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공간, 현재의 나를 대변하는 증거

2020-12-09 10:00:07

[프라임경제] 사람에게는 공간(空間)이 필요하다. 사전적 의미의 공간은 다양한 뜻으로 분류된다. 각 항목에 대한 해석은 어느 것 하나 따로 떼어내 생각하기 힘들다. 

공간의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그리고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표현이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공간은 빈 곳이고, 눈으로 보이는 어떤 영역이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태아는 자궁 안에서 평균 40주 동안 자라며,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품에서 양분을 먹고 자란다. 태초부터 사람은 사람의 공간 안에서 안락하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사람의 공간에서 성장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늑대소년이다. 어려서부터 정글에서 자라 짐승에게 키워진 사람(예를 들어, 스페인의 마르코스 로드리게스 판토야(Marcos Rodríguez Pantoja), 인도의 소년 디나(Dina Sanichar) 같은 경우). 그들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짐승이기도 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 사례이다.

물가에서 자란 해녀는 물질을 잘하고, 숲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야생의 이치를 쉬이 깨친다. 이처럼 사람은 공간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변모한다. 각각의 공간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의 내면을 변형시키는 그런 힘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결이 되면 그에 따라 공간도 역동한다. 그의 공간과 나의 공간이 연결되는 것이다. 

즉, 공간이 확장되고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타인과의 접점으로 새로운 공간이 늘수록 사람의 성질은 유연해지기 마련이다. 

'오가닉 미디어'의 저자인 윤지영은 네트워크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공간이란 우리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환경이며, 인간에게 존재를 확인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공간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거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 등은 공간의 개념을 역설하는 속담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현재의 나를 대변하는 증거다.

살다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 안의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길을 잃어 고립되기도 한다. 등잔 밑은 늘 어두울 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속한 공간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에 대한 답이 이미 드러나 있다. 단지 그것을 보지 않으려 했거나 보지 못했을 뿐이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해당 공간에 대한 탐색을 통해 상대방이 어떤 에너지를 얻고 있는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현대는 공간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는 시대이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공간을 상하좌우로 구분 짓거나 그 크기를 논하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때문에 공간은 예전보다 더 큰 위력을 발산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공간을 통해 상실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희열과 만족을 얻기도 한다. 미디어 공간에서도 그렇고, 물리적 공간에서도 그렇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간이 엮이고 확장될수록 '살아있음'의 여운을 만끽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간은 그 영역과 성질을 가늠하기 힘든, 존재의 영역이다.

때로 누군가는 원하는 공간을 얻지 못했다고 아우성이다. 앞으로도 그것을 차지할 수 없겠다고 울분까지 토로한다. 원하는 사람과 연결되지 못했다고,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투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들어 이 같은 공간이 자꾸만 위축되고 있다. 좁아지고 작아져 사람까지 우울하게 한다. 서로의 연결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애써 쌓았던 공간마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모두 공간에서 비롯된 상처다. 공간의 확장 없이는 좀 더 나아지는 인생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 산다고 해도 그 꼴이 말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은 필요하며, 공간의 연결과 확장을 꿈꾸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한된 구역에서는 관계가 확장되기 어렵다. 딱 거기까지만 인정되는 공간에서는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의, 공간의 확장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간이 넓어지는 대신 깊어지면 된다. 성장하려면 농익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이든지 깊어지면 오래 갈 수 있다. 

지금, 한계선에서 잠깐 멈춰 있다면 나만의 깊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깊어지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흔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그런 깊이가 나의 높이를 지탱할 것임을.



이다루 작가 / 채움스피치 파트너 강사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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