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목 칼럼] 병자호란과 국난의 극복

2020-10-16 16:13:03

[프라임경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제목으로 여진족이 일으킨 후금(청)의 대 조선 정복 전쟁에서 완전히 굴복한 조선 조정이 호란(오랑캐가 일으킨 전쟁)이라고 기록에 남긴 것이 간도 크다는 생각도 들고, 청이 조선에 특별히 관대했었나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병자호란의 의미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임진년의 왜란, 정유년의 재란, 정묘년의 호란 그리고 병자년의 호란이라는 제목은 '못된, 야만인들의 침략'을 받은 사변이라는 관념을 갖도록 한다.

조선 권신들의 끊임없는 명분 정치, 나라가 망하던 백성이 침탈을 당하던 관계없이, 명분만으로 정적을 숙청하고 내 위치를 지키는 정치가 가능했던 게 16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입에 결국 완전 멸망까지 조선이라는 형해화 된 나라의 현실이었다.

1592년부터 7년 간 왜와의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조선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왕국(후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조선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세력은 이괄의 난과 그 후 주전파와 주화파로 분열되어 나라가 누란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계속 내부 싸움에만 몰두했다.

아시아 전체 질서에 지각 변동은 이미 임진왜란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왜란을 겪고도 이러한 대국을 읽지 못하는 리더십(인조를 위시한 집권 세력)은 당시 백성을 후금, 청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조선 왕조를 삼백년 간 속방의 신하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 죄를 범했다.

1627년 후금은 조선을 1차 침입했고 1636년에는 대청제국이 되어 조선을 친정하고 완전한 속국으로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이 사건은 후대의 국내 사가들이 '조공'은 고대, 전근대 외교관계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점잖은 교류 관계의 성립은 아니다. 청에 대한 항복은 일방적으로 조아리고 나라를 기울며 공물과 공녀까지 바치고 사사건건 간섭을 받아야 하는 종주국-속국 관계로 전환되는 역사와 나라 정신 전체가 침체, 하락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상명하복의 조공 관계는 당시의 조선후기 뿐 아니라 19세기에 들어 파란만장한 사건과 치욕을 겪는 조선에 치유할 수 없는 독이 되어 임오군란 - 청군의 진주 - 대원군 납치 - 이홍장, 원세개의 조선 집정 - 갑오경장 - 청일전쟁 - 노일전쟁 - 일본의 조선합병까지 이르는 불행한 역사의 씨앗이 되었다고 탄식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조선왕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 나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했으므로 그나마 왕조를 보존하는 '은혜'를 받게 된 것일까?

◆참혹한 고통의 시작

홍타이지가 조선왕조를 폐하지 않고 항복만 받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청이 스스로 밝힌 이유는 없다. 다만 살려준 은혜에 감사하라고 압박했다. 조선왕조는 그저 안심하고 감사해야 할 뿐. 그러나 조선인들은 청조를 오랑캐라고 깔보는 심리를 떨치지 못한다.

청은 명을 멸망시키고, 내몽고, 위구르(신장), 티벳, 운남을 정복하면서 이들을 모두 청제국에 편입시켰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표기하는 대륙 중국의 영토는 여진인들이 외방들을 정복하여 만들어 놓은 청제국의 영토 그대로이다.

2017년 초, 새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시진핑은 플로리다 Mar-a-Lago Resort를 찾았다. 트럼프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얘기하다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데,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었다고 하더라"라고 발언한다. 시진핑 등 공산당 지도부가 청조 말의 권력자 이홍장이나 원새개와 다르지 않게 한반도를 속방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갖고 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여하튼 청은 조선을 끈질기게 압박하고, 엄청난 공물과 공인, 병력, 병참지원을 요구했다. 왕세자, 왕자, 권신들, 특히 척화대신들은 압송하여 처형하였고, 인질로 잡고있는 소현세자를 이용하면서 인조의 심양 입조를 압박했다. 청의 정치공작에 극도로 예민해진 인조는 자신의 아들이자 세자인 소현세자와 강빈을 의심하여 귀국 후 이들은 창졸간에 사망하거나 처형되는 비극도 일어났다.

압록강 하구 조선영토인 가도를 일방적으로 점령하여 오랜 기간 진을 치고, 조선인들을 괴롭히면서, 청에 대항하던 명군은 청·조 연합군의 공격에 무너진다. 동아시아의 패권국 명이 신흥패권세력과 이에 항복한 변방국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조선은 청이 직접 제작해서 하사하는 옥쇄를 받아야했고, 인조는 수시로 신하로서 충성을 보이라는 압박을 받았다.

인조와 조선조정이 심리적 압박과 굴욕을 받았다면, 백성들은 엄청난 현실적·물질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무려 50만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청군에 의해 노비화되어 끌려갔고, 청군은 조선에 계속 군량미, 은, 사람, 병력을 요구했다. '피로인'이라고 불린 납치된 조선인들은 노예가 되거나 시장에서 매매되었다. 청군들은 탈주하는 피로인을 잡아 뒤꿈치, 무릎을 자르는 등의 만행도 하고, 청조는 조선으로 탈출한 피로인들을 다시 잡아 보내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조선은 체계적 공식교섭으로 피로인들을 귀환시키려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인신매매 대상이 된 피로인들의 몸값만 올라갔다.

임진왜란은 물론 호란을 거치면서 민초들이 겪은 물리적 고통과, 가족들로부터의 이산과 버림의 아픔(특히 여성들), 그리고 조선 전체의 생산기반의 상실 등 세세한 인적, 물적 손실은 기록에 다 남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왕조 보존에만 모든 것을 집중해야 했던 왕실, 그리고 기개는 칭찬할 만 하나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명분적 선비주의는 조선 전체의 몰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명분론·척화를 주장한 상당수 선비들은 후금·청의 실력과 조선의 실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임진란 후 피폐해진 조선에 가해진 청의 막대한 공물·공인 요구와 정치적 족쇄는 조선을 영구히 재기 불능하게 만든 철퇴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쉬운 건 조선조 전체의 개혁운동은 없었고, 오히려 명을 숭상하고, 소중화를 자처하는 명분주의가 권력의 대세를 이어가는 불행이 연속된다. 

◆명의 멸망

1636년 조선이 홍타이지 청에 항복한 후 1643년 명은 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멸망한다. 청은 이자성을 패퇴시키고 명을 흡수한다. 청은 명을 굴복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명이 관할하던 영토의 2배가 넘는 제국을 건설한다.

이러한 역사의 전개를 보고, 자연스럽게 오는 의문은 15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여진족(만주족)이 이렇게 1억5000만 이상의 대국을 정복하고 광대한 지역에 지배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이다.

우선 명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역사의 교훈 그대로이다. 거의 자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명은 내부에서 무너진다. 황제를 둘러싼 환관권력들은 부패했고, 이들은 충신들을 모략하고, 처형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은 반란에 가담했다.

수 많은 유능한 한인 장수와 지식인들은 스스로 명을 버리고 청에 투항했다.

명이 거금을 들여 서양에서 사들인 현대식 화포와 수군은 저절로 청의 소유가 되었고, 국가경영과 물산을 생산하는 지식과 그 원천들이 손쉽게 청의 소유가 되었다.

군사 조직과 기동에 능한 여진족이었지만, 이들은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보전은 물론 회유와 포용에도 능했다고 봐야한다.

과거의 원, 금을 계승한다고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까지 정벌을 확대해 영토에 편입하고, 약소국 조선에 군림하던 만주족, 소위 황족들은 이제 더 이상 없다. 한때 일본에 힘을 의지해 왕조의 부활을 꿈꾸다 모든 걸 중국 공산당과 한인들에게 넘겨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참 희한한 증발이다.

이제 중화인민공화국은 티벳과 신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리·독립운동을 억누르고 있고,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지 못하도록 대만에 엄청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남중국해 전체가 중국의 영해, 영토라고 주장한다. 인도와 영토분쟁은 계속하고 있다. 중국 군부는 미국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강공을 취한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명과 대륙을 정복하기 전에 조선부터 눌러놔야 하겠다는 전략을 쓴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동양에서 이제는 패권을 움켜쥐겠다고 일어난 일본의 국가주의자들은 조선부터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단계에서는 점잖게 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조선에 부추겼다. 그러나 결국 제국주의 일본은 청과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하고 조선을 완전 합병했다. 청으로부터 독립을 부추긴 일본제국의 진심은 조선의 자주독립에 있지 않고, 조선을 청에서 떼어내어 자신의 관할 하에 두려는데 있었다는 것을 조선의 지도자들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임진년 왜의 침략, 정묘-병자년의 후금의 침략 때도 그랬고, 19세기 말의 청군의 조선, 진주와 내정간섭, 청일전쟁, 노일전쟁 당시 조선은 '끼인 자'에 불과한 힘없는 그저 먹잇감이었다.

조선조가 망국을 눈 앞에 두고 대한제국이라 선포한 것은 실질적 제국이어서가 아니라, 패권국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방책으로 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이상과 꿈을 발현해보려고 한 것일까?

여하튼 선언적 의미에서 탄생한 대한제국은 후일 독립만세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씨앗이 된다.

병자호란의 저자 한명기는 저작을 끝내면서, 370년 전에 심양으로 끌려가야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가혹한 고통을 추념한다고 했다. 그는 자체적 역량이 없는 '끼인 자'는 그저 먹잇감으로서 달리 선택이 없는 지정학적 현실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 세대는 비록 못 먹더라도 후대에게 약이 될 쑥을 뜯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비장한 제안을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현) G&M글로벌문화재단 대표 /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  (전) 외교부 주이란대사 / (전) 외교부 주뉴욕총영사


카카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Copyright 프라임경제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전 1 / 0 다음
Copyright ⓒ 프라임경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