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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업계 '무늬만 임원' 노조활동 대법行…첫 판례 생기나

삼안 엔지니어링 노조, 사측 노조가입범위 제한에 부당노동행위 제소…엔지니어링업계 촉각

김화평 기자 | khp@newsprime.co.kr | 2020.10.13 14:36:00

지난해 11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삼안 경영진, 노동위 판정 · 법원 판결 이행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태신 삼안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프라임경제] 실제로는 직원 대우를 받는 엔지니어링업계 임원의 노조활동과 전임자 지위확보에 대한 첫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받게 됐다. 

엔지니어링업계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 향후 '무늬만 임원'의 노조가입과 활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지니어링업계는 통상 이사대우나 이사의 경우 실제로는 직원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사대우 직급의 실제 사내 직무와 위상은 타 업계의 '과장' 정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그간 업계에서는 '임원 직급'의 노조활동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사측과 노조의 원만한 합의 속에 부장급까지만 노조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엔지니어링 업체 '삼안'이 매각되면서 대주주가 바뀌고 노조의 인력구성도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사대우 직급의 노조위원장이 탄생하면서 이에 대한 인정 여부를 두고 사측과 노조가 충돌하게 된 것이다.

노조활동·전임자지위인정 둘러싼 대립…사측 임금미지불로 갈등 키워

사건의 발단은 삼안이 구태신 삼안지부장에 대한 조합원·전임자 지위와 노동시간 면제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1년6개월간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삼안 단체협약에 따르면 조합원 단체협약 적용 범위는 부장 직급까지다. 지금까지 삼안을 포함한 엔지니어링업계에서는 단체협약상 조합원 범위에서 벗어나는 부장 이상 직급은 회사와 다투지 않고 노조를 탈퇴했었다. 그런데 회사가 매각된 이후 노조활동의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구태신 삼안지부장은 이사대우 직급으로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면서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삼안 내에서 구태신 삼안지부장의 직급인 '이사대우' 이상 구성원은 526명으로 전체 구성원 1056명의 약 50%였다.

삼안은 구태신 삼안지부장이 임원 직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합원으로 볼 수 없고, 위원장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위원장 이름으로 소집한 노조행사도 무효하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조합원 가입 범위는 노조 자체 규약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삼안지부 규약대로 위원장을 선출했다고 맞섰다. 사측과 맺는 단체협약 적용 범위와 노조 자체에서 정하는 노조가입·활동 범위는 엄연히 다르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대립은 사측이 구태신 삼안지부장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지방과 중앙의 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소송으로까지 나아갔다.

◆중앙노동위, 노조 손들어줘…사측, 판정 불복하고 행정소송

중앙노동위원회는 2018년 12월 △구태신 삼안지부장에 대한 근로시간면제자 불인정과 급여 미지급 △노조 게시판 설치거부 △노조 조합원 간담회 방해행위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삼안은 이에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10월10일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원고가 참가인 구태신을 근로시간면제자로 인정하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행위 △원고가 노동조합 게시판을 철거하고 재설치하지 않거나 축소해 설치한 행위 △원고가 삼안지부의 교육·간담회 참석자 명단을 사전에 요구하고 파악한 행위 모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1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구태신 삼안지부장이 조합원·근로시간면제자 자격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원고가 근로시간면제자로 인정하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 부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이외 원고의 항소는 기각됐다.  

삼안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5일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사건은 결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게 됐다. 대법원 판례가 생기면 향후 지표가 될 수 있는 만큼 업계의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안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업계에서 절반이 임원"이라며 "영업을 뛰고 수주를 해야 하는 업계 특성상 외부에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직함을 올려주던 것이 관행이 됐다. 무늬만 임원이고 사실상 직원이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업체는 부장에서 승진할 때 퇴직금을 준 후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기간제로 계약한다"며 "그런데 '이사'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경영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이사대우·상무보 중에서 30대도 있다. 업계가 여러 가지로 왜곡돼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직함만 높을 뿐 실제로는 직원 대우를 받으면서 직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제한받고 있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건설기업노조 관계자는 "최근 고등법원 판결은 노동계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조합원 범위를 정하는 주체가 노조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노사 간 분쟁이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대법에서도 이 판결이 이어지길 고대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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