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최초 여성 수상?' 고이케 지사에 쏠리는 눈

2021-03-03 09:24:57

[프라임경제] 내각책임제 국가 일본에는 중의원 465명, 참의원 245명 총 710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이 가운데 여성의원이 102명(중의원 46명·참의원 56명)으로 14.4%를 차지한다. G7을 비롯한 선진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다. 국제의원연맹(IPU)의 2021년 1월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여성의원 비율은 190개국 중 153위를 차지한다. 

여기에 실제 국정을 운영하는 각국의 하원(일본은 중의원)이나 단원제 국가의 여성의원 수와 비교하면 그 수치는 9.9%와 165위로 더 내려간다. 참고로 한국은 19%(127위), 세계 평균은 25.5%이다. 일본이 양성평등에 어느 정도 무심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다. 모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여성비하 발언은 결코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일본 <Flash>가 여성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언제 여성 총리(수상)가 언제 나올지에 대해 앙케트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중 22명이 답변을 보내왔는데, 누구 하나 시원하게 의견을 낸 의원이 없었다. 특히 집권 자민당 소속의 경우 "일본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총재 후보조차 될 수 없는 구조에서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는 절망적 전망만을 내놨다.

현 정국에서 자민당의 총재는 곧 총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총재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의원 20명의 추천이 필요한데,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렇듯 남성이 주도하는 일본의 문화적 정치적 토양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의 존재는 특별하다. 

고이케는 2016년 7월 자민당의 공천을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 자민당 분회가 지배하는 도쿄도의 도정을 비판하며 2위와 큰 표차로 20대 지사직에 오른다. 1947년 도쿄도지사 선거가 시작된 이래 59년 만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특히 지난해 7월 재선에 성공한 고이케는 바로 수상관저를 찾았다. 그때 모습을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아베가 고이케의 승리를 축하하며 "고이케 지사와 나는 지금까지 보다 연대를 더 공고히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고이케는 "국가의 도움을 받아 여유 있게 승리했다"며 "우리 승리의 증거를 도쿄올림픽·패럴림픽으로 이어 나가겠다"라고 화답했다. 이와 같은 곧 총재 임기를 마치는 아베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68세의 도쿄도지사 고이케가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는 대목 중 하나다.

미국 언론은 고이케가 머잖은 장래에 수상으로 등극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측은 고이케가 수개의 야당과 자민당을 거치며 다양한 정치 경험을 쌓은 가점 요인에 기인한다.

고이케는 1976년 이집트 카이로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귀국 후 아랍어 통역사 겸 인터뷰어를 거쳐 일본 TV에 입사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2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신당의 전국구 후보로 당선되면서부터다. 이후 신진당 등 수 개의 야당과 자민당을 거치며 2016년까지 그 어렵다는 중의원 지역구 8선을 기록한다. 전국구가 대부분인 다른 여성의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고이케는 자민당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총재에 도전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비록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당원표에서 아소 전 총리에 이어 2위에 올라 주목받는 정치인이 됐다.

지난달 24일 시사(지지)통신은 여성비하 발언으로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모리 조직위원장이 비교적 신속히 물러난 이면에는 고이케의 역할이 컸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고이케는 2월10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금 4자 회담을 한다고 해도 전 세계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담 자리에) 내가 참석하는 일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발언이 모리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정치게임을 바라보는 자민당의 심경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고이케의 1인극에 번번이 농락당해왔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이러한 고이케의 화려한 행보가 7월 도의회 선거와 곧 다가올 49회 중의원 선거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여성 수상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의원의 절대 수가 늘어야 한다. 현재 일본 정가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오는 2030년까지 4회 정도 총선거를 통해 의원수를 30%까지 늘리자는 자민당의 내부 제안이 관심을 끈다. 이를 위해 △후보 쿼터제 △선거구 정년제 등 구체적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만 당내 반발이 심해 공론화 단계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성의원 수가 늘어나는 만큼 여성 수상의 탄생 시기는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고이케는 이러한 흐름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지난 1월에는 날로 심각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스가 총리에게 국가 차원의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유도함으로 도쿄도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그의 정치력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저명 르포작가 오오시타 에이지(大下英治)는 올 1월 주간포스트 기고를 통해 "여성뿐 아니라 일본의 정치가에게 부족한 것이 배짱이다"며 "미국·러시아·중국 등과 맞짱 뜰 수 있는 사람은 고이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그의 담대함을 높게 평가한다. 

고이케가 어느 날 자민당을 뒤흔들거나 지리멸렬한 야권을 규합하는 방식 등으로 오는 2030년 이전 수상에 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녀를 '여제(女帝)'라고 부르는 이유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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