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평강공주·바보온달 사라져가는 '부동산공화국'

2020-10-14 15:39:20

- "지난해 12월 기준 PIR 15년" 부동산자산 양극화 심화…소득계층 간 결합 갈수록 어려워져

[프라임경제] 고려조 문신 김부식이 기록한 삼국사기 온달전에는 가난하고 초라했던 '바보 온달'과 그에게 시집가 온달을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 사람 온달은 집안이 몹시 가난해서 항상 밥을 구걸해 어머니를 봉양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는 사치여서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빌어먹는 처지에 똑 부러진 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실실 웃고 다니는 통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평강공주는 고구려 평강왕의 공주였는데 어려서부터 울음이 많았다고 한다. 왕이 칭얼거리는 딸에게 짐짓 농담으로 "계속 울어대니 사대부에게 시집가기는 글렀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했었다.

공주가 커서 왕이 귀족가에 시집을 보내려하자 "왕의 말은 추상과 같음으로 한 마디의 말도 가벼운 것이 없다"면서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주장하더니 급기야 집을 나가 온달에게 시집을 갔다.

공주는 가져온 보물을 팔아 온달을 뒷바라지 해 무예를 익히게 했고, 온달은 장수가 되어 전공을 세우니 왕이 그를 사위로 인정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다.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를 잘 만나 벼락성공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온달콤플렉스'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도유망한 젊은이 '온달'의 재능을 알아봐 준 아내 '평강공주' 안목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온달'의 청춘성장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노모를 모시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온달을 세상이 '바보'라고 놀려댔지만 그를 알아봐준 1명의 동반자가 그를 고구려라는 대국의 가장 뛰어난 장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는 도전하는 청춘들에게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심어주는 원동력이 됐다. 그렇기에 이 고전이 아직까지도 널리 읽히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대한민국에서는 널리 읽힌 고전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점점 현실성을 잃고 있다. 어떤 자산보다 '집'으로 대변되는 부동산자산이 우선시되고 그 가격은 이제 평생을 바쳐도 모으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궁궐에서 가져 나온 패물을 팔아 말과 무기도 사고 식량도 샀던 평강공주였지만, 요즘 한국은 억 소리 나는 집값을 지불하기에는 패물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득대비 아파트 가격을 살펴보면 이러한 실정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 통계청이 국토교통위원회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14일 제출한 '2016~2020년간 가구주 연령대별 서울 아파트 PIR(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 자료에 따르면 39세 이하가 세대주인 2인 이상 가구의 소득 대비 서울 평균가격 아파트의 PIR은 지난해 12월 기준 15.0년이다.

30대 세대주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5년을 보아야 서울 내 평균가격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소리다. 그간 소비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실제적으로 내 집 마련은 더욱 요원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득격차가 차이 나는 청년들은 서로 사랑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대구 출신 30대 청년 J씨는 강남구 출신 L씨와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대구의 부모님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팔아도 매매가가 3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구에서 중산층 이상이 거주한다는 단지라서 가능한 가격이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5억111만원이다. 대구의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권 외곽지역의 전세를 조심스럽게 제안해봤지만 강남에 거주 중인 L씨의 집안에서는 가족과 너무 멀어지는 일이고 출퇴근도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고 난색을 표한다. 양 집안이 생각하는 예식비용과 혼수예단의 가격수준도 차이가 너무 크다. 

그 어떤 차이를 극복해낸다 하더라도 가장 큰 난관인 '집'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국가에서 임대주택이나 공공분양, 특별공급을 한다지만 소득기준은 애매하기 그지없다.

LH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공임대의 소득기준은 최대가 120%고 보통 100%다. 39세 이하 세대주의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562만원이다. 맞벌이부부라면 1인당 281만원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 

이 수준의 월급을 받는 청년들은 지방출신은 월세와 각종 공과금에 실제 생활비는 1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저축하기가 힘든 상황이고 저축이 안 되면 결혼이라는 '목표'는 더더욱 멀어진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J씨와 비슷한 스토리와 함께 파혼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까짓 집, 지금은 단칸방에서 시작하더라도 무조건 먹여살리겠다"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지난 세대의 패기는 이제 '동화 속 이야기'가 됐다.

최근 대다수 국민들은 부자들 부동산 잡겠다고 공급물량을 줄이는 정책을 펴는 것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공급물량이 줄어드니 전세에서 매입으로 전환하는 세대가 줄어들고 이는 다시 전세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임차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내놨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계약이 끝난 다른 임차인이 들어갈 집이 없다. 최근 가양동 한 전셋집을 계약하기 위해 9팀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끝내 제비뽑기로 임차인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일상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양고전 '예기(禮記)'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에게 시아버지·남편·아들을 모두 잃은 여인에게 공자가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마을로 내려가 탐관오리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뺏기기 보다는 차라리 이곳이 편하다" 답한 데서 유래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었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참새가 농민의 쌀을 훔쳐 먹는다며 참새를 모두 잡아 죽이게 했고, 참새가 사라지자 온갖 병충해가 창궐해 대흉이 들어 수천만명이 굶어죽었다.

정치와 정책은 그 뜻도 중요하지만 그 이치가 제대로 들어맞는지 국민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하다못해 바보온달도 초가집은 있었다. 영혼을 끌어 모아도 내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청춘들에게는 부담만 있을 뿐이다. 

결혼을 하라고 장려하지만 정작 결혼할 여건을 마련할 수 없는 '가혹한 정치'를 이제는 진정으로 돌이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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