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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우리의 적'을 미국인이 정해주는 아이러니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0.12.27 03:09:29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인 2010년 12월27일에 다뤄졌던 이슈 중 하나는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발간을 앞둔 2010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지 않는 대신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전달하고, 우리 군의 확고한 대적관을 표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산된 남북한의 긴장완화 움직임에 따라 지난 2000년 국방백서를 끝으로 주적 표기는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는 표현 정도로 사용해 왔죠.

그런데 국방부는 10년이 흐른 2010년에 왜 다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명확하게 '우리의 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을까요.

당시 안보 상황으로는 우리 군 입장에서 북한군과 북한 정권을 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북한의 도발과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사실상 주적의 의미를 살려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난 2010년 4월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성조 정책위의장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주적개념을 언급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바로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이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증강,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 같은 지속적인 무력도발과 같은 위협.

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의 적이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현재 보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미국인이자, 과거 한국에서 가수로도 활동했던 스티브 유 씨(한국명 유승준)의 발언 때문인데요. 스티브 유 씨는 2002년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가 법무부로부터 19년째 한국 입국 제한 조치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죠.

그의 발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군대는 왜 존재하는 겁니까. 지금 북한과 전쟁 중 아니에요? 우리의 적은 북한 아닙니까? 미국입니까? 우리의 적은 북한 공산당 아닙니까! 우리를 지금도 핵으로 위협하고, 최근에도 대한민국 공무원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등 시시때때로 도발하는 북한이 우리의 적 아니에요? 김정은이 적 아니에요? 빨갱이가 적 아닙니까?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스티브 유 씨가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이렇게 화가 많이 난 이유는 국적변경을 통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다섯 가지 법안을 패키지로 묶어 이른바 '유승준 원천방지 5법(국적법·출입국관리법·재외동포법·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이 발의됐기 때문인데요.

미국인 스티브 유 씨가 공개한 그동안 참아왔다던 한마디를 뱉는 영상 캡처. ⓒ 유튜브 캡처


스티브 유 씨는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며, 자신이 누구를 살인한 것도 아니고 성범죄자도 아닌데 뭐가 무서워서 유승준이라는 연예인 하나 막으려고 난리법석이냐고도 지적했죠. 

그러나 해당 법안은 무서운 스티브 유 씨 하나 막으려고 난리법석으로 발의된 법안이 아니라, 스티브 유 씨의 사례처럼 국적변경을 통해 병역을 기피한 이들에 대한 입국제한 근거를 확실하게 하는 내용으로 이뤄진 법안인데요.

육군 대장 출신이자 법안을 발의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비단 스티브 유씨만 '가위질' 하려고 만든 법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병주 의원은 "병역의무는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인데, 병역을 기피하려는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취업하거나 체류하는 건 공정의 가치에 어긋난 것으로, 이를 바로 잡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작 난리법석으로 자초하고 있는 스티브 유 씨는 문제에 대한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탄식도 자아냈습니다. 병역의무 회피는 엄연히 대한민국 헌법을 어긴 것인데, 스티브 유 씨는 자신이 병역의 의무를 져버린 것은 팬들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괴설을 뱉어냈기 때문이죠.

스티브 유 씨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우리 여중생들인 '효순양과 미선양'을 언급했는데,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효진이 미진이'라는 사람이었다. ⓒ 유튜브 캡처


미국인이 우리나라의 적을 북한이라고, 현 정권이라고 단정 지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스티브 유 씨는 갑자기 그동안 참아왔다던 본색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스티브 유 씨는 전반적으로 최근 보수 야당조차 거리두기를 하는 태극기부대의 인식 수준을 보이며, 보수 진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이 돼달라며 호소했는데요.

편을 확실하게 얻고자 스티브 유 씨는 촛불시위를 쿠데타로 지칭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 통곡했다고 이야기하는 등 국정농단에 대해 부정하는 극우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또 최근 치러진 미국 대선에 대해 100%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극우 보수 기독교적인 생각을 나타냈죠. 

스티브 유 씨가 현 정권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쏟아낸 것을 두고 뻔한 속셈이었다는 시각도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의 한국 입국이 어렵다는 판단을 해서인지 '내가 한국에 못 들어오는 건 현 정부 때문이야, 그래서 나 억울해, 공감해줘'라며 징징거리는 등 보수 세력들을 향해 동정 아닌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스티브 유씨는 실언까지 해 빈축을 샀습니다. 굳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우리 여중생들인 '효순양과 미선양'을 언급했는데, 정작 스티브 유 씨 입에서 나온 이름은 '효진이 미진이'라는 사람이었죠.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인 스티브 유 씨는 이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모습이었는데요.

미국인 스티브 유 씨가 공개한 그동안 참아왔다던 한마디를 뱉는 영상 캡처. ⓒ 유튜브 캡처


일련의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적은 보수 유튜버 스티브 유 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요. 

일명 어그로(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일)를 끌며, 무책임의 버튼이 돼버린 유튜버 세상에서 억지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 국민적 공분의 대상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본인이 의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 조회 수를 통해 돈도 벌었고 말이죠. 

보수 진영의 지지를 얻고자 내뱉은 발언들은 살펴보면 보수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까지 비춰집니다. 이른바 나라를 지킨다는 뜻의 보수인데, 헌법을 어기며 국방의 의무를 외면한 스티브 유 씨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요.

실제로 영상 속 40분 동안 미국인 스티브 유 씨가 뱉은 말들은 입대를 피하려고 국적을 포기한 그가 할 말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국민들이 무슨 호구인줄 아십니까?"라는 질문은 오히려 본인 스티브 유 씨에게 스스로 가장 필요했던 질문으로 보입니다.

"나처럼 모범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한 사람이 있었냐. 다 잊은 것이냐. 이제 한국 입국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문은 더 굳건히 닫혀졌을 텐데 스티브 유 씨의 포기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 사람이 자신을 한국 사람으로 착각할수록, 그렇게 미국인 스티브 유 씨의 속상함과 실망감은 더욱 커질 테니까요. 나아가 스티브 유 씨의 바람대로 보수 진영이 국적을 버린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힘을 실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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