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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LG생활건강, 하청업체 노동자 죽음에도 '나몰라라'

해태htb 평창공장 재해자 유족 방관 "20번 넘는 요청에도 원청, 답변 없었다"

김다이 기자 | kde@newsprime.co.kr | 2021.01.11 18:32:25

[프라임경제] "국내 대형 생수 업체에서 이렇게 안일한 대처를 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9월24일 LG생활건강(051900)의 자회사 해태htb의 평창수 샘물을 제조하는 강원도 평창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인 故 최 모(46. 남)씨가 3.5t 지게차에 충격을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LG생활건강 서울 본사. ⓒ LG생활건강

해당 공장은 사고 당시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고, 2주 만에 중지해제가 이뤄졌다. 통상 작업장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 발생 시 3주 이상의 중지 기간이 이뤄지는 것에 비해 짧은 기간이다.

문제는 2주 안에 사업장에 제대로 된 2차 재해 방지 개선조치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한 사고 후 100일이 넘었음에도 사측에서는 유족에 대한 명확한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

◆무책임한 하청업체, 원청은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

사고는 최 씨가 공장 외부 출하 장소에서 출하 물품들을 전산에 등록하기 위해 바코드를 입력하는 작업 중 발생했다. 동료 직원이 지게차에 생수를 쌓고 이를 화물차량으로 옮기는 작업 중, 지게차에 높게 쌓은 생수에 전방 시야가 가려 최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뒤에서 충돌하게 된 것.

해당 사고로 평창수를 제조하는 평창공장은 약 2주간 가동이 중단됐고, 그해 12월14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사고를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현재 사측과 유족들 간의 합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최 씨가 근무했던 해태htb 측과 하청 물류업체 A사에서 유족들에게 보인 태도다.

앞서 최 씨가 사망한 당시 A사 전무는 최 씨의 4일장 내내 장례식장에서 상주하면서 원만한 합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공장 작업중지해제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자 A사 측은 유족과 합의에 있어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공장이 재가동하기 위해서 유족과의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합의하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절차가 빠지게 되자 회사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원청인 해태htb 역시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유족 측은 해태htb 담당자와 관련 부서에 20번이 넘게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주겠다는 말만 남긴채 해태htb 역시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 해태htb 관계자는 "평창공장 사고는 협력업체에서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협력업체에서 유족과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협력업체에서는 합의를 진행하면서 최초 유족 측이 원하는 수준으로 합의를 진행 하려고 했으나 현재 유족 측에서 거부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원청업체인 해태htb는 협력업체와 유족간 원만한 합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태htb 평창공장 "현장 안전관리 미준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공장에서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노동부장관은 사업장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린다.

작업중지 해체를 위해서는 사업주가 재해를 유발한 유해·위험요인뿐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체계 등을 점검해 사업장 전체를 개선조치 해야한다. 개선 완료 후 개선사항에 대해 중대재해 발생 해당작업 노동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작업중지해제 신청서를 노동부에 접수한다.

노동부에서는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중지해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승인이 되면 즉지 작업중지가 해제되고, 불승인이 되면 해당 사항을 보완해 다시 작업중지 해제요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2차 재해 발생을 막기 위한 조치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졌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한 노무사는 "모든 물류창고에는 과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값싸고 중량이 큰 생수같은 경우 1단으로만 적재하면 단가가 안맞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양심있는 회사의 경우 지게차 주위에 신호수(유도자)를 배치하고 다른 노동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확성기 들고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태htb 평창공장은 현장에서 과적 금지나 신호수를 배치하는 등의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거나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예견된 사고인 셈이다.

사고 당시 전방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과한 물량을 지게차에 운반했고, 신호수(유도자)를 배치하지 않는 등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속해왔다.

해당 사고의 유족 측은 "사고 원인은 원청과 하청업체 사이 하도급 금액 문제로도 볼 수 있다"며 "하청업체는 보다 많은 수익을 남기기 위해 지게차 기사에게 시간 절약을 위해 과적의 일상적 지시, 물류창고에서 과적 작업 시 사고방지를 위해 배치하는 신호수(유도자)를 배치하지 않아 그 인건비를 아끼려는 태도 등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는 원청업체에서 단가 후려치기와 공정한 금액보다 낮은 하도급 금액을 강요하는 등 문제로 인해 발생하게 된 구조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LG생활건강 해태htb 관계자는 "평창공장은 지난해 10월13일부터 관계당국(고용노동부)의 재가동 승인을 받고 정상 운영하고 있다"며 "자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관계당국과 협의 하에 지게차 접근경보시스템 설치, 적재량 조정, 작업 지휘자 추가 고용 등의 안전 사항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은 '살인방조법안'…"제2의 김용균 막아야"

원청에서 책임을 하청업체로 떠넘기고 사고 발생 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 또한 우리나라의 뼈아픈 현실이다.

지난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처리했다. 내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노동자 여러 명이 다친 경우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형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정의당과 故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는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를 외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2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대재해법' 필요성이 대두됐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김용균법'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정작 재해 발생 기업주와 원청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핵심 내용이 빠졌다며 질타를 받았다.

이번 중대재해법 제정안은 당초 원안에 명시했던 내용보다 적용대상이 줄었고, 벌금의 상한을 높였지만 하한을 없애면서 처벌 수위가 낮아졌다. 처벌 대상에 공무원이 빠졌고 학교 역시 제외됐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부 부처와 재계의 민원 심의를 통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재탕됐다"며 "이번 법안은 '중대재해 살인방조법안'이고 '중대재해차별법'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도급사는 다음 계약을 연장해야 회사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원청사의 눈치만 보고, 원청사는 원칙적으로 책임질 의무가 없다. 결국 도급사에 일뿐만 아니라 모든 안전적 책임까지 떠넘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OECD 산재 사망률 1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안전 보장을 위해 기업주와 원청에 대한 책임을 강력히 촉구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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