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목 칼럼] 이순신을 생각한다 ⓵

2020-11-01 15:51:41

[프라임경제] 오는 11월3일 미국은 대통령 의회 선거를 치른다. 선거는 민주당 우세로 읽혀 지고 있으나 초접전 양상이다.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반중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중 하나다. 바이든 후보도 중국에 대해서는 녹녹하지 않게 시시비비를 가릴 태세다.

이 초접전 선거 와중에도 폼페이오 국무 장관은 최근 일본을 방문하고 반중 4개국 연대 외무 장관 회의를 가졌고, 인도양 3개국, 인도네시아, 그리고 추가로 베트남도 방문하여 반중 결속을 시도하고 있다.

전 세계는 트럼프 취임 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이제 본격적 패권 경쟁으로 돌입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증국은 지난주 개최한 공산당 19기 중앙위 5차 전체회의를 갖고 혁신과 과학, 반도체 자립 등 기술 독립, 쌍순환 경제 등을 골자로 한 향후 15년 간의 목표를 공인했다.

관례대로 단순한 경제 5개년 계획을 추인한 것이 아니라 2035년에는 미국을 추월하는 세계 제일의 경제.기술 대국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어떤 외부의 압력을 용납치 않고 현대화된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패권적 의지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철저히 대결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한국전 참전으로 미국을 격퇴하였다는 항미원조라는 구호도 국수주의에 어필하는 정치적 의지의 일환이다.

일본은 진작부터 인도를 포함하는 반중 전선에 앞장서 왔다. 캐나다, 호주의 반응도 날카롭다.

미중 간 대결에서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고, 일본과 관계는 매우 악화되어 있는 한국은 어떻게 앞날을 헤쳐 나갈 것인지 우려스럽다. 핵 무력을 내세우는 북한은 또 어떻게 나올지?   

이순신은 우리 한국 국민 누구에게나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다. 충무공, 덕풍부원군으로 후세에 추종된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이자,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의 장수이며, 임진란의 마지막 전투에서 목숨을 던져 구국의 수호신이 된 성인으로 추앙된다. 지금과 같이 미중 간 충돌이 격화되고, 반일정서가 압도하는 시대, 안보에 대한 개념이 혼돈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와 부정의의 잣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세상에도 그는 변함없는 영웅이다.

이순신 하면 생각나는 것은 △거북선 △한산도대첩 △원균의 모함 △하옥과 백의종군 △전멸하다시피한 조선 수군 12척으로 300척 적의 함대와 대결(명량대첩) △최후의 노량해전과 장렬한 전사 등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순신을 생각할 때, 우리에겐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의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첫째는 그의 인품과 리더십, 순국정신. 둘째는 우리 주변의 지정학적 구조변화. 셋째, 조선조정의 실패, 우리 국력, 민초의 삶 등 현실이다.

첫째 이순신은 걸출한 전략가이다. 명장임에 틀림없는데, 그가 갖은 고난 속에서 기적같이 만들어낸 승리, 결국 일본을 패퇴하게 만든 것은 병법의 승리를 훨씬 넘은 그의 정신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정신력이 아닌 신의 경지에 다다르는 초월, 자신을 구국(救國), 구민(救民)의 제물로 희생하는 초인적 영적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세의 왕들과 사가, 작가들이 그를 계속 부원군, 영의정에까지 추서하고 '성웅 이순신'이라는 소설도 나오게 되었다고 본다.

300척의 적의 함대를 12척으로 대적하려는 이순신. 조정은 이순신에게 궤멸된 수군과 해상 전투를 포기하고 차라리 육군에 합류하라고 요구한다. 해로가 뚫리면 국가 존립이 바로 위태해진다는 걸 잘 아는 이순신은 고집을 꺽지 않고 12척 수군으로 적을 깨부술 궁리를 한다. 

공포에 질려 도주하려는 휘하 장졸을 이끌며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의를 내걸고 130척으로 둘러싼 적 함대 가운데로 단독 돌진한 이순신의 행동은 그 어떤 영웅도 상식적으로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그는 명량으로 출전하기 전날 이 휘호를 쓰고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최근엔 이순신이 남겼다는 글들이 추가로 발견된다. 그 중에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욕심 부리지 말고, 뒤쳐진 다고 조급해하지 말며, 시기하지 말고, 공명과 부에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을 시로써 남겼다고 한다. 순천운(順天運)이라는 시라고 한다.

옛 선현들 글에 무수히 나오는 교훈들이지만 아무도 지키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입신양명을 선비와 사대부 후예로서 당연한 권리와 의무로 받아들였던 당시 양반 청년들에게 이 교훈이 과연 심금을 울렸을까?

가진 것을 버릴 줄 알고, 나를 내세우지 말며, 만민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자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친 예수의 말씀도 그러하다. 다른 관리들과 다른 이순신의 특징은 바로 이 덕목들과 자기 희생을 그대로 실천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흔히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떠올릴 때 놓치고 있는 것은 조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엄청난 지정학적(地政學的) 구조의 변동이다. 임진란이 일어난 1592년에 우리 북방에서는 이미 건주여진이 누루하치에 의해 통일되고(1588년) 형식상 누루하치는 명(明) 만력제에 의해 용호장군으로 임명되나, 실제로 누루하치의 건주여진은, 요동과 송화강 일대에 강력한, 건드리기 어려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쇠퇴해 가던 명은 실제로 요동 밖의 만주지역의 여진에게는 손을 놓고, 명목상의 벼슬로 이 신흥 세력을 회유하는 실력상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이순신은 함경도 변방에 세 번 배치 된다. 첫 번째 임지는 산세가 무섭게 험하다고 기록에 남아 있는 '동구비보'이다. 그리고 승진하여 전라도 발포에서 만호로, 도성 훈련원에 근무하다  다시 강등되어 함경도 경원군 건원보에 배치되어 전과를 올린다. 이어 다시 승진하여 헤산 인근의 최변방인 '조산보'에 만호(灣戶) 겸 두만강 하구와 지금의 연해주와 맞닿는 녹둔도를 지키고 식량을 생산하는 둔전사의(屯田事宜)라는 어려운 직책을 받고 변방을 지키게 된다.

상부에 병력증강을 요청했으나 침입해온 여진족의 습격을 받고 중과부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여진족을 추격하여 적장을 베고 우리 인질들을 구출하는 공을 세운다(1587년). 이 전투로 여진족의 침탈에 대한 책임론이 등장하자 이순신은 상부의 발뺌과 모함으로 장형(杖刑)을 받고, 경흥부사와 함께 하옥되었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그러나 이순신은 다시 복직되어, 이번엔 전라도 정읍현감으로 부임한다. 하옥과 백의종군, 강등과 복직은 이순신의 운명인가 보다.

누루하치는 1586년 소수병력으로 거병하여, 1588년에는 건주5부 전체를 거느리는 명실상부한 지도자가 된다. 한편 이순신은 여진족과 계속 대결해야 했던 북변 임지를 1589년 떠나, 전라도로 향했고 임진란 직전인 1591년 진도군수로 부임하다, 도중에 수군 절도사로 직책이 바뀌어 전라도 좌수영 수군을 이끌게 된다.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 밖에는, 설명이 어려운 장면이다. 조선의 동북면 최전방 두만강에서 서남단 바다로 불리어가는 이순신의 길은 (하나님의 명 아니고는 해석될 수 없는) 극과 극의 이동이다. 

[이순신을 생각한다 ⓶] 로 이어짐.


(현) G&M글로벌문화재단 대표 /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  (전) 외교부 주이란대사 / (전) 외교부 주뉴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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