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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무관심이 불러들인 '매너리즘'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1.29 15:42:22
[프라임경제] 한 곳에서 오래도록 일하면서 지내다 보면 한 번쯤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무심하게 찾아오는 매너리즘에는 약도 없다. 

나 또한 한때 찾아온 매너리즘이 통장에 입금된 월급으로 상쇄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월급보다 값비싼 감정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애석할 따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매너리즘이란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이다. 개성과 새로움이 각광을 받고 있는 오늘 날, 이런 매너리즘은 안타깝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장인의 매너리즘은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장소로 출근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매너리즘은 직장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덧 십 년을 넘어선 나의 노동에도 매너리즘이 스멀스멀 찾아오고야 말았다. 

불시에 찾아온 매너리즘은 주부의 삶을 비판적이고도 부정적으로 갉아먹었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의미 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주부의 매너리즘도 직장인의 매너리즘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일정함에다가 품고 있던 빛을 잃은 건, 그 둘이 똑같기 때문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매너리즘이 권태와 번아웃(burnout, 극도의 피로·연료 소진) 증후군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권태는가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면,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돼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두 증상 모두 매너리즘을 단단히 고착시키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의도적인 탈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적인 요인을 바꾸는 것도 매너리즘을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방법에 그치기 십상이다.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잃었던 나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환경을 아무리 바꾼들 본질은 그대로일 터이다. 어떤 그릇에 담겨도 물은 물일뿐이다.

본연의 나를 되찾으려면 모든 것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틀에 박히지 않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보는 것이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나의 경우에는 온종일 책만 읽거나, 연주회나 전시회를 찾아가기도 한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행동하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만족감을 느끼고 편안함마저 드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향한 무관심이 매너리즘이란 질병을 불러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향한 관심이야 말로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건,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는 데에서 나만의 경쟁력은 연마된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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