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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변성완·박성훈의 '쇼는 계속되어야 하나?'

'오거돈 공백' 메울 고위 공무원 책임 대신 정치적 도전한다면 남보다 막중한 책임 느껴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1.21 15:54:39

[프라임경제] 'The Show Must go On'는 그룹 퀸의 노래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원래 미국 작가 해리 골든의 에세이입니다. 

해리 골든은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지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러라"라는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 오페라 배역, 모친상을 당한 지 얼마 안 돼 호텔 카운터에서 사소한 손님의 트집에 시달린 자신의 경험 등을 거론하며 비극이 있어도 맡은 바 일을 다 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합니다.

이 글 말미에는 인도 작가 타고르가 어느 날 출근을 늦게 한 하인을 해고하려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실 그 하인은 대단히 늦게 출근해서는 뻔뻔할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했던 게 아니고, 전날 밤 딸이 죽었음에도 최선을 다해 출근해 주어진 일을 평소처럼 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음이 밝혀집니다.  

비단 직업적 책임이 개인의 아픔에도 수행되어야 하는지만이 아니라, 개인이 어떤 사명감을 갖고 즉 소명의식으로 인생의 각종 풍파를 대처해야 하는지의 물음을 던지는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단순히 '나 잘난 맛'에 화려하게 '인생을 쇼처럼' 사는 삶을 경계하는 교훈을 던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실제로 그런 측면에서인지 예전에 어느 대학에서는 교양영어 교재 첫머리에 이 글을 실어 신입생들을 교육시키기도 했습니다.

부산지역 여성단체들이 이번 4월 재보궐선거와 관련, 작정하고 쓴소리를 내놨는데 이 회견 내용에서 이 에세이가 떠올랐습니다.

21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짚은 문제점은 다양합니다. 

아직 주요 정당들이 본선 후보를 결정하지 않아 십수명의 후보군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오거돈 전 시장의 미투 논란으로 빚어진 선거인데도 막상 이 많은 후보(정확히는 예비후보라고 해야겠지만)들이 제대로 된 여성 공약을 내놓지 않은 건 문제라는 지적이 우선 나왔습니다. 

특히 오 전 시장이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됐었다는 점, 그럼에도 공천 룰을 바꿔서 이번 부산 보선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로 한 점도 문제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아울러 이들은 오 전 시장의 퇴장으로 부산시가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는 와중인데, 이것마저 고위 공직자들의 출마 러시로 파행 위기에 노출됐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이들은 회견에서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사건으로 사퇴하면서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부산시정 또한 파행 위기에 놓였다"며 "하지만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박성훈·변성완 부시장마저 출사표를 던지거나 출마예정에 있어 시정공백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변성완 부시장이 권한대행 중이나 26일 사퇴, 민주당 쪽으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요. 박성훈 전 경제부시장은 얼마 전 이미 공직을 떠나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죠.

부시장이 시장의 일탈을 모두 알거나 함께 책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정치적으로 어떤 욕심이 막연하게나마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 두 전직 부시장, 혹은 이제 곧 물러날 현직 부시장이자 권한대행들은 모두 출중한 능력으로 직업공무원으로서는 최상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기에 무모한 도전이라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메트로폴리스이자 대한민국 제2 도시인 부산의 마스트를 비운 상황에서, 9급 공무원과 부득이 시장 대신 키를 대신 잡고 거대한 부산시라는 배를 움직여야 할 책무가 주어졌는데 부시장급 인사들이 대처해야 힐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는 주문도 불가피합니다. 그런 고위 공직자들까지 굳이 다른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는 마음을 먹은 것은 좋은 사례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오죽 보기가 안 좋아야 여성단체들까지 부시장들의 처신에 쓴소리를 냈을까요. 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가급적 빨리 자리에 나타나 일을 하라는 식으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어렵겠지요. 

하지만, 다음 시장을 제대로 뽑을 때까지만 권한 대행을 하고 그 대행을 다른 부시장이 도와 주라는 정도의 요청이 과연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둘 중 하나도 아니고 그런 인물 둘이 모두 다 고개를 가로젓고 각각 선거 플레이어로 뛰겠다는 상황은 아마도 한동안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부산만의 케이스로 남을 것입니다. 이 책임은 이들 중 한 인물이 다음 시장이 되든, 아니면 둘 다 또다른 선거나 임명직 자리를 꿈꾸며 전전하는 일명 정치적 낭인이 돼 버리든 오래도록 그 뒤를 따라붙을 겁니다.

시장 사퇴 상황에 "부산 공복으로서의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되뇌면서 묵묵히 일하는 대신 "내 인생의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또다른 길을 모색한 이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을 것이기에 더 이상의 비난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기왕 그런 마음의 빚을 안고도 무겁게 선택한 길인 만큼, 다만 이들이 "정치적 쇼질이나 하고 있다" 혹은 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 잘난 맛에 쇼처럼 인생 산다"는 한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이게 바로 정치의 예술이다, 이런 좋은 방향으로 이들의 쇼는 계속되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두고두고 시민들에게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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