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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한결같다'처럼 부정적인 말도 없다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0.12.02 17:27:21
[프라임경제] 글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우연히 스치는 글귀에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넘기려던 책의 페이지에 시선이 하염없이 붙잡히기도 한다. 글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글은 문장으로 이뤄지고, 그 문장은 단어의 합으로 생겨난다. 

단어는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표현의 합치이며 정의다. 살아 움직이든지, 살아 움직이지 않든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단어로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그래서 필자는 생소하거나 뜻을 모르는 단어를 만날 때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 마음이 들뜨면 동공이 커지고 눈빛이 반짝인다. 그런 때야말로 살아 있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며칠 전 필자는 익숙한 단어 앞에서 생소한 느낌을 강하게 경험했다.

한결같다: (1)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 (2) 여럿이 모두 꼭 같이 하나와 같다


위의 정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른 것이다. 어려서부터 필자는 한결같음이 좋았다. 좋았다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세월 혹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라 여겼다.

그래서 가끔 만날 때마다 변치 않는, 한결같은 사람이 좋았다. 그로부터 편안함을 느꼈고, 항상 고정돼 있는 물건에 시선을 둘 때에도 안락했다.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음 한편을 더 내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필자는 한결같음이 썩 달갑지 않다. 그 자리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하는 한결같은 사람들과 한 발짝 거리를 둔다. 언제부터인가 그 한결같음이 '신념'과도 같은 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물론, 이 같은 물음 앞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풀리지 않는 숙제 앞에서 필자는 한결같음을 위와 똑같은 질문으로 되묻고 싶었다. 

세상은 변한다. 싱싱했던 채소도 며칠이 지나면 숨이 죽어 푸르른 생명력을 잃는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단골집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을 요동치는 내 마음은 어떨까. 마음 따라 생각의 결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 변화를 마주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한결같음을 강조했다. 항상 같은 모습 그대로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또는 그녀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 것만 같은 한결같음을,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바라고 또 바랐던 것이다.

필자는 그 한결같은 마음의 기대를 당장 접으려고 했다. 그것이, 상대를 향한 또는 세상을 향한 변화를 거부하는 나의 외고집이라는 것을 자각해서다.

"나도 변하는데 어떻게 너는 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는 물음 앞에서 한결같다는 말은 어리석고 덧없는 표현이 돼버렸다. 애써 간직해온 한결같은 순간들은 순식간에 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졌다. '한결같다'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폴란드의 시인 타데우시 루제비치(1921~2014)는 '노파에 대한 이야기'란 작품에서 '늙은 여자들의 한결같은 노동'을 읊었다. 시인이 세상에 말하고자 한 것을 확인하고 느끼는 것은 작품을 읽는 독자의 몫이리라.

다만 필자는 저 시인의 표현으로 작금의 상황을 에둘러 드러내고 싶었다. '한결같은 노동'은 평온하게 지속돼온 것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고루한 표현이었다.

최근에 결혼을 한 젊은 세대들은 예로부터 전해진 전통문화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전통문화를 극복하는 동시에 현대문화를 창조하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결혼을 함과 동시에 특히 여성들은 가정에서 '늙은 여자들의 한결같은 노동'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게 현실이다.

노동이 한결같을 수 있을까.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도 한결같다면, 바꿔 말하면 일정한 강도로 나의 몸과 정신이 노동을 통해서 소진돼 간다면 그만한 엄청난 시련도 없다. 한결같은 노동이야말로 현 시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여자들에게는 압박이고 시달림일 뿐이다.

'한결같음'은 파국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표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결같아 보이고 설령 한결같더라도 상황이 이와 같다면, 그건 멈춤이다. 멈추면 발전하지 못한다. 발전하지 못하면 뒤쳐진다. 그 마지막 결말은 뻔하다.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이처럼 부정적인 말도 없다.


이다루 작가 / 채움스피치 파트너 강사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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