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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택배기업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 벗어나려면…

 

이수영 기자 | lsy2@newsprime.co.kr | 2021.02.02 15:54:10
[프라임경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최근 기업 사이에서 중요하게 회자되는 경영 키워드다. 각 기업들은 환경보호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꾀하고 있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온 택배기업들도 ESG 관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업계 안팎에선 택배기사들의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어난 지난해 과로사가 특히 많았고, 비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잠을 줄이고 끼니도 거르며 일하다 결국 배송 차량 핸들에 고개를 숙인 채 사망한 택배기사의 소식은 아직도 머릿 속에서 가시지 않는다.

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는 근로자의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를 위해 그에 걸맞는 투자나 안전관리 계획을 내놓는다. 택배기업들 역시 기사 근로자들이 쓰러질 때마다 물류 자동화나 인력 투입 등 과로사 방지를 위해 이것저것 많이 투자했다고 발표하지만, 기사 업무 환경 개선은 소원하기만 하다. 현장에서는 불만이 여전하고, 택배기사들이 "또 속았다"고 입을 모으는 것으로 마무리돼 왔다. 

최근 택배노동조합이 파업 카드까지 꺼내며 일어선 것도 택배기업들의 말뿐인 약속 탓이 크다. 지난해 10월 택배기업들은 택배 분류 지원 인력을 투입하고 심야배송을 중단하겠다는 등 계획을 밝히며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택배기사들은 여전히 과로 위험에 노출된 채 수없이 쏟아지는 일 속에 파묻혀 업무에 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또 새로운 합의안이 나오며 택배 노사 갈등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잠정 합의안에 따라 택배기업들은 오는 4일까지 약속한 추가 분류인력을 모두 투입해야 하는데, 인력이 제때 투입될 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안이 도출되기까지 노조는 두 번이나 총파업을 선언했을 정도로 기업에 대한 노조의 신뢰는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다. 당시 노조는 택배기업들이 인력 투입 기간을 정하지 않았고, 인력 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번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믿을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일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는 법이다. 회사가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택배기업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람이 일을 하다 과로로 줄줄이 죽어나가는 이 비참하고 극단적인 현실에서 말만 앞세워선 안 된다. 시간 지나면 잊혀질 것을 기대하면서 모면하고 넘어갈 순 없는 일이다. 

지난해 택배기업들이 사상 최고 실적을 낸 배경엔 택배기사들의 피땀이 있었다. 근로자가 없으면 회사도 없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택배기업들은 다시금 인정하고, 무엇이 더 중한 것인지 깨달아야 할 때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 이 시간에도 택배기사들의 귀한 목숨은 길에서 또 안타깝게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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