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이성과 감성

2021-01-22 10:03:57

[프라임경제]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다. 세상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방 안에서 칩거생활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불완전하고 미숙했던 이성 탓에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다. 여물지도 못한 이성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내적인 혼란으로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이성이 무너지면 본능에 충실한 동물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지금 이 순간만 좇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배고픔이나 충동, 기분이나 형상만을 좇는다. 눈앞의 부족함만 그럭저럭 보완하면 금세 제 삶의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연상시킨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 기원전 65~기원전 8)의 시 <오데즈(Odes)> 중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에서 비롯된 시구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과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眞僞)·선악(善惡), 또는 미추(美醜)를 식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또 일반적으로 보고 들어서 아는 감각적 능력과 구별되는 개념에 의한 사유능력을 뜻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성도 성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보다는 이성이 확실히 크고 넓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성의 성장은 이를테면 어른의 나이테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또한 어른들의 특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써 그 특권을 져버린 어른들이 있다. 주변에서 '이성을 잃은 어른'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편견에 빠져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신념 하나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진위를 파악한다. 풍문으로 얻은 지각으로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지도 못한다. 행여 그들이 힘을 얻는다면 세상은 암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성은 객관적이고도 현명한 자각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이성을 잃기 십상이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성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럴 때마다 탈출한 이성을 찾으려고 두 뺨을 매만진 적도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성이 존재하는 시간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 시간인 셈이다.

이 순간만 살아가는 사람은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이다. 그들은 감각과 감정에 지배받는 사람이다. 순간의 쾌락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본인의 내일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 당장의 문제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신체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데, 하물며 생각하고 사고하는 정신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주관(主觀)이다. 주관은 감성을 바탕으로 확장된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1804)에 따르면 '우리가 대상에 의해 유발되는 방식을 통해 관념을 얻게 되는 능력(감수성)이 감성이다(<순수이성비판> 중에서)'.

이성과 감성은 서로 어느 한 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둘 중에 한 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어른의 특권을 한껏 누리는 삶이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어른다워지려면 날마다 스스로를 계몽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칸트에 기대본다. '계몽이란 스스로 저질러 놓은 미숙성으로부터의 인간의 탈피'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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