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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항공사 살린다면서, 누굴 위한 기안기금인가

 

이수영 기자 | lsy2@newsprime.co.kr | 2020.11.09 17:35:38
[프라임경제] 정부가 항공사처럼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너져가는 기간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지원책 중 하나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여기에 모인 돈은 무려 40조원에 달한다.

기안기금은 정부가 보증하는 특수채로 자금을 조달하며, 산업은행의 산하 기안기금 운용심의위원회가 운용한다.

그러나 선뜻 쓰겠다고 나서는 항공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미 정리해고를 단행한 항공사도 나왔고, 이를 목도한 다른 항공사 직원들은 실업대란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 누가 언제 밖에 나앉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시기다. 

분명 분기마다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 항공사들에게 기안기금은 생명수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에 망설이고 있다. 

"현재 기안기금에 대한 기업 실사 단계를 거치고는 있는데, 신청은 그 다음에…."

얼마 전 만난 한 항공사 직원 역시 이 같이 말하며, 기안기금 신청에 주저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항공사들이 기안기금 신청에 망설이는 이유는 바로 기안기금이 '고금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총 2조4000억원의 기안기금을 지원받는 아시아나항공은 3년 만기 대출금에 연 이자로 7.59%를 내야 한다(11월4일 기준). 계산해 보면 매년 이자비용으로 1800억원 정도가 빠져 나가게 된다.

또 대한항공은 기안기금을 신청하면 1조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매년 5.18%(518억원)를 이자로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한항공은 자신들의 3분기 영업이익인 76억원 보다 무려 7배나 많은 규모를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

기안기금은 낮은 신용등급의 항공사일수록 부담해야 할 이자율이 증가하는 구조다. 물론 이는 금융시장에 있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항공사들의 신용등급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고, 자금 상황도 여의치 않다는 점을 분명 감안했어야 했다.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낮아진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이자율을 책정하니 항공사로써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게 됐다. 

때문에 항공사들은 현재 당장 급한 불을 끄자고 고금리인 기안기금에 손을 댔다가, 내년에도 업황이 나아지지 않아 빚만 더 늘리는 꼴이 돼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번잡한 고뇌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애초 기안기금 설립 취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위기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탓에 기안기금이 지금과 같은 조건을 유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신용등급보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5월 정식 출범한 기안기금의 백수 기간이 어느 덧 다섯 달째다. 기안기금 운용심의위원회는 항공사들이 왜 지원 신청 의사를 밝히지 않는 지를 빠르게 다시 판단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가 동원되는 만큼 무턱대고 문턱을 낮추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항공사들이 기안기금 신청을 주저하는 이 순간에도 골든타임은 지나고 있다. 항공사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일관한다면 좋은 취지였던 기안기금은 '고금리 장사'였다는 오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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