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소득자도 저신용자도 막아버린 대출규제

2020-12-04 10:29:02

[프라임경제] 지난달 30일부터 은행들이 자체 신용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1억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들은 1년 안에 서울 등 규제지역 집을 사면 대출을 다시 반납해야 한다. 연 소득 8000만원 넘는 고소득자가 은행에서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때도 현재 최대 40%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된다.

DSR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돈을 빌린 사람이 매년 상환해야 하는 부채 상환액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전까지는 규제지역 내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에 대해 DSR 40%가 적용됐다.

문제는 이번 대출 제한이 고소득자인 전문직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신용대출 옥죄기가 본격화하면서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영끝(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에 나서거나 투자, 생활자금을 쌓아두려는 이들이 대안을 찾아 나서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대출길이 꽉 막히면서 수요는 저축은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축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이며,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저소득자들에 대한 대출을 줄이고 있다.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발표한 후 내년 하반기 시행에 앞서 선제적으로 저신용자 취급 취소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연 20% 이상 이자를 받아야 할 대출에 대해 저축은행은 아예 신규 취급을 하지 않고 기존 대출 회수를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운 곳도 있다. 자산 3조원 안팎의 주요 저축은행들 연 20% 금리 초과 대출 비중은 10월 기준 20% 초반대로, 6개월 전보다 10%p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저신용자와 다중채무자 등은 더 이상 대출을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특히 금융 취약계층으로 불리는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취약계층에 대해 정부와 금융권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대출과 원금 만기 연장, 이자 상황 유예 등 대부분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기에 큰 실효성은 없었다.

위기 국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규모 금융지원이 연체로 이어지고 금융권 부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연체율은 0.30%로 가장 낮았고, 부실채권 비율은 0.65%로 1년 전보다 0.2% 포인트 떨어져 대출 건전성이 양호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즉, 연체율이 낮은 건 정책효과에 따른 착시 현상일 뿐 상환을 유예해 한계에 도달한 차주가 드러나지 않다는 말이다.

최근 서민금융진흥원(이하 서금원)에 따르면 '햇살론17'의 대위변제율은 지난 10월 말 기준 4%를 넘어섰다. '햇살론17'은 대부업·불법 사금융 등의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최저 신용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서금원이 보증을 제공하고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상품이다. 다시 말해 채무자를 대신해 돈을 갚아주는 상품이다.

문제는 햇살론17 연체율이 오르며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할 돈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무위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금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햇살론 17의 대위변제율은 지난 9월 기준 3.4%였다. 올 3월 0.2%에서 6월 1.3%, 8월 2.4%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대신 갚은 돈은 340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최근 폭증하는 대출 수요를 막고, 과열된 부동산 투기 시장을 잡겠다는 취지로 대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물론 그 의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작 대출이 정말로 절실한 일반 서민들까지 막아서는 지금의 혼란을 잠재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들을 옥죄기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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