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또 한일해저터널? 불량한 싸움의 명분 피해야

2021-02-09 09:47:06

[프라임경제] 'CASUS BELLI' 이 말은 국제법상 라틴어 표현의 법률용어로, 뜻 그대로를 해석하면 '전쟁의 정당화 이유' 다시 말해, 전쟁의 명분 또는 그 명분이 되는 행위나 사건을 의미한다.

특정 국가가 전쟁을 일으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명분이다. 명분이 서지 않은 전쟁, 전쟁의 타당성이 성립되지 않는 전쟁은 단순 살인을 위한 목적의 범죄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외교부가 발표한 '2020 외교백서'에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 명시된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신들만의 다양한 명분을 앞세워 수많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다.   

일례로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주에게 "명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안내해 달라(정명향도·征明嚮導)와 조선의 국왕을 일본으로 오게 하라는 국왕입조(國王入朝)"를 전달하라고 명 했는데, 대마도주는 조선과의 관계를 생각해 "명을 치러 갈 테니 조선은 길을 터라(가도입명·假道入明)"라고 순화시켜 전달했다. 

당연히 조선은 사대관계를 맺고 있는 명나라를 치겠다는 일본의 말을 무시했고, 일본은 이를 명분 삼아 오랜 정치적 꿈인 대륙 진출이라는 염원을 숨긴 채 '정명가도(征明假道)' 구호를 앞세우며, 조선의 땅을 짓밟았다. 이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과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필요로 했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던 명분. 다만, 전쟁을 위한 명분은 그간 해왔던 것처럼 만들면 그만이었다. 두 번째는 군수물자.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군수물자를 적재적소에 수송해야 했고, 물자 수송을 위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필요했다.

이에 일본은 만주사변 이후 '탄환열차 계획'을 수립, 이 계획안 속 해저터널 건설을 포함시켰다. 다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해저터널 건설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단순 구상에 그쳤다. 굳이 표현하자면 터널 논의는 침략 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의 전쟁 명분이자 전쟁 도구였다.

최근 예상치 못한, 예상을 뒤엎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의 대륙 진출의 꿈과 야망이 담긴 해저터널에 대한 언급이 일본이 아닌 한국, 그것도 중앙 정치권에서 다시 언급된 것. 실제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약으로 '한일 해저터널 사업'을 발표했다. 

한일해저터널 사업이란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있는 폭 약 200km 해협을 이키·쓰시마· 거제도 등 섬을 경유하는 해저터널로 연결하고, 터널 내부에 고속철도 등 교통시스템은 물론 에너지와 각종 자원도 수송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정치권에서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연이어 언급됐던 국가 간 협력사업 계획 중 하나였다. 특히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도 언급됐던 이 계획은 국토해양부가 한일 해저터널과 한중해저터널 모두 '경제성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모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잊히는가 했던 한일해저터널에 대해 야당이 다시금 언급하자 여당은 친일 공약이라며 공세를 퍼부었고, 야당은 국가 경쟁력이 예전과 달라졌다면서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맞섰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열성이 과거와 다르게 크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대체 왜 한일해저터널이 우리 정치권에서 언급됐을까.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야당의 이번 공약에 대해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철 선심성 공약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야당은 일본에 잠식당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경제력이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일부 언론도 한일해저터널 개통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관측되는 부정적 현상들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이런 전제에는 기자 역시 일부분 동의한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려면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최적의 안을 놓고 서로 주판을 튕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상호 신뢰가 전제로 깔려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할 때 가능하다. 아울러 이 터널 시설을 양국 간 경제적 시너지 외 불량한 싸움의 명분이나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대외적 공표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전제 조건 없이 추진되는 한일해저터널은 결국 또 다른 양국 간 감정싸움의 도화선, 더 거창하게는 새로운 전쟁의 명분 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야당 스스로가 이런 초대형 무리수를 아무 고민 없이 둔다면, 현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들이 지긋지긋하다며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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