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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빵투아네트의 내로남불

"숫자로 현실 왜곡하지 말자" 초심 잃지 않는 장관 돼야

김화평 기자 | khp@newsprime.co.kr | 2020.12.04 09:49:32
[프라임경제] "숫자로 현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웁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위험한 일입니다. 숫자를 갖고 얘기하자면 숫자는 얼마든지 만들어집니다. 현장에서, 국민의 체감도를 갖고 얘기합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7년 6월23일 취임식에서 역설(力說)한 내용이다. 이후 김 장관은 역설(逆說)적으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숫자로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올해 김 장관은 각종 통계를 근거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이 된 지금까지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기는커녕 하늘을 뚫을 기세로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달 전국 주택 전셋값은 약 7년 만에 가장 높게 뛰었다. 1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1월 '전국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택 종합 전셋값은 0.66% 올라 전월(0.47%)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이는 2013년 10월(0.68%) 이후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 후 임차인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기존 주택에 눌러앉는 수요가 늘면서 전세 물건이 줄었고, 임대인들은 전월세상한제를 고려해 미리 보증금을 올려 전셋값이 크게 뛴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 역시 지난달 0.54%를 기록, 전월(0.32%)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올해 7월 0.61%로 정점을 찍은 후 8∼10월 상승폭이 주춤하다 11월 다시 큰 폭으로 오른 것. 특히 5대 광역시의 11월 상승폭은 1.01%에 달했다.

부동산 시장이 최악으로 치닫는 건 정책이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놀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9월1일 김 장관은 "8.4 대책 이후 부동산 상승세가 상당 부분 축소됐다"며 "지난주까지 상승률이 0.1%였고, 강남 3구는 2주째 상승률이 멈췄다(0%)"고 주장한 바 있다. 임대차법 때문에 전세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6월 4주부터 8월 4주까지 전월세 비중을 보니 전세 비율이 작년 62%에서 올해 63%로 오히려 1%포인트 더 늘었고, 월세는 작년 37%에서 올해 36%였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이후에도 전셋값 상승 현상에 대해 낙관론을 펼쳤다. 9월11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전세 거래량은 언론 보도에서 나오는 것과는 다르다"며 "서울 전세 거래량이 줄었다고 하지만 예년에 비해 적지 않은 숫자"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은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가 유리한 지표만 사용해 정책 신뢰도를 하락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정부는 언론이 특정 단지 신고가만 자극적으로 보도한다고 하지만, 정부 역시 일부 하락한 곳만 발표하니 서로 반박하는 수치에 불과하다"며 꼬집었다.  

그간 업계에선 "부동산 투기 규제보다는 아파트 공급이 더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정부는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 장관은 7·10대책 당시 "올해 입주물량이 서울 5만3000가구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며 "2022년까지 입주물량이 10년 평균보다 35% 많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던 김 장관이 최근 주택 공급 부족을 시인했다. 지난달 30일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만들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이로 인해 김 장관은 '빵투아네트'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2021년과 2022년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준다. 그 이유는 5년 전에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대폭 줄었고 공공택지도 상당히 많이 취소됐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문제의 원인을 전 정권 탓으로 돌리는 등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김 장관 자신이 말했듯 잠시 숫자로 현실을 왜곡할 순 있지만, 현실을 바꿀 순 없다. 부동산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숫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국민 체감도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가 제일 잘 알 것이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문제 해결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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