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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넷플릭스가 시사하는 '규칙없음'

 

한현석 서울IR 네트워크 대표이사 | press@newsprime.co.kr | 2021.02.26 15:24:05
[프라임경제] 기존의 질서나 관습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대다수 사람들이 옳다고 믿어온 표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표준'이다. 세상 모든 조직이나 공동체에는 규칙이라는 표준이 존재한다. 학교에는 교칙이, 기업에는 사칙이 있다. 

예컨대 기업은 취업규칙과 세부 사내규정 등을 만들어 구성원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업 수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업종도 다양해지고 규모도 커지면서 새로운 규칙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왜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의문없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 하에 규칙이 양산되고 있다. 어느새 규칙만 잘 만들면 구성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졌고, 규칙에 내재된 맥락보다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것 자체에 집착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러한 변질된 표준에 반기를 들고, 규칙은 버려야 할 구시대 산물이라고 외치는 기업이 등장했다. 바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130쪽 분량의 '자유와 책임 문화에 대한 참고 가이드'를 작성해 지난 2009년 온라인에 공개했다. 넷플릭스 조직운영 철학이 담긴 이 문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공개 10년 만에 1800만 조회수를 돌파하고 조직관리의 바이블로 떠올랐다.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 넷플릭스는 "우리의 문화는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라면서 독특한 기업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어떤 경영자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 많은 경영자들가 '과연 잘 되겠냐'며 냉소적 의심을 가졌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 됐다. 넷플릭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속속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기업문화 중 규정과 관련된 내용은 매우 파격적이다. 예컨대 출장 및 경비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의 이익에 부합하게 행동하라" 단 한 문장으로 규정돼있다. 복장이나 휴가에 대한 규정은 아예 없다. 휴가는 일수 제한 없이 필요하면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쯤에서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특정 직원이 출장 경비를 비합리적으로 사용한다면? 휴가를 다른 동료보다 월등히 많이 사용하는 직원이 있다면? 무제한 자율에는 방종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넷플릭스는 이를 막기 위해 두 단계 확인 절차를 밟는다. 소속 직원의 매니저가 먼저 경비 지출이 합리적이었는지 검토하고, 재무부서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친다. 검토 시 의심되는 항목이 발견되면 당사자와 면담을 갖고 부적절한 지출이 확인되면 징계 수순을 밟는다.

대다수 구성원은 합리적이라고 인정하되 비합리적 구성원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비합리적인 구성원을 전제하고 미리부터 규칙을 만들어 자율을 제한하는 기존의 '표준'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너무 많은 과속단속카메라에 기분이 나빴던 적이 많다. 심지어 총 길이 80km 남짓 도로에 카메라가 스무 대 넘게 설치된 곳도 있다. '구간단속'이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첨단 시스템도 곳곳에 즐비하다. 이 정도면 모든 운전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하는 셈이다. 

정작 과속단속카메라가 많다고 사고가 줄었다는 통계는 없다. 캐나다 토론토 인근과 미국 뉴욕을 연결하는 800km 고속도로에 과속단속카메라는 단 한 대도 없다. 대신 고속도로 순찰자가 과속 운전자를 단속해 상당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일까?

넷플릭스의 '규칙없음'은 기본적으로 구성원을 신뢰한다는 것을 전제하며,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일의 본질'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넷플릭스처럼 규칙을 모두 버리자는 성급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필요한 규칙은 없는지, 규칙이 너무 복잡하지는 않은지, 규칙을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각 기업에 최적화∙최소화된 규칙으로 낭비 요소를 없애고 본질적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IR은 규정이 10가지를 넘지 않으며, 각 규정은 두 페이지 이내로 단순하게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규칙없음'이 시사하는 메시지는 자못 신선하다. 우리 기업의 규칙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 조직과 구성원에게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현석 서울IR 네트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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