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고독'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

2020-12-21 14:25:43

[프라임경제] 고독은 글을 쓰는 내게 가장 필요한 대전제다. 자발적으로 고독한 현장을 만들지 않으면 생각의 확장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독은 내게 있어 생각을 향유하기 위한 공간이자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고, 몰입을 위한 정신적 향기다. 시도 때도 없이 두리번거리며 고독을 찾는 일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고, 삶의 일부분이다. 

나의 고독은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인 에밀 시오랑(Emil M. Cioran, 1911~1995)의 글쓰기 고독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으랴? 이보다 강렬한 행복은 없거늘. 그렇다, 고독에 귀 기울이는 행복은 침묵의 힘을 받아 한층 더 불어난다."

나는 정작, 고독을 예찬하면서도 이제껏 고독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고독이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적막한 공간과 그 안에서의 평화로움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순간을 의미했다. 나만의 풀이와는 달리 표준국어대사전은 고독(孤獨, 외로울 고, 홀로 독)을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고독이 이렇게나 씁쓸한 단어였다니…. 그러고 보니 문득 고독사라는 외로운 죽음도 이 시대의 가슴 아픈 상처라는 것을 상기했다. 홀로 외로운 것들은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그 대상은 도처에 얼키설키 뒤얽혀 있다. 계절, 시간, 공간, 관계에서 곰팡이처럼 퍼져 있는 이 외로움이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잠식하면서 스며드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고 사무치게 쓸쓸하고 우울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좇는 고독과 외로움이 다른 이유는 '존재'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외동딸, 외동아들, 기러기 아빠, 1인 가족, 독거노인 등이 그렇다. 이렇게 홀로 있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대개 외로움을 연관시킨다. 그러나 홀로 있다고 무조건 외로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외로움은 존재의 양상 또는 상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외로움의 정도도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의 외로움을 나의 가치관으로 판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일 출신의 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에 따르면 홀로 있음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외로움'이, 홀로 있음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처럼 외로움은 고통인 것에 반해 고독은 영광이고 기쁨이다. 

고독을 영어로 풀이해보면 더욱 흥미롭다. 고독은 △solitude △loneliness △aloneness △isolation으로 표현되는데, 그중에서 solitude는 나머지들과 다르게 구분된다. solitude는 특히 즐거운 고독을 뜻하며, 외롭거나 쓸쓸한 감정이 아니라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고독의 해석이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고독을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와 함께 있다는 의미다"라고 정의했다.
 
나는 고독 속에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집트 태생의 프랑스 가수인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1934~2013)의 나의 고독(Ma Solutude)의 "Je ne suis jamais seule avec ma solutude(나는 고독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라는 노랫말처럼.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는 건, 아렌트의 말마따나 내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 공간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시공간 또한 나와 함께 공유하는 바로 그 순간이 solitude, 고독이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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