끼거나 빼앗은 것에 대해 복권해 달라는 요구도 늘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일들은 삼성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의 일류로 인정받는 삼성그룹을 조명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보며 오늘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