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 칼럼] 희수(喜壽) 유감

2020-10-28 11:26:00

[프라임경제] 해마다 치르는 의식 중에 생일 치레가 있을 것이다. 올해 생일은 내가 만 77세 되는 날이다. 고맙게도 내 생년(生年)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희수를 축하합니다' SNS 문자로 축하를 해왔다. '고맙소이다' 회신했지만 정확을 기한다면 내 희수 잔치는 작년 생일에 세는 나이로 치른 셈임을 밝혔어야 할 것이었다. 

작년 오늘(10월26일), 이역(異域) 인도네시아 탕에랑(Tangerang)에서 열 두 명 회사 동료들을 초청해 놓고 노동(老童)의 색소폰 리사이틀을 열어 취중(醉中) 나팔 여남은 곡 부는 것으로 생일을 자축(自祝) 했었는데, 내 맘 속으로는 그것으로 희수연(喜壽宴)을 치른 셈이었다.

섭섭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내자(內子)였을 것이다. 환갑, 칠순 다 그저 우리 끼리 해외여행으로 대체했는데, 미수(米壽)까지는 건강히 살아 있을지 모르겠고, 희수연 만이라도 아이들 모두 모아 규모 있는 가족 행사로 치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 태어난 해가 1943년, 해방 이태 전이었다. 일제(日帝)가 이른 바 총력전으로 대동아전쟁을 치른다고 부엌의 놋그릇, 심지어 혁대 장식까지 공출해 가는 시점이었다고 한다. 손위 아이와 2년 8개월 터울로 막내를 낳은 산모 나이 37세 였으니 만산(晩産)이었다.

엄마 젖이 부족한데도 이유식으로 미음을 마음 놓고 끓여 먹일 쌀이 부족하여 무우죽을 끓여 먹였노라고, 그래서 건강히 자랄지 어떨지를 어른들이 걱정했다고 들었다. 무우가 인삼 대신이라는 말도 있으니, 오히려 그래서 일흔일곱 오늘까지 허리 꼿꼿이 색소폰 불어대도록 건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른쪽이 필자. ⓒ 허달

첫돌 사진을 찍긴 찍었을 텐데, 어디론가 없어졌고, 제일 오래된 생일 사진으로 색동 옷 입고 손위 형(서울 사투리로 작은언니라고 불렀었다)과 사진관에서 마그네슘 불세례 받으며 찍은 만 세 살 때 사진 하나 남아 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는 네 살이나 되었는데, 돌잽이 입는 색동저고리에 고깔이 창피하다고 사진관에서 칭얼대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때의 기억인지, 나중 만들어진 기억인지 자신은 없다. 74년 세월을 건넌 오늘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저 얼굴이 이 얼굴? 웃어본다.

올해 생일은 코로나19 덕분에 자카르타에서 아내와 둘이 단출히 맞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호텔 Gran Melia 베이커리에서 케익 하나 맞춰 오고, 서울에서 아이들이 인터넷 주문하여 배달된 꽃다발 화병에 꽂아 놓고 와인 한 병 오픈하니, 제법 격식이 그럴 듯 하다. 인터넷 열어 아이들과 화상 통화 축하 주고 받으니, 굳이 오가는 번거로움 없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슬라맛 울랑 따훈' 이곳 사람들의 생일 축하 인사를 받았다. 단어 하나하나 떼어 나누어 구글 번역기에 걸어보니 재미 있는 영역(英譯)이 나온다.

'Happy reset of the year!'

앞으로 올 세월을, 매해 한 해 단위로 자세 가다듬어 맞이하라고, 넌지시 훈수하는 말 같다.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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