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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NO, 미래차로 대동단결" 삼성-현대차그룹 맞손

디스플레이 외 배터리·반도체 등 양 그룹 간 협업 가능성↑

오유진 기자 | ouj@newsprime.co.kr | 2021.01.28 17:41:01
[프라임경제] '숙명의 라이벌' '세기의 라이벌' '국내 재계 서열 1위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 

이 같은 수식어는 삼성과 현대 창업주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두 회장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는 1세대 창업자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 등으로 인해 협업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왼쪽)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오른쪽). ⓒ 연합뉴스


그도 그럴 것이 두 회장은 오랜 시간 재계 서열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해왔고, 그 과정에서 중공업·건설 등 여러 동일 산업군에서도 부딪쳐왔기 때문에 서로 왕래하면서 사업적 협력에 대한 논의는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렇게 형성된 두 그룹 간 긴장 관계는 2세대인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현대 역시 전자 및 반도체 사업에 각각 뛰어들면서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과는 다르게 긴장의 끈은 더욱 팽팽해지는 모습이 연출됐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현대는 반도체 사업을 SK에 매각했으며 삼성도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되는 등 이를 계기로 두 그룹은 전자와 자동차로 각각 사업 노선을 확실하게 잡으면서 라이벌 구도에 휴전기가 찾아오는 듯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 연합뉴스


몇 년 동안 잠잠했던 두 그룹 간 라이벌 구도가 재형성되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삼성동 소재 옛 한전 부지를 놓고 두 그룹이 펼쳤던 입찰 경쟁이 그 일례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사옥 건설부지를 찾던 중 매물로 나온 한전 부지를 일찌감치 낙점했고, 삼성 역시 오래전부터 이 곳을 사들이기 위한 준비를 해온 탓에 두 그룹 간 입찰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확전 됐다. 여기에 선대부터 이어져오던 미묘한 자존심 싸움도 바탕에 깔리며, 두 그룹 모두 감정 평가액을 훨씬 웃도는 입찰가를 써낼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당시 3조3000억원 정도의 감정평가액을 받은 한전 부지는 평가액의 3배를 써낸 현대차그룹 컨소시엄 손에 쥐어졌다는 점만 봐도 두 그룹 간 입찰 경쟁이 얼마만큼 뜨거웠고, 치열했는지를 방증한다. 

◆'라이벌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 변모

두 그룹 간 크고 작은 신경전들은 3세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서도 지속됐다. 이는 양 그룹 간 구체적 협력 사례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신빙성이 높았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를 타다가 쌍용차로 바꿔 탄다던지, 정의선 회장이 삼성전자 글로벌 경쟁사인 애플의 스마트폰을 쓰는 모습들을 비칠 때마다 "양 그룹 간 해묵은 라이벌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만, 업계에서는 술상 위 안줏거리로 전락한 두 그룹 간 라이벌 관계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비즈니스 관계만 구축하지 않았을 뿐 선대 회장들과는 다르게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최근 행보 때문에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깜짝 회동'을 가졌기 때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 연합뉴스


시작은 지난해 5월 정 회장이 삼성SDI 충남 천안사업장 방문하면서였다. 이어 이 부회장은 같은 해 7월 답방 차원으로 현대자동차 싱크탱크인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아 더 이상 선대부터 이어져오던 '라이벌 관계'가 아닌 발전을 위한 '협력 관계'로 탈바꿈하는 것 아니냐는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특히 총수 간 1차 회동 자리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시장규모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시장 패권을 주도하기 위한 협력 및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논의 등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2차 회동은 전고체 배터리 공급에 대한 구체적 논의뿐 아니라 미래차 관련 협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의견들이 오갔을 것으로 추측됐다. 

◆OLED가 튼 양 그룹 간 협업의 물꼬 

두 그룹 간 협업의 물꼬는 배터리가 아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가 텄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만드는 첫 전기차 '아이오닉 5'에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장치를 이용하는 새로운 사이드미러 시스템을 적용한다. 이 시스템 OLED 디스플레이 공급사로 삼성디스플레이가 낙점됐다.

OLED는 후광조명인 백라이트에서 빛을 내는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입자 자체가 빛을 내 색을 표현한다. OLED는 LCD에 반드시 들어가는 백라이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두께가 얇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진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패널의 좌우를 구부리는 등의 디자인 구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LCD와 달리 차량 내 구석구석에 탑재할 수 있다. 

이번 차량용 OLED 공급 계약은 현대차와 삼성이 맺는 10여 년 만의 계약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가 2011년 현대차에 내비게이션용 8인치 LCD 공급 계약을 맺고 3년간 물량 공급한 것 외 특별한 협력관계를 구축한 사례가 없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 연합뉴스


특히 이번 양 그룹 간 협력관계 구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두 총수가 회동한 장소와 주제들이 전기차 배터리 관련이었던 점을 미뤄봤을 때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업 가능성도 높다.

또한 정의선 회장을 주축으로 국내 배터리 3사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지난해 11월 비공개 회동을 통해 글로벌 완성차업계와 전기차 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을 위한 논의에 나섰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 중 하나다.

아울러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수요 증가와 이로 인해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디스플레이, 배터리 외 차량용 반도체 관련 양 그룹 간 협업 역시 점쳐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자동차에 탑재될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와 전장 부품을 현대차 입맛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과 생산시설을 보유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그룹 입장에서 삼성과의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양 그룹 간 향후 협업 관계 확대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총수가 삼성 사업장을 처음 방문한 데 이어 구체적 협력 사례가 도출됐다"며 "향후 두 그룹 간 협력 확대가 그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디스플레이 공급으로 협력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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