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소장파' 박형준 교수, 부산시장 출마 저울질

2020-09-14 08:26:42

- 전략과 성품 면에서 높은 점수…첨단 업종 부산 유치 능력 등 기대감 높아

[프라임경제] 박형준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이 성추문으로 사퇴한 상황에서 내년 치러질 보궐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 보궐선거를 둘러싸고 여와 야 모두 셈법이 복잡한 가운데, 그의 등장이 역학관계 변화에 중요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박 교수는 17대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한 경험이 있고(당시 지역구는 부산 수영구), 대통령직 인수위원과 청와대 정무수석·사회특보 등을 지냈다.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인지도가 높은 데다, 초선 의원 시절 당시부터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의 싱크탱크'로 평가됐을 만큼 탄탄한 이론가로 꼽힌다.

그가 근래 지역 언론에 "이번에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 부산시장을 해야 한다”고 시사하는 한편, '교통·통신·교육·보육·건강' 등 5대 분야를 잘 갖춰야 한다는 구상을 드러낸 상황이 그래서 관심을 모은다. 정책적으로 상당한 검토와 구상을 준비했을 뿐더러, 그간의 정치 경력상 실행력도 상당할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인수위 당시 강서 그린벨트 1000만평 해제에 공이 크다는 점, 주요 대기업 오너들과의 관계를 바탕삼아 첨단산업 분야를 부산에 유치할 것이라는 기대감 등 세부 이야깃거리들이 전략통의 면모를 더 빛내고 있다. 

민중당과 기자생활 거쳐 '중도보수' 자리잡은 '전략통'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과거 MB 대선캠프 당시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는 모습. ⓒ 연합뉴스

박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석·박사 과정도 모두 모교에서 마쳤다. 사회학 중에서도 특히 정보사회학 분야를 오래 연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잠시 하기도 했다.

단순히 정치에 관심이 많은 폴리페서가 아니라, 교수 생활 중에 시민 운동에 늘상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학생 운동에 심취했을 당시 '가명'으로 출간한 이론서 수가 적지 않다. 민중당에서도 활동했던 바 있다. 이런 이력을 학자 생활 중의 행보나 및 정치 참여와 연관짓기도 한다. 이처럼 과거 품었던 좌파적 면모는 그가 이후 합리적 보수 혹은 중도보수의 탄생과 세력 확장에 크게 기여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2004년 공천을 받으면서 국회에 진출했고, 2006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임으로 오세훈 변호사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세우는 과정에서 MB 진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 MB 측과 이전에 큰 인연이 없었지만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맡아 네거티브 공세를 막아내는 역할을 소화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고 여러 공신들간의 내부 관계도 관심을 모았는데, 그는 이때 '소장그룹'으로 분류됐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이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은 '원로그룹', 진수희·안경률·이군현 당시 의원 등이 '이재오 그룹'으로 분류됐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정두언 당시 의원 등 젊은 인사들과 함께 '소장그룹'으로 분류됐던 것. 민중당 시절 인연에 따라 이재오 그룹에 가깝게 지내는 대신 소장그룹으로 기운 것이 눈길을 끈다.

소장그룹 내에서의 위치와 그의 역할은 크게 둘로 나눠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실력 특히 정책 전문가로서의 독보적인 위상이다. 실제로 고 정두언 전 의원 등이 원로그룹과 자주 불협화음을 빚을 때 소장그룹에 속하는 인사들은 특히 견제를 받았지만, 박 교수는 실력 때문에 큰 부침없이 청와대에서 계속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중도보수 및 실용주의로 견인해 대선을 승리로 이끌고, 이후 집권 기간 내내 보좌한 숨은 공로자로 그를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부터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에 이어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당 내에서 그 수가 많지 않은 '전략통' 및 '정책 전문가'로서의 특성과 재능이 확연하다는 게 그의 장점이다. 

◆네거티브 전면전 와중에서도 두드러졌던 성품이 매력 

둘째, 성품 측면에서의 특성이다. 이는 MB 정부 당시 그가 소장그룹의 특수한 위상에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적을 가급적 적게 만들 수 있었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아울러, MB 정권 탄생 이전에 네거티브 공세가 치열했던 당내 경선이나 이후 대선 본선에서의 그의 역할과 이후 행보에서도 이 측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즉, 당내 경선 과정에서 날카롭게 박근혜 캠프와 대립하고 또 부득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던 MB 캠프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적이나 원한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 

비록 18대와 19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되는 적수에게 밀려 국회 재입성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다른 친이 인사들 대비 큰 핍박이나 수난은 겪지 않았다.   

정계를 떠난 다음에도 정치 평론가로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주요 배경으로 그의 이 성격 면모를 부각하는 이들도 있다.

1980년 시위 당시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쳐 불편한 가운데서도 그는 좀처럼 찡그리는 법이 없다. 흥분하는 일도 별로 없다. 보좌진이 큰 실수를 저질러도 꾸짖는 법이 없는 것으로 익히 알려졌었다. 

그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실물정치 영역에 그것도 선수로 직접 진입할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3일 그는 한동안 닫아 뒀던 SNS를 다시 열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생활 청탁 논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당정청이 총동원돼 추미애 장관 한 사람을 지키려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등 격한 지적을 쏟아냈다.

"민주주의의 가치, 공정과 정의의 가치, 상식과 합리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다"는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야당 몫으로 제2의 도시 수장 자리에 도전할 그가 보여줄 상식과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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