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디스커버리펀드 ③] 기업은행 팽배한 도덕적 해이…시스템 부재 방증

'전문성 결여'에도 권한 치우친 직원, 감시 체계 "전무"…실적 쌓는 수단으로 전락한 고객

조규희 기자 | ckh@newsprime.co.kr | 2020.12.21 08:35:09
[프라임경제] 이른 바 '장하성동생펀드'로 더 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디스커버리펀드' 환매가 중단된 지 1년7개월이 지났다. 한 동안 이슈의 중심에 섰던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눈물만 남긴 채 점점 세간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간다. 환매 중단에 따른 피해자의 주름은 나날이 깊어지지만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상품 판매부터 현재까지 숱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운용사 △판매사 △금융감독당국 누구 하나 사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 무시와 회피로 일관하는 운용사. 보여주기 식 행보에만 급급한 판매사. 사태를 관망 중인 금융당국. 관련자들의 이 같은 행보에 피해자의 실망은 점점 커져간다. 본 특집에선 해당 펀드 판매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IBK기업은행을 중심으로 사태를 집중 해부한다. - 편집자 주

◆설립 목적 망각한 기업은행…고객 피해로 이어져

디스커버리펀드 환매 중단을 야기한 데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가장 불편한 대목은 IBK기업은행(은행장 윤종원, 024110)이 본연의 역할을 망각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막강한 권한을 쥔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이를 통제해야 할 은행 시스템의 부재가 '화'를 키웠다.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회원 등 관계자들이 이 펀드 피해의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관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자에 대한 효율적인 신용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중소기업자의 자주적인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그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제2조 목적)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여타 사모펀드에 비해 피해 규모가 작아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음에도 디스커버리 사태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자나 법인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이다.

태생의 배경을 고려하면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자나 기업에 득은 못 줄망정 최소한 피해를 입히지는 말아야 한다. 다른 은행은 몰라도 적어도 기업은행만은 중소기업자나 법인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있다면 영업을 자제해야 한다. 기업은행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규정과 절차가 무시된 채 펀드 판매가 자행됐다는 점은 기업은행이 맡은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기는커녕 이익에만 급급한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업은행은 보호해야 할 대상에게 해악을 끼쳤다.

펀드가 활발히 판매된 기간 기업은행은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기도 했지만, 실적 올리기에 몰두해 자신의 본분은 이미 뒷전인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이면엔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도덕적 해이로 귀결된 막강한 직원의 권한

화성의 한 지점에 근무하던 기업은행 A차장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가족이 운영 중인 법인 등을 통해 76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해 50억원이상 차익을 챙겼다. 부당 대출을 시행한 A차장은 기업은행에 의해 형사고발과 '징계면직' 됐다. 본 사례를 두고 기업은행은 직원 개인 일탈로 마무리했으나, 이는 기업은행 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됐다.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은행 차원에서 최소 두 가지 큰 문제점이 드러난다. △대출을 심사하고 실행하는 직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과 △4년여에 걸친 부정행위를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기업은행엔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들은 디스커버리 사태를 일으킨 배경이기도 하다.

펀드 환매 중단의 피해자가 입을 모아 지적하는 얘기가 있다. 펀드를 판매하는 직원과 대출을 실행하는 직원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한 피해자는 "상품 판매 시 고객이 갑의 위치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건 한 순간"이라며 "자금 회전이 불안정한 중소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대출을 실행하는 사람이 펀드를 가입해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출 실행과 펀드 모집이 같은 창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직원의 요청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예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게 피해자의 공통적 주장이다. 또한 그들은 "PB들이 기업의 자금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펀드 투자를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지점에서 고객의 자산 흐름을 파악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자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서'지 '직원 개인의 실적을 쌓기 위한 정보 취득'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 PB들은 본래 취지와 달리 기업 자금 정보를 활용해 고객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례가 한 두 건이었다면 A차장 사례처럼 개인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최소 20%가 법인이고, 50% 이상이 경영진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직원이 '대출 심사와 실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영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은행 직원의 도덕적 해이는 감사원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 감사원


직원의 도덕적 해이는 감사원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은 중소기업은행에 대한 '중소기업 운전자금대출 등 부당처리'에 대해 감사해 3건의 혐의를 적발하고, 기업은행에 해당 직원에 대한 경징계 이상의 징계를 요구했다.

◆판매 직원 "전문성" 도마 위…펀드 이해는 했나?

대출과 상품판매 채널이 일원화 돼 있어서 발생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판매자의 전문성 부족이다.

2015년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크게 낮추고, 사모 운용사 진입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낮추는 규제 완화 이후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사모펀드 시장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다 나은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해 규제를 완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모펀드 시장은 전문가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라며 "펀드의 투자처 역시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 다양해 투자에 앞서 시장을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가 없다보니 금융지식 없이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수익이 큰 만큼 손실 가능성도 커 가입 권유 시 반드시 고객에게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액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사모펀드의 최소 투자액인 1억원은 여전히 높은 금액이다. 때문에 보편적으로 투자를 업으로 삼는 기관투자자나 소수의 고액 투자자가 주요 투자 대상이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거나 여유자금이 아닌 돈을 투자하기엔 부적합하다"고 조언했다.

펀드 구조를 파악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데, 과연 모든 업무를 하는 직원이 펀드를 제대로 이해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미 피해자 측에서 증거로 제시된 바와 같이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한 상품" 등의 표현으로 고객을 유치했다면 이는 사모펀드의 개념을 전혀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고객은 확인서 성명란에 이름만 기재하고 도장날인 또는 서명만 했을 뿐 각 항목의 체크사항은 판매직원이 임의로 작성한 사례도 여러 건 있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 심지어 "기업은행 PB팀장이 대리 서명한 경우도 발견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 정황으로 비춰볼 때 할당된 실적이나 영업 압박 등의 이유로 기업은행 직원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품을 고객에게 '강매'한 셈이 됐다. 피해자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직원에 의해 고객의 투자성향이 조작되기도 했고, 금융 취약계층인 고령자에 대한 판매도 상당수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도진 전 은행장은 "무신불립의 태도로 신뢰 유지를 위해 내부통제시스템, 금융소비자 보호, 현장중심 경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IBK기업은행


◆공염불 그친 김도진의 "무신불립"…계속 실추되는 이미지 어쩌나?

지난 2018년8월 김도진 전 은행장은 "금융의 기초는 신뢰"라며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인 설 수 없다)의 태도로 신뢰 유지를 위해 내부통제시스템, 금융소비자 보호, 현장중심 경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입장을 바꿔서 상품과 시스템을 만들기 전 겸손한 마음으로 반드시 사전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스커버리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거쳐 2년 반이 지난 현재 돌이켜 보면, 결과적으로 그의 다짐은 공염불에 그쳤다. 

기업은행은 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만한 △내부통제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고 △기업은행의 주 고객인 중소기업자와 법인 금융소비자를 보호하지도 못했고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 했다. 또한 △펀드 상품에 대해 사전 모니터링은커녕 어떻게 운영되는지 실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막연히 기업은행을 믿었다. 피해자가 펀드 모집 자체를 '사기'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30여년을 거래하던 기업은행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긴 게 죄"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믿음이 깨진 중소기업의 이미지는 펀드 환매 사태 이후 점점 하락하고 있다. 은행 브랜드 평판을 분석하는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 따르면 펀드 환매 사태 이전인 2019년3월 4위를 기록했던 기업은행의 평판이 2020년12월 현재 5위로 하락했다. 지수 역시 큰 폭으로 떨어져 6위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사태 이전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기업은행은 △부실상품에 대한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하성 주중대사와 연결된 의혹을 해소해야할 뿐만 아니라 △고객에 입힌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비단 피해자뿐만 아니라 본 사태를 지켜본 대다수가 기업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윤종원 행장 역시 이를 인지한 듯 창립 59주년 기념사에서 "펀드사태로 손상된 고객의 신뢰회복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며 임직원의 준법·윤리의식 제고를 위해 IBK 바른경영지수 신설 등을 제안했다.

윤종원 행장은 창립 59주년 기념사에서 "펀드사태로 손상된 고객의 신뢰회복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IBK기업은행


김도진 전 은행장이 "무신불립"을 외친 뒤 2년 만에 윤 행장은 "신뢰회복"을 중점과제로 제시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윤 행장은 디스커버리 사태에 대해 "고객을 속여서 상품을 팔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으로 기대한다. 약속 이행에 앞서 윤 행장은 고객이 속아서 펀드에 가입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절차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다. 

기업은행이 펀드 판매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에 안긴 수수료가 50억원을 훌쩍 넘었다. 윤 행장이 강조한 "신뢰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라는 말이 "무신불립"처럼 공염불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한 번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린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