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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전과 가덕도 신공항 갈라치는 김종인의 노련미

모욕적 대응과 여당 일각의 오락가락 상황에도 격분 대신 장기전 저울질 나선 듯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2.01 11:36:27

[프라임경제] 국민의힘에서 보면 외부인이지만 가장 국민의힘다운 모순된 위치. 장차 당의 대선 주자로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까지 거론되면서도 자신은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며 선을 그으면서 물가에 서 있는 인물. 이런 물고기 아니면서도 물에 언제고 젖을 수 있는 물새 같은 상황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런 그가 결국 성큼 발을 들였다. 계기는 북한 원전 건설 지원 의혹이다. 자칫 많은 뻘흙을 묻히는 이전투구 상황까지 가는 게 아니냐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지만, 그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갈 것이라는 기대 역시 받고 있다. 삼김 시대가 끝난 상황에서, 그와 정치 구력을 비빌 인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초기를 대표하는 법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정치를 배운 이래 일찍이 경제민주화 개념을 선점하는 등 오래 정치를 했다는 경험만으로 얻기 어려운 유무형의 자산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차르'라는 별명 등 독선적이라는 평을 받으면서도 정파를 가리지 않고 그의 도움을 얻으려고 선을 대온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그의 위상 때문에, 북한 원전 논란에서 아예 침묵을 지키거나, 일단 나간 자기 발언에 살을 붙이지 않고 어물쩍 휴업 국면으로 들어가는 건 원천적으로 어려웠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나 거물로서나 한 말씀 해야지 않냐는 요청과 그에 부응하는 선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우선 상황은 청와대와 여당 등이 자신을 시험한다는 불만을 가지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흘러가고 있다. 제1야당의 사실상 수장인 그가 의혹에 다소 강한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해서 바로 "법적 조치 검토" 운운하는 반격이 나오면서, 이번 정부와 여당이 최소한의 예우도 포기한 상대들이라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는 것. 

김 비상대책위원장은 주지하다시피, 박근혜 정부의 집권에도 도움을 줬지만 그 이후 문재인 정부 탄생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특이한 위상을 갖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자존심을 크게 상처입히는 여권 대응이 지나쳤다는 풀이가 나온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등의 이 문제에 대한 해명과 대응이 웬만해서 눈감고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구멍이 많아 김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야당 거물들이 참을 수 있겠느냐는 원론적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일단 USB를 건넨 일 자체가 없다는 상황에서 언론의 반박에 말이 바뀌는 상황이 있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도 1월31일 북한 원전건설 문건과 관련,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됐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박근혜 정부 때에도 검토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며 해명한 바 있다. 상황이 워낙 민감하고 내용이 복잡거대하기도 하지만 여권이 실타래를 푸는 초기 대응에서부터 혼선을 겪는 상황 또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산업통상자원부도 마냥 여당 뒤에 줄을 설 수도 없다. 이미 검찰이 월성 원전 폐쇄 문제로 칼날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 정무적 문제로 꼬인 여당의 스텝에 무리수를 두며 도울 수 없다는 예측이 나온다. 산업부가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하거나 만들어진 자료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자, 윤 의원이 추론이었다고 물러선 것이 이런 구도를 방증한다.

강하게 정권을 압박해 볼 투지를 김 비상대책위원장이 불태울 때, 가장 걸릴 이슈는 2월 국회 공회전. 코로나19 등 민생 문제가 걸려 있어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여당의 상황을 100% 모른 척 하는 것은 국민의힘이나 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도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 자리가 걸린 4월 재보선이 있지만 이 이슈의 폭발력을 고려할 때, 과감한 공세로 치달아도 크게 손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 밀착으로 전선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나 '안철수 단일화' 등 까다로운 문제를 정석대로 풀어나가기 보다는 '고공 전투'로 구도를 형성하는 게 나쁘지 않다. '21세기형 색깔론'이라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이적행위 논란을 면하기 어려운 이 문제의 속성을 파악하라는 강경론이 대두되기에 충분한 구도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도 그의 선택을 나무랄 당내 인사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북한 원전 의혹에 대한 강력한 비판 목소리를 내는 등, 당내 기류도 감지된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청와대나 여권의 공공연한 김종인 스크래치 시도에 강력한 대처로 치달을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건드리는 폭발력 강한 이슈인 북한 원전 지원 논란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어떤 공세를 펼칠지 주목된다. ⓒ 연합뉴스

다만 김 비상대책위원장이 마냥 자기 체면만을 생각하며 대처한다면 단기간에 폭발하고 불이 꺼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종인 피로감으로 흐르면서 당내 역학구도가 또 변화할 수 있는 문제 가능성이 된다. 그가 중간중간 길을 이리저리 닦으면서 다각도로 문제를 끌고 갈 지구전을 고려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1일 나온 그의 부산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1일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국민의힘은 가덕신공항 건설을 적극 지지하며,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여야 합의에 처리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보선을 앞두고 지역을 챙기지 않는다는 부산 여론이 일어난 상황에서 중앙정치의 논리로 각을 세우고, 그 와중에서 신공항 문제가 방치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기우로 만드는 제스처다.

2월 국회 구도에서 민생 법안 운운하면서 제1야당의 정치적 협조를 요구하는 여권의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볼 때에도 이런 그의 판단은 빛을 발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하면서 공을 다시 '국회를 장악한 거대 여당 책임론'으로 떠넘기겠다는 전략이 시작된 셈이기 때문이다. 

신공항 각개격파는 할 일은 정치적 굴욕에 격분해 초강수를 연발하지 않겠다는 그의 노련함을 방증한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식의 대결도 슬기로 빛날 수 있겠지만, 현재 국민의힘이 갖는 국회 구도상 이런 출혈도 장기적으로는 감수가 쉽지 않다. 따라서 아예 출혈을 최소화하고, 할 일은 하면서 반대할 만한 일에 한다는 명분 이상을 챙기는 장기지구전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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