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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소재와 맞바꾼 강제징용 '피 맺힌 恨'

SK머터리얼즈, 쇼와덴코•JNC 연이어 전범기업 국내 진출 발판 마련

오유진 기자 | ouj@newsprime.co.kr | 2020.12.04 20:04:42
[프라임경제] 시민 주도 일본 불매운동이 전범기업에 대한 퇴출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라임경제>는 일본과 국내 사료를 기반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전범기업과 국내기업의 유통 및 제휴 현황을 밝혀 시민들의 주도로 진행되는 불매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국내기업의 독립과 자생을 돕고자 한다.

◆JNC Corporation

일본 종합화학회사 JNC(JNC Corporation) 회사 연혁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06년 창립자인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 1873~1944)가 수력발전소를 통한 전기 생산을 목적으로 가고시마현에 소기 전기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다.

노구치는 생산한 전력이 수용치를 초과하자 1907년 잉여전력으로 칼슘 카바이드(탄화칼슘)를 생산하기 위해 구마모토현에 또 다른 회사인 일본 카바이드 상회를 세웠다.

이후 1908년 일본 대표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두 회사를 합병해 신일본질소비료를 설립했다. 

JNC 창립자 노구치 시타가우. ⓒ JNC 홈페이지 화면캡체


1926년부터는 조선총독부(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 및 수탈기관)의 지원 아래 한국에 진출해 1927년 함경남도 흥남에 조선질소비료 공장을 설립했으며 △1933년 부전강수력발전주식회사·장진강수력발전주식회사 △1935년 조선화학주식회사·조선마그네슘금속주식회사·조선석탄공업주식회사·조선금속제련주식회사 등을 차례대로 세우면서 '일본질소비료그룹'이라는 거대 그룹사로 성장시켰다.

총독부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질소비료그룹은 한반도에 건설한 최대 규모의 무기, 군수품 생산 공장 라인을 갖춘 회사이자 일본 본토 밖 최대 군수산업을 이끄는 회사 중 한 곳이 됐다. 

일본은 이곳에서 생산된 무기와 군수품으로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통합적 지배를 하면서 신의주를 '만선사관(만선일체)'를 위한 경제거점으로 탈바꿈시켰다.

만선일체 경제거점의 상징적 시설을 꼽자면 1941년 준공이 완료된 '수풍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수풍댐은 당시 세계 최대의 댐(높이 106m, 너비 900m)으로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80㎞ 상류에 건설됐으며, 발전능력이 60만KW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이 수풍발전소 건설 역시 현 JNC의 창립자 노구치가 주도했다는 데 있다. 그는 장진강과 허천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한 경험을 인정받아 건설을 총지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문제는 노구치가 이러한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농민들을 토지에서 강제로 쫓아내고, 헐값에 대규모 토지를 매입했다는 점이다. 

또한 삼남지방(충청남북도·전라남북도·경상남북도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 농민들을 함경남도 일대로 강제 이주시켜 노동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폭리를 취했으며, 조선인 강제동원(강제징용) 등의 전쟁범죄(전범)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강제동원위원회가 지난 2005년 2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신고 접수했던 '국내노무동원 피해 신고현황'에 따르면, 흥남에 위치했던 일본질소비료 공장 관련 신고만 212건이 접수됐고 이어 압록강수력발전 162건, 장진강수력발전 309건 등 세 곳만 합산해도 총 683건에 달한다.

강제동원위원회가 2005년 2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신고 접수했던 '국내노무동원 피해 신고현황' 도표. ⓒ 경영사연구소 양지혜 박사 논문 일부 발췌


노구치가 이끌었던 일본질소비료그룹은 다른 전범기업들과 다르게 처음부터 강제동원이 이뤄진 곳은 아니다. 일본인 노동자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려 했지만,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젊은 일본인 남성들의 소집이 많아지자 그 빈자리를 조선인 노동자로 메꿨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일본인이 다수의 조선인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부리기 위해 폭언과 폭력을 가하는 등 지배적·차별적 고용문화에 의존했다는 점들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경영사연구소 양지혜 박사가 2016년 발표한 '일제 말 일본질소비료(주)그룹의 조선 내 노동력 확보와 관리대책' 논문).

일본질소비료그룹은 노부치의 사망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패망 후 연합군에 의해 재벌 해체되는 과정에서 여러 회사로 분리됐다. 이에 1950년 한국의 모든 재산과 이익을 포기한 뒤 자국으로 돌아가 신일본질소비료(1950년)과 치소(1965년)를 거쳐 현재의 JNC(2011년)로 변천됐다.

◆SK머티리얼즈와 전범기업

이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JNC사가 다시 한반도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손을 맞잡은 곳이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전문기업인 'SK머티리얼즈'가 그 주인공.

SK머티리얼즈(036490)는 지난달 25일 JNC사와의 합작법인 'SK JNC(가칭)'를 설립해 OLED 소재 산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합작회사 지분은 SK머티리얼즈가 51%, 일본 JNC가 49%로 각각 나눠 갖으며 초기 자본금은 약 480억원 규모다.

특히 SK머티리얼즈는 오는 2025년까지 JNC와의 합작사를 글로벌 탑티어 OLED 소재 회사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이에 지난 10월 경기도 동탄에 국내 R&D 센터 부지를 확보했으며, 2021년 초까지 경기도 일대에 생산 공장 구축 및 청색 도판트를 시작으로 제품군을 점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SK머티리얼즈가 일본 전범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SK머티리얼즈는 2017년 일본 쇼와덴코(SHOWA DENKO K.K)와 반도체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식각가스 제조 합작사 'SK쇼와덴코'를 출범시켰다. 지분구조는 JNC와 마찬가지로 SK머티리얼즈가 51%, 쇼와덴코가 49%를 각각 가지고 있다. 

JNC와 마찬가지로 쇼와덴코 역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과 한반도 등지에서 조선인 강제징용에 나섰던 과거를 지닌 전범기업 중 한곳이다.

이명수 의원(국민의힘)이 2011년 9월16일 발표한 '일본 전범기업 1차 명단'에 따르면, 쇼와덴코는 일본과 한반도 내 강제동원작업장을 각각 10개와 6개 총 16곳 운영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발표한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보고서.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특히 해당 자료에는 한반도 내 위치한 6개의 쇼와덴코 강제동원작업장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명기돼 있다.

쇼와덴코의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더 존재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쇼와덴코는 니가타현에 군수공장(가노세공장)을 설립해 조선인 강제징용에 나섰다. 

SK머티리얼즈 측에 JNC와 합작사 설립 전 전범기업임을 인지했는지에 대해 묻자 "당사는 회사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으나 전범기업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또한 해체된 이후 설립된 회사들의 전범 기업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JNC와의 합작사 설립은 포트폴리오 확장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 발굴, 첨단 소재 기술력 확보 등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검토됐다"며 "본 건으로 인해 국가 경제 기여와 첨단 기술 성장, 소재 국산화 등의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일방적 자본 유출이 발생하지 않는 균형적 경제 활동이다"고 첨언했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일각에서는 SK머티리얼즈가 JNC와 쇼와덴코 등 일본 기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이 같은 주장은 특허 기술에서의 한국과 일본 간 격차가 분명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입각해 있다.  

실제로 OLED 발광소재 중 하나인 청색 소재 분야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일본이 관련 핵심 특허 대부분을 갖고 있어 지배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도 JNC를 통해 청색 도펀트를 공급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특허 기술 격차로 인해 소재를 '공급' 받는 것에 대해서는 여태껏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산업 발전에 도리어 도움이 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작사 설립은 엄연히 다르다. 100년 전 한반도 내에서 강제징용 등을 자행하며 쌓아 올린 부로 성장한 기업이 일본에 가서 그 맥을 잇고자 '新'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여 재탄생시켰고, 이러한 곳을 다시 한반도 내 발을 들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익을 얻게 만드는 것이 단순 특허 격차 때문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

그간 SK그룹은 국가 유공자와 독립 유공자 후손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기업 중 한 곳이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이윤 창출과 사회적 가치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미래'라는 집이 지어 진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끝으로 SK가 미래 성장사업을 위한 투자에 나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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