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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서울시, 대한항공 '입사호소인 70명' 위로금 책임져야

'송현동 부지' 몽니 명분 부족 '전향적 해법 검토 필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11.27 11:16:17

[프라임경제] 대한항공(003490)에는 출근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신입 사원들이 있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입사 대기' 중인 상태이니 신입 사원이라고 부르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가을 공채에서 '2020년도 예비 신입사원 합격'을 통보받은 이들 일반·기술·전산직은 70여명에 달하지만, 입사일이 무기한 미뤄진 상태다. 

지난해 연말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도 이들이 1년째 입사 대기 중인 상황은 당연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영난 때문이다. 아직 회사와 정식으로 고용 계약을 맺은 게 아니기 때문에, 급여가 없다. 휴직수당이나 고용유지지원금 처리도 어렵다. 

문제는 이 대기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풀릴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점. 대한항공은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처지라서, 신입사원 입사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신규 채용을 금지하고 있고, 그렇다고 대한항공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내년에 신청하지 않는다고 기대를 걸 사정도 아니다. 

법이 그렇고 상황이 그러니까 마냥 기다리라고 할 일만은 아니다. 물론, 1997년 IMF 위기나 2008년 리먼 사태를 겪어본 많은 이들은 이마저도 대단한 회사의 호의라는 점을 안다. 

신입 채용 발표 직후 "없던 일로 하자"면서 합격통지서가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되고 끝난 사례들을, 이 시대를 살아본 많은 이들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항공 경영진만이 화살을 맞을 일이 아니라, 넓게는 한진 그리고 우리 사회 여러 당사자들까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단 지금 추진되는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 문제만 해도, 일단 뽑아놓은 신입 직원도 공중에 붕 뜬 상태에서 거대 M&A를 하는 게 맞느냐, 지금이 기업 지배구조 굳히기 수를 둘 때냐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가 얽힌 '송현동 부지' 건에 이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송현동 부지는 한옥형 호텔을 세우는 문제가 좌초하면서 빈 땅으로 남아 있다, 결국 경영난에 매각 대상으로 부각됐다. 

여기에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부지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일이 꼬였다. 경영난에 요긴하게 쓸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지정해 버리겠다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당연히 가치 하락 악재가 된다.

국민권익위원회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까지 나서면서 양측은 송현동 부지 처리에 간신히 가닥을 잡는 듯 했다.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를 내놓는 대신, 서울시는 LH에 현재 시유지인 서부운전면허시험장 땅을 내준다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송현동 부지에 공원을 추진한다는 서울시 구상은 물꼬를 트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은 3면 계약 구도마저 서울시는 새삼 비틀고 나섰다. 서울시는 시의회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해 조정문 안의 구속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문구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회 존중이라니, 겉으로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민간 기업의 소중한 자산을 공익 명목으로 후려치기하면서, 그마저도 계약 시점을 특정하지 않는 쪽으로 처리하자는 소리를 했다면 그걸 큰 틀에서 온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공원 추진에 깔린 서울시의 공익 발상에 근원적 의구심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시유지인 서부운전면허시험장이 LH에 넘어갈 경우 이 땅에 공공주택이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마포구 주민들의 반발 심리라든지, 이를 의식해 시의회 판단이라는 안전장치를 붙여놓고 싶은 서울시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가 자기 입장에만 목소리를 키우는 이 와중에 기업 경영 사정은 냉각되고 있다. 기업 오너야 그렇다치더라도, 직원들만 살얼음판을 걷는다. 그나마 불쌍한 입사 대기자 70여명은 직장인도 아닌, 무직자도 아닌 이상한 자리에 1년째 머물러 있다.

서울시가 공원 필요성이 어떻고, 공익이 어떻고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이런 문제에 대한 감수성은 갖고 나서는 게 필요하다. 법리적 책임이나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공원 몽니가 빚어낸 경영난이라는 나비효과 중에는 분명 이들 70여명 신입 합격자들의 눈물도 들어간다.

박원순 사건에서 나온 서울시 측 표현을 빌리자면 '대기발령 피해호소인' 혹은 '입사호소인'이라고나 해야 할 이들 70여명에게, 서울시는 하다 못해 위로금이라도 지급해야 도리 아닐까? 그런 기초적인 상도덕도 없이 남의 땅을 차지해 만든 송현동 공원을 누리고 싶지는 않다고,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1000만 서울시민들의 대의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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