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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대재해법 '5인 미만 공백', 택배법 실패에서 배워야

소규모 사업장 법적 책임 잠시 유보해도 '사회적 합의' 적극 가동 절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1.07 10:06:39

[프라임경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제정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고심해야 할 점은 6일 이뤄진 일명 여·야간 합의 즉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조율 대목이다. 

8일 본회의 처리를 위해 사전 정지 작업으로 현실과 정무적 고려 하에 이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난국과 내년 봄 재보선 등 정치적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 어중간한 타협으로라도 시작하는 게 낫다는 점을 우선 전제하고자 한다. 

특정 담론으로 모든 정치 국면을 올스톱할 수 없는 이른바 주요 정당들의 고심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이 법에 대해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재계의 반발이 강한데, 처벌 기준 완화 등 이들의 보완 요구가 전혀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여기서는 친노동과 친기업 등 이 법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 차이 중 어느 쪽이 옳으냐는 결론이나 그 과정에 필요한 현란한 논쟁은 차치하고, 우리 사회가 중대재해 문제를 바라볼 때 반드시 공통으로 바탕에 깔고 가야 할 점, 그럼에도 간과되고 있는 점 하나만 놓고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적용 대상 선정의 형평성 문제다. 여기서 작은 사업장 소속 근로자의 안전은 다른 이들의 안전 대비 경시되는 불편한 현실이 과연 언재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파생된다. 

이른바 '회사 규모에 따라 사람 목숨과 안전의 값어치'가 달라지는 경제 현실의 문제다. 

6일 합의에서는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여당 소속인 백혜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포함되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설명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그렇게 되면) 560만명 이상이 제외되는데 그분들의 안전은 누가 담당하느냐"는 일갈 앞에 초라해진다. 정치권 주요 정당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부득이 눈 감은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눈을 담은 김에 아예 소경이 돼 버리지나 않을지다. 우리나라 260만개 사업장 중 5명 미만은 2018년 기준 전체 사업장의 72%를 좀 웃돈다. 

최악의 가능성은 가뜩이나 큰 공백을 이리저리 악용까지 하는 경우다. 즉,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가 되면 작은 기업을 손쉽게 5인 미만 기업 여럿으로 쪼개서 운영하는 것이 '대유행'할 수 있다는 우려다. 

경제적 어려움이 큰 상황에서 사업이 어려운 소규모 업종의 경영적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는 점에 안전 문제를 잠시 눈담는 것 자체는 부득이한 선택이다. 다만, 이런 사업장을 이끄는 경영자들을 위해 '법'의 그물을 벗겨주더라도 그보다 좀 덜 옥죄는 또다른 견제나 감시의 책무 같은 '사회적 역할' 또는 '사회적 합의' 마련은 즉시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에 냉소적으로 반응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속칭 생활물류법)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안 조율 과정은 중대재해법과 같이 이번 8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첨예한 쟁점과 난제를 사회적 합의의 몫으로 떠민 좋은 사례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부터 당장 이도저도 아니게 망가져 버림으로써 사회적 합의라는 게 너무도 쉽게 허울좋은 공염불이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해당 산업계에서는 분류작업 책임을 표준계약서에 규정하는 조건으로, 생활물류법에는 명시하지 않기로 정부·택배업계와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기업들이 그런 합의를 실제 이행하는 일에 모르쇠로 나오면서 지금 이에 대한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 모두 공중에 붕떠버리게 됐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도 택배 물량 부담에 택배기사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법의 족쇄는 잠시 유보하더라도 안전의 값어치, 이를 위한 사회적 견제와 감시 그리고 관심은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근로자들에게도 한시의 유보 공백 없이 미쳐야 한다. 어떤 버거운 상황 앞에 잠시 눈을 감는 것과 눈감은 김에 아예 자버린다든지, 심지어는 눈감은 김에 영원히 소경이 되는 것은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안전 문제에 영원히 눈감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마다 서로 깨워주자. 택배 분류 이슈 앞에서 눈멀었던 부끄러운 일에서 이번 문제를 넘을 교훈과 슬기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모든 걸 법으로 해야 하고 법이 없으면 가동되지 않고 법을 정하고 운영하고 해석하는 데 매몰돼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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