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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 칼럼] 꿈이었으면, 테스 형!

 

허달 칼럼니스트 | dhugh@hanmail.net | 2020.11.28 12:45:55

[프라임경제] '꿈꾸다'라는 말은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갖는 말로 쓰여진다. 그런데 나이 들며 느끼게 되는 현상은 가끔씩 꾸게 되는 꿈이 거의 모두 과거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만 그런가 하고 보면, 아내도 그러하고, 주위의 다른 이들도 수긍한다. 깨닫고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무려 80년 가까이 살아 왔으니, 꿈의 주제를 랜덤으로 잡으라고 해도 확률적으로 열의 여덟은 과거의 일을 곱씹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진화심리학자이든가 한 말,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고,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나이 들면 늙는 것인가? 늙지는 않더라도 어느 트롯 가사처럼 차츰 익어가는 것인가? 하하. 억지라도 쓰는 심정으로 칭얼대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이런 애어른(어른애?)을 달래는 바에 의하면, 이런 점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으로 '문화계승'을 위한 진화적 변화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생물학적 자손을 낳는 것에만 맞춰 생존 프로그램이 진화됐지만 인간은 나 닮은 자손을 낳는 것으로 생존 프로그램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계승 프로그램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것. 삶의 전반부가 생존과 생물학적 자손을 얻는 치열한 전투였다면 삶의 후반부는 신체적 매력은 감소하나 문화를 통한 상징적 사랑을 하기에 최적화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문화에 몰입하여 즐기고 그것을 통해 문화를 발전 계승시키는 것이 삶의 후반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글쎄 듣기에 따라서는 달콤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잠 들기 전에 생각한다. 꿈도 어차피 마음의 작용이니, 원하는 꿈을 꾸어 보기로 하자. 반가부좌 틀고 앉는 저녁 명상시간에 꾸어 보고 싶은 꿈을 머리에 입력해 보기로 한다.

구체적 예로 오늘 꿈에서는 1400년 전 '신심명(信心銘)'을 지어 남긴 3조(祖) 승찬 화상(僧璨 和尙)을 모셔 만나보리라. 신심명 내용 중 탈루(脫漏) 되어 전해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대목도 있다. '문화계승' 욕구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신심명 마지막 부분에서 일찍이 당신이 해 놓은 말씀이 있다.

'마치지 못할까 왜 걱정하는가(一卽一切요 一切卽一이라 / 但能如是하면 何慮不畢가)?'

그 말씀 믿고 몇 차례 실험해 보니, 희망대로 승찬 스님을 모시는 데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 했지만, 적어도 과거의 일이 꿈을 통해 오늘을 재방문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프로이드였든가, 융이었든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꿈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꿈꾸는 사람을 관찰하면 눈동자가 감긴 눈꺼풀 뒤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번은 관찰자가 꿈꾸는 피관찰자의 이마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그를 깨웠다. 그리고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흥미로웠다.

"한 동안 숲 속을 걷고 있었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나무 밑으로 피하려는 중에 흔들려서 깨어났어요."

꿈 속에서 숲을 걷고 있는 것이 먼저였던지, 이마에 떨어진 물방울이 꿈 속의 소나기가 되어 숲을 걷고 있던 전 단계를 가역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던지, 분명치 않은 결론을 기술하고 있던 것 같다.

자카르타의 일출. = 허달

굳이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의 새벽은 이슬람 사원에서 울려오는 확성기 소리로 시작한다. 우리 L'Avenue Residence 단지를 둘러 싼 세 곳의 기도소가 있는데, 새벽 시간에 깨어 기도하지 않는 이교도를 계도(啓導)하려는 절실한 사명인 듯 경쟁적으로 볼륨을 높여 방송한다. 아마 그 소리를 잠결에 듣고 프로이드 식 새벽꿈을 만들어 내다가 깨어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저 소리만 떼어 들어낼 수 있다면 열대지방의 새벽 네 시는 얼마나 쾌적하고 고요할까' 생각할 수 있게 사고의 지평(地平)을 열어 주기도 한다. 일출(日出) 때면, 노을처럼 타는 동쪽 하늘과 함께 문득 잠에서 깨어나는 뭇 새들의 아침 수다, 지저귐 소리.

그렇네, 시끄러움이 있어 고요가 드러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지러움이 있어 은둔자의 명상 속 고요가 드러난다고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테스 형!

깨고 나면 이 모두가 어느 새벽 한바탕 개그요 꿈이었으면, 테스 형!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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