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 남기춘 당시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는 2011년 1월28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사직 소식을 전하는데요.
이 당시 그의 선택은 수사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외부 비판까지 겹치면서 일종의 항의성 사표가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한화그룹 고위 간부들에 대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비자금 수사에 대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던 것입니다. 일각에선 수사 책임을 물어 남 지검장의 교체론을 제기하기도 했고, 결국 자진해서 떠나는 걸로 가닥이 잡힌 것이죠.
그는 1979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학 동기 사이입니다. 검사가 된 후 특수통으로 경력을 쌓는데요. 그래서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 등 특수 수사 전문가인 선배들로부터 대단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심 전 고검장이 '항명 파동'을 일으킬 때 그를 수행해 대구에서부터 올라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 출신으로 사법부 최고위층으로 영전한 안대희 전 대법관도 남기춘 팬에 속합니다. 안 전 대법관은 과거 "내가 (외부 압력에서) 남기춘 같은 애들 챙겨야 해서 못 그만 둔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그가 이끌었음에도 한화 비자금 수사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한화 오너 일가가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닙니다. 남 전 검사장의 사퇴 이후 약 1년 반이 흐른 2012년 8월16일, 김승연 한화 회장은 법정구속 되기에 이릅니다.
당시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2부는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했죠. 심지어 김 회장을 법정구속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차명계좌를 만들어 비자금을 조성하고 차명으로 소유한 위장계열사의 부채 수천억원을 회사 돈으로 갚은 혐의 등 검찰 기소 내용을 넉넉히 인정한 결과였죠.
당시 한화그룹이 받았을 충격은 대단히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비단 한화 뿐만 아니라 어느 그룹이든 이 사건 같은 오너 일가의 책임론 이슈에 방어를 적극적으로 하고 이를 계기 삼아 구조를 다잡는 것은 병가지상사에 해당합니다만, 그 각고의 노력과 고통은 최상층보다는 부하 구성원들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뀐 현 상황에서 한화 그리고 그 오너 일가의 행보는 어떨까요? 태양광과 방위산업에 그리고 수소 등 그린뉴딜 관련 산업을 신사업으로 키우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적극 행보로 미래 가치를 잘 잡았다는 찬사인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아들 3형제와 경영 수업 문제도 화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정도면 큰 탈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옵니다. 고 김종희 창업주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젊은 나이에 총수직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일부러 '올백 머리'를 하는 등 얕보이지 않고자 외부 시선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1981년 이래 그가 내심 겪었을 마음의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방증이지요.
한편, 경영수업과 향후 순조로운 세대교체 가능성과는 별개로, 김 회장의 일선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법원의 유죄 판결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는데, 2021년 2월 이후엔 법적 제한 족쇄가 풀리므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복귀론이 과연 적당한지 즉 김 회장이 비자금 사건 등 지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고 그 여파가 아직 한화 부근에 어른거리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브레이크 논리도 나옵니다. 일례로, 자료 리셋 문제가 회자됩니다.
지난 2020년 여름 이야기를 해 볼까요? 공정거래위원회는 한화 오너 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결국 무혐의로 종결했습니다. 공정위가 5년에 걸쳐 한화그룹 계열사들과 IT서비스 업체 등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탈탈 털었지만, 결국 딱 떨어지는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는 건데요.
흥미로운 것은 이때 옛 한화S&C 등을 들여다 봤음에도 공정위 칼날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이유로 자료 리셋 그리고 앞서 서두에서 소개한 '김기춘 여파'가 거론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는 애초 무리수였다고도 보는 모양이지만, 공정위 일각에서는 당시 비자금 수사 때 하도 호되게 시달려서, 즉 검찰발 교훈을 살려 한화가 자료를 모두 리셋한 것 같더라는 하소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글쎄요, 아무튼 금년 초봄을 볼 일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서도 자료를 공장 바닥을 뜯고 숨겼다는 둥 자료 숨기기나 리셋 논란이 다른 그룹에서도 없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여론 더 넓게는 기업 활동에 대한 기대치와 기준이 날로 높아가는 상황 때문에 복귀한다면 그 시점 즈음에 무겁게 해명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업 세대와 3세대 등극을 연결하는 김승연 세대의 고심이 그것이고, 그걸 극대화한 게 바로 특수통 남기춘 검사였던 것입니다. 10년 전 남 전 검사의 교훈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현재적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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