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향기로울 수 없는 '가시 돋친 말'

2020-12-24 10:51:31

[프라임경제]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데 꺼내기도 전에 빈정대는 느낌을 풍기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은 짓누르는 대로 변형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이내 생각에 잠식되어 나를 갉아 먹는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말의 기운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다. 특히 상대는 그 무게를 처절하게 감당해야만 한다. 나를 갉아먹던 말의 기운이 순식간에 상대를 집어삼킬 만한 기세로 평정되니 말이다. 

가시 돋친 말은 듣는 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청자의 귀로 흘러들어가 온 마음을 흔들어버릴 게 뻔해, 내 안에서 삭이는 게 차라리 낫다. 타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면, 기쁨의 나눔처럼 역시 곱절이 된다. 그러므로 말에는 삭이는 표현이 훨씬 더 많아야 한다. 그런데 분출하는 말보다 삭이는 표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1인 미디어 계정을 만들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으며, 공유를 통한 관계를 형성할 수가 있다.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생각과 느낌은 어느 때보다 주목받기 쉬워졌다. 먼저 베풀었던 '좋아요'가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순간, 자신의 의견은 타자의 공감으로 완벽하게 굳세어진다.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뱉어낸 말에는 비판 없는 호응과 공감만이 가득하다. 

상대의 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른바 TMI(Too Much Information)가 난무하는 1인 미디어 공간에서 이러한 영상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동영상 채널의 운영자들은 제어가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말을 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는 탓에, 말의 흐름을 함부로 끊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듣고 싶지 않은 말도 쏟아낸다. 시청하는 사람들은 마구 흘러들어온 말을 걸러내느라 기운이 빠진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하지만 선순환을 하는 수많은 영상들이 조회 수가 엄청날 정도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동영상 채널을 시청하다 정제되지 않은 말이 흘러나올 때면 나는 그 말이 참 버겁다.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도 못한다. 귀에 정화장치라도 있으면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의문이나 여운을 느끼기 쉽다. 그런 공백은 상대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의 방식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말은 감춰져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낸다고 할 수 있다.

말이란 대체 무엇일까.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는 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남겼다.

"구슬이 이지러지고 흠이 난 것은 오히려 갈고 닦아서 반들반들하게 할 수 있지만, 말은 한번 잘 못하면 건질 수 없고, 나를 위하여 혀를 붙잡아줄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말은 나 자신에게서 나오며, 실수하기 쉽기 때문에 늘 잡도리하여 제멋대로 나오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발화된 말에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 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마주했을 때 언제나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옷깃에 스민 향은 기분을 다독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이 언제 어디서나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변함없는 향기를 내뿜는 말에는 비교, 우위, 동정, 시샘, 거짓 등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는 그 사람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지 않아야 하며, 칭찬할 때에는 경애심으로 속을 채우기도 전에 섣불리 말하지 않아야 한다. 가진 자 앞에서는 가지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하고, 상처 하나 없이 상처 입은 자의 눈물을 닦아주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최소한의 배려를 진심으로 다한다면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냄새가 아닌 향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향을 알아차려야 한다. 꽃의 향기만 시간에 익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시간에 따라 향을 품고 향을 내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 옆에는 자연스레 퍼지는 향을 맡으러 주위에 머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곁에만 있어도 향기로워지니, 어찌 발길이 닿지 않겠는가. 

향을 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칼을 품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종종 입에도 칼을 문다. 그리고 칼날 섞인 말로 무참히 상대를 쓰러트린다. 그건 승리가 아니다. 위협이다. 칼을 쥐고서 향기로울 수 없는 이유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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